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아이야, 아이야,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늘 검은 늑대와 흰 늑대가 싸우고 있단다.” “그럼,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할아버지.” “당연히 내가 먹이를 주는 쪽이지.”(인디언의 전설 中)

가을도 어느덧 겨울로 넘어가고 단풍구경 갈 새도 없이 벌써 낙엽이 지는 것을 바라본다. 성큼성큼 겨울은 다가오는데 나는 여전히 가을을 떨치지 못한 것일까? 아직도 너무 많은 것들이 어렵게만 느껴지고 또한 일상 속에서 나를 갉아 먹는 구습(舊習)들과 잡생각들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내가 왜 이렇게 괴로울까를 계속해서 고민하다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는데 그것은 ‘과연 내가 나를 존중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었다. 이러한 물음이 발생한 배경은 바로 일상 속에서 나의 모습을 관찰했을 때 그 모습이 너무 남을 과하게 의식하며 현실성이 없는 망상들과 기준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남에게 관심이 있거나 혹은 제대로 관계를 맺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남을 신경 쓰는 이유는 결국은 내 머릿속에 타인에 대한 관심 보다는 나에 대한 집착으로 꽉 차있기 때문이다. 즉 나는 내 눈앞에 놓인 현실세계와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다가갈 생각보다는 내 자신이 상처받지 않으려고 혹은 나의 불안감을 왜곡된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내가 세상을 보는 렌즈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셈이다.

결국 이러한 양태는 삶의 주인공으로서 사는 것이 아니었고 나는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살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어떻게 내가 주인공으로 살 수 있는가? 나는 그 방법을 존중에서 찾았다. 내가 과외를 하는 초등학생의 집에는 아주 매력적인 고양이 한 마리가 산다. 그 고양이를 새끼일 때부터 봐서 일까 그 녀석은 나를 보면 몸을 부비거나 배를 보이면서 아주 친근하게 군다. 나는 종종 눈가에 닦이지 않은 눈곱을 물티슈로 조심스럽게 닦거나 혹은 그 친구의 보금자리를 과외생과 함께 치우는데 그러한 행동에서 나는 내가 이 고양이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문득 돌이켜 보니 나는 남의 집 고양이보다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고 있었다.

나의 자취방에는 거울이 없어서 냄비 뚜껑으로 그 기능을 대체하고 있는지 어연 3개월째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화장실 청소를 미뤄두고 이불 빨래 또한 내일하지라는 마인드로 지내다 보니 결국은 그대로다. 심적으로는 어떤가? 내가 불안하고 우울할 때 나는 그 감정을 제대로 직시하고 이해하려 해보았는가? 아니면 한 편으로 미루고 그저 술과 유튜브 영상들로 시간을 보내며 그 마음을 보지 않으려 했는가? 나는 내가 해야 할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는 습관 때문에 나를 괴롭게 하지 않았는가? 왜 나는 내 눈앞의 고양이가 필요한 것들은 그렇게 명확히 알고 바로 행동에 옮기면서 정작 내 자신이 정말 필요한 일들은 왜 그렇게 미루고 무관심했을까?

내 삶에서 가장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는 나임을 깨닫고 그것으로 내 삶을 채우려 할 때 일상 속에서 나의 여러 부분들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점점 소소한 즐거움들을 느끼고 알아차리는 마음의 여유가 돌아오고 더 나아가 내가 원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향해 달려갈 힘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힘이 들고 무언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내 자신에게 물어 본다 ‘너는 지금 무엇으로 삶을 채우려 하고 있는가?’

이승렬(유동 15)
이승렬(유동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