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의사가 환자인 사람을 보아야지 환자의 질병, 또는 병에 걸린 장기만 바라보면 안 된다는 가르침은 의과대학생이라면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의사가 질병을 진단하고 증상을 없애주고 병든 장기를 떼어낸다고 할지라도 온전한 인격체인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주객이 전도된 격이라는 이야기다. 첨단 테크놀로지가 지배하고 영상과 데이터 수치가 환자의 고통을 대변해주는 오늘날의 현대적 병원 환경은 이런 가르침을 쉽게 망각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더구나 충분한 진료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한국의 의료현실은 ‘사람’을 치료하기보다 혈압, 혈당, 검사성적 같은 ‘수치’를 교정하는 합리적인 온상을 제공한다. 이런 현상은 결코 당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당대의 의사는 이런 현상을 불편하게 여기고 문제의식을 느끼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분주하겠지만 현대적 교육병원에서 이들이 보이는 역할(role model)을 모방하며 배우는 다음 세대 의사들에게는 그런 마음까지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이들에게서 환자를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점점 엷어지고 질병과 장기를 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이치로 다가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현대의 질병 체계가 비록 일반화시킬 수 있는 능력과 우수한 재현성 및 예측 가능성으로 누구에게나 이의 없이 받아들여지지만, 진단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되는 추상과정을 통해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진단, 즉 질병 이름 붙이기에 매달리는 추상적 사고가 강조되면서 구체적 개인으로 의학의 관심이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지역을 누구나 잘 찾을 수 있도록 지도를 만든다. 우리는 지도를 통해 길을 잃지 않고 찾아갈 수 있지만, 실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만큼 그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과 새소리, 계곡의 물소리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듯이 질병 범주를 이용하여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치료의 효과를 확인하는 것이 흥미진진하겠지만, 이것이 결코 환자가 경험한 질병과 동일하지는 않다. 지도를 보고는 그 지역의 풍광을 모르듯이 진단만 붙여서는 환자의 경험과 고통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임상의학의 불확실성은 이런 생물의학이란 지도와 인간고통이라는 지역의 격차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만약 의사가 단순한 질병을 고치는 기술자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진정한 치유자가 되고자 한다면 그런 불확실성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환자의 개별성과 구체성을 추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제 차세대의 의사들에게 질병체계의 추상성과 환자 개인의 구체성을 동시에 인식하고 동등한 가치로 취급하게끔 가르쳐야 한다. 이런 정신과 철학이 의학교육 커리큘럼에 제대로 반영되는 방법을 연구하여야 한다. 내가 늙고 병들었을 때 나를 돌보아 줄 의사, 우리의 아들딸과 그 자식들, 다음 세대의 한국인을 책임질 의사는 과연 어떤 의사이면 좋을까?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나가는 현대의학 기술 속에서 어떤 의사로 교육할 것인지 의학 교육을 책임지는 모든 당사자들이 모색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