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자기 착취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과거에 사람들은 남에 의해 착취를 당하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남에 의해 착취를 당하기보단 나 스스로에 의해 착취를 당하고 있다. 자기 착취는 베를린예술대학교의 한병철 교수가 집필한 <피로 사회>라는 책에 등장하는 말이다.

살다 보니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교를 진학하기 위한 욕심은 나를 정도 이상으로 공부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타자에 의한 요구가 아닌 나의 요구였다. 자, 이제 대학을 왔다. 나의 자기 착취는 어떻게 되었는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부를 했고, 친구를 사귀었고 여러 경험을 했다. 나 스스로가 나다워지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남들보다 나아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역시 나에 의한, 그리고 나에 대한 자기 착취였다. 졸업 후에도 똑같겠지.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스펙을 쌓고, 취직한 후에도 승진하기 위해 열심히 자기 착취를 할 것이다. 아마 우리는 평생 자기 착취를 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능력이 있고 재능이 있다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내가 성공하지 못하면 그것은 오롯이 나의 노력 부족으로 받아들여진다. 내가 원하는 상태와 내가 처한 상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일치시키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시 자기 착취를 하게 된다. 어쩌면 오늘의 주체는 오히려 무한한 자유의 무게에 짓눌려 소진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인생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눠보자. 자기 착취로부터 벗어난 사람과 자기 착취를 받아들인 사람. 내가 이 두 부류의 입장이 되어보겠다.

먼저 자기 착취를 받아들이기로 하자. 나는 자기 착취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해 보임을 인정하고 자기 착취를 하려고 한다. 여기서 나는 어차피 자기 착취를 해야 한다면 나에게 좀 더 의미 있는, 내가 그나마 사랑할 수 있는 일에 해야겠다. 자기 착취를 하는 그 시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이 덜 힘들고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 일을 찾기 위해 열심히 자기 착취를 하면서 내가 의미를 부여할 만한 일들이 어떤 것인지 열심히 찾아봐야겠다.

다음으로 자기 착취로부터 벗어나 보자. 나는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좋고 나쁜 것의 기준은 내가 정할 것이고, 사회가 정해놓은 좋고 나쁨의 기준은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좋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남기고,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제거해 나가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한 행동에 있어서 나는 나만의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나로서 멋지게 살아가면 되겠다.

어떠한 삶이 더 좋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나는 지금까지 자기 착취를 열심히 하면서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자기 착취로부터 한번 벗어나 보려고 한다. 내가 직접 살아보고 나에게 맞는 것을 택하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해 보는 과정에 우리의 삶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구호(자과계열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