기자명 정재욱 편집장 (wodnr1725@skkuw.com)

2주 뒤에 막을 내리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8’에서 구민자의 <전날의 섬 내일의 섬>은 날짜변경선이 지나는 피지 타베우니에서의 체험을 영상으로 재현한다. 피지로 떠난 작가와 그 지인이 날짜변경선 양쪽에서 24시간을 보내고 자리를 바꿔 24시간을 보내는 퍼포먼스가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은 직관적으로 이해했을 테다. 흥미롭게도 이곳에서는 하루를 다시 보낼 수도, 하루를 건너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인터뷰 영상에서 작가는 “아주 자연스럽게 우연하고도 이상하게 그냥 정해져 버린 장소”라 명명한다.

근대적 시간 개념을 정립한 그리니치 천문대가 타베우니의 탄생을 예상했는지는 관심사가 아니다. 현대사회가 합리성에 기반하고 있으나, 실상은 인간의 편의에 의해 구성된 산물이라는 지적이 핵심에 가깝다. 자연 세계를 인간의 논리로 재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오차는 부지불식간에 간과된다. 그렇게 발명된 합리적인 경계를 맹신하다 불현듯 인간들 사이의 투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그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지난 6일, 정전협정 이후 남북이 처음으로 조사를 실시한 한강 하구 수로는 “아주 자연스럽게 우연하고도 이상하게 그냥 정해져 버린 장소” 중 하나다. 파주에서부터 강화까지 약 67km에 달하는 이 물길은 국경이 아닌 중립수역으로 남북의 민간선박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정했다. 그러나 냉전 이데올로기라는 현실의 논리는 하나로 흐르는 강에 보이지 않는 선을 깊게 그었다. 이 선은 한국 사회의 망탈리테(mentalité)와 여전히 결부돼있다. 한강 하구 수로가 다시 가로막힌다면 아마도 남북관계라는 굴곡진 시대적 장벽 때문일 것이다.

조금이나마 선을 지워보려는 쪽도 결국은 합리적 이성으로 호소한다. 한강 하구 조사에 적극적인 경기도와 인천, 김포시 등 수도권 지자체는 ‘서해 5도 수산물의 서울 지역 직배송과 하구(河口) 모래 채취를 통한 건설자재 확보’를 전면에 내세운다. 거기에 중국어선의 불법조업 문제의 근절도 얽혀있다. 이처럼 인간의 방식으로 선을 긋고 사유하고 소유하려 드는 행태가 너무나 당연해 새삼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혹여 남북관계가 안정화돼 한강 하구가 완전히 개방된다면 철저히 인간의 이해에 따라 개발될 것이 뻔하다. 차라리 과거의 분단체제가 유지되는 게 한강 하구에는 행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올해 출간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에서 소개되는 “난 인간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발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반백 년 넘게 흐른 물살과 고고한 생태계의 소리 없는 아우성도 이와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안양대 류종성 교수는 한 칼럼을 통해 “한강 하구에는 남북한 갯벌 면적의 약 26%를 차지하는 갯벌이 분포한다”며 “한강과 임진강 접하는 조강 일대의 갯벌사막은 세계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자연유산”이라 극찬한다.

과연 남북관계나 경제적 이익이라는 눈앞의 기준을 버리고 바스테트의 시선으로 한강 하구를 바라볼 수 있을까? 이곳을 둘러싼 인간들의 합리적인 이해논리가 바스테트의 눈과 입을 가릴 공산이 크다. 다만 과거의 편의가 천혜의 자연경관을 선물한 것과 같은 요행을 쫓지 말고 이번에는 인간의 편의가 결코 사소하지 않은 파괴력을 가졌음을 주지하자는 바람이다.   

정재욱 편집장
정재욱 편집장
wodnr1725@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