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시점이 아닌 다양한 주체로 세상을 바라본 미래파
“한 권의 시집에서 빛나는 한 문장만을 찾아도 성공”

기자명 홍정균 (jeonggyun@skkuw.com)
허희 문학평론가
허희 문학평론가

 

현대시는 두 가지 장르가 있는 것 같다. 수능 국어영역에서 푸는 시와 난해한 요즘 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답을 고르는 교육을 받아온 우리는 시를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해졌고 이는 오늘날의 시를 누리는 힘을 잃게 했다”고 전하는 허희 문학평론가와 현대시를 이해하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대시를 마주했을 때의 난감함
“시의 난해성에 대한 지적이 있는 걸 알고 있다. 왜 현대시를 쓰는 이들은 윤동주의 ‘서시’와 같은 서정을 쓰지 않느냐 하는 반문.” 허 평론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서시’와 같은 시가 쓰이고 있다는 점을 전제하며 난해한 현대시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시란 정답이라고 하는 것을 자기의 내적체제에서 스스로 만들어가고 표현하는 것”이라며 70년 전의 서정과 오늘의 서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예전에는 별이나 바람을 시어로 쓰는 것, 자연물에서 서정을 가져오는 것이 유효했고 70년 전 당시의 감각 안에서 윤동주는 자기 나름대로 화법을 발견한 것이라 밝혔다. 그것이 오늘날 학교 교육이나 여러 관습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는 계속 “우리의 감각 체계 안에 실은 자연물이 들어올 수 없다. 우리는 별이나 바람보다 컴퓨터가 익숙하고 편지보다 SNS가 익숙한 세대”라고 비교해 설명했다. “현 시대의 감각을 구성하는 물리적 시스템들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기존과 같은 시를 쓰지 않느냐 하는 것은 지금의 시대에 대한 고민 없이 시를 쓰라는 주문과 같은 것”이라 말했다.

미래파와 그 이후 시대
오늘의 난해한 시가 나온 통시적인 맥락에 대한 질문에 허 평론가는 1980년대의 운동과 그것에 대한 후일담 성격을 지닌 1990년대가 있었다고 답했다. “자기 동일적인 시점, 개인적인 자아들이 촉발했던 1990년대 이후 ‘동일한 나’ 이외 나 안에 다양한 ‘나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2000년대로 들어서게 됐다.” 단일한 자아·인칭이 아닌 다인칭·비인칭으로 대표되는 이들 미래파는 대표적으로 1970년대생인 △김민정 △김행숙 △진은영 △황병승 시인 등이 있다. “권혁웅 평론가는 군웅할거(群雄割據)로 나타난 이들을 미래파라 명명하고 적극적으로 미래파를 지지했다”고 허 평론가는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늘날은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들이 미래파 이후 세대 체험을 시에 새롭게 반영하며 포스트미래파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 미래파 이후 경향성이 과연 긍정적인가에 대한 물음도 있다. 고도로 자본화된 사회, 인터넷이 유행하는 시대에 완전히 침윤된 현재의 세대적 감각을 통해 심층적인 시가 아니라 표피적인 시를 쓴다는 지적이 그런 것이다. 허 평론가는 이런 물음이 “날렵하긴 하지만 알맹이가 없다는 평, 표층의 세계만 탐색한다는 이야기, 가벼운 논의란 지적”이라며 미래파를 비판하는 논리와 비슷하다 밝혔다. 한편 그는 미래파와 반미래파의 싸움은 미래파의 승리로 끝났다고 볼 수 있다며 미래파라 불린 시인들이 오늘날 중견 시인으로 입지를 굳혔다고 전했다.

시적 표현인 은유, 새로운 의미의 탄생
허 평론가는 은유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시적 표현인 은유를 포착한 이들은 많다. 언어학자 야콥슨은 시는 은유에 의해 작동하는 장르라고 했다.” 이어 “정신분석학으로 본 은유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단어를 구성하는 표기와 뜻이 결합하려는 힘 자체를 은유가 증폭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고 전하며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었다. “‘사랑은 태양 아래 미소 짓는 조약돌’을 보면 사랑을 설명하며 조약돌을 끌고 온 것은 맞지만 조약돌 자체에서도 새로운 의미가 창출된다.” 허 평론가는 은유의 힘에 대해 “미래파의 변화하는 주체는 은유에 의해 만들어진다. 주체라는 것이 은유에 의해 새로운 의미로 탄생하는 것이라면 이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는 관점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시를 마주할 수 있는 팁
“모든 것이 분화되고 전문화되는 시대에서는 시를 마주할 수 있는 안경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허 평론가는 시는 난해함으로 진입장벽을 치고 독자를 배제하는 양식이 아니라며 시를 이해하려는 조금의 노력만 있으면 풍부한 세상을 만날 수 있다고 전했다. 혹자는 현대시가 자폐적이라고까지 비판하지만 허 평론가는 현대시는 언어라는 것의 한계를 어디까지 다시 측정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예술로 고립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덧붙여, “오늘날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은 예민한 젊은 세대 또한 시에 관심이 높다”고 밝혔다.

최근의 시집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김경주 시인과 제이크 레빈 시인이 참여한 책 일인시위를 선택했다”고 전했다. 이 책은 시와 랩의 공통분모를 두고 어떻게 시가 랩이 될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다. 허 평론가는 영화 <패터슨>에서 볼 수 있듯 랩과 시가 친연성이 있다며 첨예한 테마에 대해 두 시인이 랩 배틀의 형식으로 시를 쓴 형식이 재미있고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추천했다.

허 평론가는 한 권의 시집을 읽을 때 모든 시를 읽고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계속 “요즘은 캘리그래피를 통해 시의 한 구절을 쓰고 전시하는 등의 수용 방법도 등장하고 있고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연구자나 평론가가 아닌 이상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한 권의 시집에서 스스로에게 빛나고 감응하는 한 구절만을 찾아도 시집을 읽는 것에 성공한 것”이라며 시를 읽어볼 것을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