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유희경 시인

기자명 홍정균 (jeonggyun@skkuw.com)
유희경 시인.사진 | 홍정균 기자 jeonggyun@skkuw.com
유희경 시인.
사진 | 홍정균 기자 jeonggyun@skkuw.com

‘위트있는 시인’이 ‘위트 앤 시니컬’로
“나 대학 다닐 때 이 앞에 동양서림이 있었어”라고 말하는 걸 듣고파

지난 22일 혜화동로터리에 위치한 동양서림을 찾았다. 동양서림 내부의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듯한 매력적인 나선 계단을 올라가니 유희경 시인이 웃으며 반겼다. 신촌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혜화로 이사 온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운영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이란 이름이 독특하다.
우선 ‘위트 앤 시니컬’은 시집 전문 서점이 아니고 시집 서점이다. 전문이란 단어로 문턱을 높이고 싶지 않고 많은 이가 시집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서점을 열었다. 전에 하재연 시인, 김소연 시인과 같이 이야기를 하다 어떤 시인을 가리켜 “위트있는 시인이지”라고 말을 했는데 하 시인이 그걸 잘못 들어 “위트 앤드 시니컬이 뭐야”라고 되물었다. 후에 김 시인이 전화로 “시집 서점을 한다며 위트 앤드 시니컬로 하는 건 어때”라고 하더라.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서점 이름을 ‘위트 앤 시니컬’로 정하게 됐다. 비문인 이 이름은 시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특성을 잘 말해준다. A를 말한다고 A가 전달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 시집 서점의 이름으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떤 시집을 다루는 곳인가.
‘위트 앤 시니컬’은 본격문학 즉, 문학의 한 분과인 시를 주인공으로 하는 공간이다. 아무래도 본격문학이 다른 서점에서는 소홀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는데 적어도 여기에서는 주인공이 됐으면 한다. 재치를 발현하거나 많은 책이 팔리기를 바라며 쓰인 시가 아니라 시라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두고 쓰인 시, 문학의 시 분과에 대한 시집을 소개한다. 최근에 나오는 시집을 소개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시집이 선택된다. 물론 최근에 나오지 않는 정지용, 윤동주의 시집들도 있다.

‘위트 앤 시니컬’에서 진행하는 시 낭독회와 필사에 대한 반응과 생각은.
반응이 좋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낭독회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33회 정도 이뤄졌고 다른 이름으로 기획된 낭독회까지 합치면 100회 가까이 된다. 신촌에서 40~50명 가까이 낭독회에 참여하는 분들을 보면 절반은 재참여하는 분들인 만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인간이 야성을 잃어버렸듯 시에 내재한 음악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게 낭독회 활성화에 유효했던 것 같다. 낭독으로 들었을 때 시가 가깝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기에 ‘위트 앤 시니컬’에서 시작한 낭독회가 이 장소 너머로 많이 퍼져나갔다고 생각한다.

필사의 경우는 또 다른 시를 즐기는 방법이다. 긴 시를 쓰다 보면 ‘왜’라는 자기 반문을 하게 되지만 그것을 마치고 나면 묘한 뿌듯함이 든다. ‘내가 무용(無用)한 일을 했다’라는 것에 대한 이상한 감정이다. 종이학 천개 접기와도 비슷한데, 치매 예방이라는 효과조차 없는 필사는 비물질적인 어떤 것이다.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경제 논리가 완전히 지배한 세상에서 ‘그게 아닐 수도 있다’라는 논리를 투척하는 것은 비경제적이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첨예화된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멋대로 생각해본다. 필사는 그런 일이다.

사진 | 홍정균 기자 jeonggyun@skkuw.com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
사진 | 홍정균 기자 jeonggyun@skkuw.com

오은 시인은 ‘위트 앤 시니컬’에서 소비 이상의 경험인 환대를 느낀다고 한다. 그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시인을 알아봐 주고 당신의 시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이야기하는 순간은 즐겁지 아니할 수 없다. 오 시인이 유명한 시인이어도 사회에서는 이뤄놓은 만큼의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보고 이는 어쩌면 당연하다. 그가 말한 환대의 경험은 방금 말한 본격문학을 주인공으로 만든 경험이 아닐까. ‘위트 앤 시니컬’이 신촌 시절을 마감할 때 고객들이 보였던 선의와 ‘좋아요’로 소비해준 관심을 통해 일개 가게가 사라졌을 때 느끼는 감정 이상의 진한 것을 보여줬다. 아마 이곳에서 느낀 환대의 경험이 실패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또 예전에 시집을 정리하다 책에 손을 벴는데 다음날 어떤 손님이 시크하게 파우치를 하나 주고 갔다. 그 파우치에 연고, 반창고, 구급약 세트와 메모 하나가 있었다. “손 다치지 마시고 오래오래 운영해주세요.” 아직도 그분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 또 오셨을 텐데. 여기 있으면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SNS를 통한 깜짝 낭독회 공지와 생중계를 기획하게 된 계기와 반응은.
‘위트 앤 시니컬’의 경우 우연히 찾아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홍보수단이 SNS밖에 없고 여기서 깜짝 낭독회를 공지한다. 이에 여러 반응이 보인다. 예를 들면 “이원 시인을 보고 싶은데 기습으로 낭독회를 열면 어쩌란 말이냐”는 독자도 당연히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공지가 우연히 시간이 맞아 시인을 마주하게 되는 삶의 이벤트와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나중에 장비만 갖춰진다면 유튜브를 통해 무언가를 시도해보고 싶다.

혜화로 옮기고 나서 깜짝 낭독회의 다른 이름인 ‘위트 앤 시니컬 마이크테스트’를 기획하게 됐다. 아직 성대생들이 어떤 문학 취향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성대 출신 문인은 김연수 작가와 정하나 시인 정도만 떠오른다. 모종의 실험으로 ‘마이크테스트’를 몇 번 하다 보면 학생들, 주변 이들의 취향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실험적 성격을 지녀 무료로 배포된다.

1953년에 문을 연 동양서림과 함께 100년을 지속하는 서점이 되겠다는 각오에 대해.
모든 책을 다루는 대형서점의 경우와 달리 다품종을 다루는 중형서점은 멸종위기에 처했다. 책이 너무 많이 나와 동양서림도 이중책장을 하면서까지 버티려고 했는데 한계치에 닿아 책장 하나를 통째로 걷어내고 책을 선택해 꽂아 놓았다. 우리가 고른 책을 손님들이 원하도록 다양한 큐레이팅을 할 예정이다. 책을 사지 않고 도서 목록만 봐도 이 시대의 어떤 지점을 살고있는 젊은 세대에게 가이드를 제시해주고 싶다. 이런 자세가 동양서림과 함께 100년을 지속하고자 하는 각오다. 손님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와서 사진만 찍고 가도, 와서 공부해도 괜찮다. 그들이 “나 대학 다닐 때 이 앞에 스타벅스가 있었어”라는 말보다 “나 대학 다닐 때 이 앞에 동양서림이 있었어”라는 말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