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윤수 (kysoosyk@gmail.com)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좀 더 편하게’를 추구한 소비자 선택에서 비롯된 구독
상품 선택·이용자 맞춤 서비스 보완 필요해

“나는 인생의 구독자가 됐다. 영화를 모아놓던 박스들은 어떻게 됐더라? 이젠 넷플릭스 구독을 한다. 내 음악은? 스포티파이. 내 책은? 킨들. 나갈 때는 차가 따로 필요 없다. 우버나 리프트가 있으니까. 요리를 직접 할 때는 블루 에이프런이나 인근의 홀푸드 마켓에서 재료를 구한다. 홀푸드 마켓에 가면 아마존 프라임 전용 계산대를 사용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왜냐하면 난 아마존 프라임 구독자이기도 하니까...” 지난 7월 17일 BBC의 한 기사에서 볼 수 있듯 이제는 일상생활과 구독은 다양한 부분에서 긴밀히 연결돼있다. 이와 같은 구독 형태의 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구독, 종이 매체에서 넷플릭스까지
원래 구독(購讀)은 ‘책이나 신문, 잡지 따위를 구입하여 읽음’이라는 뜻으로 주로 종이 매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서비스 형태였다. 구독이 다양한 분야의 상품에서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좀 더 편하게’를 추구한 소비자의 선택을 들 수 있다. 세명대 글로벌경영학부 김계수 교수는 “정기구독 서비스 이용자의 지속적 증가 원인은 인간 욕구의 패러다임 변천과 관련이 있다”며 “‘소유’에서 ‘공유’, 그리고 이제는 ‘구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분석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기존의 상품은 구매 시 결제 과정이 매번 필요해 번거로움이 있던 반면, 정해진 요금을 지불하면 기한 전까지 서비스를 얼마든지 이용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정기구독 형태 서비스는 이용자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는 고객들이 상품 선택에 들이는 시간을 절약해주므로 소비자에게 장점으로 작용한다.

구독은 기업 입장에서도 선택할만한 가치가 있는 서비스 형태다. 기존의 상품 결제 방식보다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수입원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구독은 이용자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고객의 피드백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국내 꽃 정기배송 업체 꾸까의 노은형 마케팅 매니저는 “정기구독 서비스의 특성상 고객의 수요를 미리 파악할 수 있어 원활한 준비가 가능하다”며 구독의 장점을 들었다.

이러한 장점에 힘입어 지금과 같이 정기구독 서비스가 여러 상품에서 보이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는 미국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기업 넷플릭스의 성공이다. 넷플릭스가 처음 비디오·DVD 대여사업을 진행했던 1997년 당시의 비디오 대여 시장에는 이미 블록버스터(Blockbuster)라는 거대 기업이 자리하고 있었다. 블록버스터는 미국 전역에 90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연 매출 30억 달러 이상의 실적을 올리고 있었다. 여기서 넷플릭스가 택한 전략은 운영 방식의 차별화였다. 매월 저렴한 정액제를 통해 서비스를 이용하게끔 하면서도 대여 가능한 비디오 작품 수 제한과 연체료를 모두 없앤 것이다. 넷플릭스의 창업주 헤이스팅스는 “창업자는 반드시 반대를 보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며 이용자를 고려해 정기구독 서비스를 도입한 운영 방식을 설명했다. 이에 더불어 2007년에 일찍이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에 진출한 넷플릭스는 현재 1억 3700여 명의 회원을 가진 세계 최대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기업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넷플릭스의 성공은 향후 다양한 분야의 정기구독 서비스 시대를 열었다.

전 세계 어디서나 구독하세요
오늘날 찾아볼 수 있는 구독 형태의 상품은 크게 △넷플릭스 모델 △정기배송 모델 △정수기 모델로 나뉜다. ‘넷플릭스 모델’은 월 구독료를 낸 후 매월 무제한 이용하는 형태의 상품으로 넷플릭스, 유튜브 프리미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넷플릭스 구독자인 신수한(글경제 17) 학우는 “보고 싶은 미디어 콘텐츠를 한 달에 한 번 구독료만 내고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사용자 기반으로 여러 영상을 추천해주는 시스템도 유용하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모델’의 큰 강점이 되는 이용자 맞춤 서비스에 대해 김 교수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통한 분석을 활용해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으로 일구어낸 것”으로 설명했다. 이외에도 구독 회원에게만 독점적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 역시 ‘넷플릭스 모델’의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정기구독 서비스 중 소모품의 ‘정기배송 모델’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면도기 정기배송 서비스 기업인 달러 쉐이브 클럽이 있다. 매달 9달러를 지불하고 4~6개의 면도날을 배송해주는 간단한 이 기업의 구조는 2015년 온라인 면도기 시장에서 질레트를 넘어서 판매량의 과반을 차지할 정도로 소비자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외에도 월 구독료만 납부하면 여러 품목을 바꿔가며 사용이 가능한 ‘정수기 모델’도 있다. ‘정수기 모델’에서는 주로 내구성이 높지만 제품이 고가인 탓에 구매하기 어려운 상품을 사업 대상으로 삼는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 캐딜락은 원하는 차량 모델을 3개월 동안 선택해서 탈 수 있는 ‘북 바이 캐딜락’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해당 서비스와 기존 자동차 리스 사이의 차이점은 더 많은 종류의 자동차를 기간까지 마음대로 정해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용자에게 보다 많은 편의를 제공한다는 장점을 앞세운 정기구독 서비스로의 변화는 해외의 사례에만 그치지 않는다.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왓챠플레이, 매주 3벌 정도의 셔츠를 배송해주는 위클리셔츠, 2주마다 꽃을 보내주는 꾸까 등 국내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사업에서 구독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꾸까의 노 매니저는 “사업 초기에는 꽃 정기배송이라는 서비스가 생소해 신기하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꽃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일상에서 꽃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며 꾸까가 바꾼 삶의 모습에 대해 말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도 조금씩 물건을 구매해 ‘소유’하기보다는 잠시 이용 자격을 얻어 ‘사용’하는 형태의 삶이 자리하고 있다. 스위스의 금융기관 크레디트 스위스에 의하면, 2020년에는 글로벌 구독경제 시장의 규모가 약 59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할 정도로 지금과 같은 구독 문화의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직 다듬어야하는 구독 서비스 문화
국내 정기구독 서비스가 시행돼 온 것은 4년 정도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남아있다. 야식과 수제 맥주를 제공하는 국내 기업 벨루가는 당시 ‘술 판매와 배달’의 규제가 불명확한 주세법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맥주를 통신 판매 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민원이 잦아지자 해당 기업의 대표가 자체적으로 사업 모델을 다듬기 위해 3개월간 자체 휴업을 했던 해프닝이 있었다. 지난해 7월 음식 법령이 바뀌면서 음식과 함께 맥주를 배달하면 합법인 것으로 부분 완화돼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정기구독 모델 형태가 될 수 있는 상품인지에 대해 확인이 필요함을 알려주는 사례가 됐다.

또한 상품에 따라 기존의 구매방식이 정기구독 서비스 형태보다 선호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소니는 2015년 ‘플레이스테이션 나우’라는 게임 구독 서비스를 선보였으나 결과적으로 흥행에 실패했다. 기존의 다운로드를 통해 게임을 이용하는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대다수였기에 클라우드&스트리밍 방식은 이용자의 이목을 끌기에는 부족했다.

김 교수는 “이용자 맞춤 서비스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에만 의지하면 된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까다로운 고객의 요구를 개별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면 사업을 접게 되는 것이 구독경제 비즈니스”라며 주의를 요했다. 꾸까의 노 매니저는 “고객의 행복을 가장 중요시한다”며 “꽃이 배송 중 상하거나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100% 재배송해드리는 어슈어런스 서비스(구매자 보증)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BBC는 “사치품에 대해 켜고 끌 수 있는 스위치를 갖는다는 것은 나의 월급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지만 구독으로 점철된 삶에는 안전망이 없다”며 소유에서 구독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것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앞으로의 구독 서비스에 대해 김 교수는 “개인은 제한된 자원과 비용으로 최대의 만족을 얻기를 희망하기에, 구독 비즈니스는 고객의 미세한 욕구를 간파하고 어떤 서비스가 가장 필요한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