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정균 (jeonggyun@skkuw.com)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한다. 필멸자의 운명이란 영원에 비하면 찰나의 반짝거림, 그 반짝거림은 때론 눈물만큼 여리고 불꽃놀이만큼 아름답다. 영화는 검은 스크린 위에 명멸하며 쇼트가 되는 광채로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필멸자다. 시는 언어의 너머를 더듬으며 자기의 세계를 찢어내고 전연 존재하지 않던 세계를 열어보이는 언어 위 필멸자다. 그래서 다시 사랑해야 할 목록은 채워진다. 오즈 야스지로, 장 뤽 고다르, 스티븐 스필버그, 웨스 앤더슨 그리고 정지용, 윤동주, 김수영, 최승자, 진은영 등 결코 채워지지 않는 목록들. 그리하여 결국 이들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장소 또한 사랑하게 된다. 영화관과 서점.

이 두 장소는 21세기에 헤겔식으로 말하자면 진보하는 기술에 맞춰 모습을 바꿔나가고 있다. 필름 영사기에서 디지털로 단관극장에서 멀티플렉스로, 동네 서점에서 대형 서점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변화는 새로운 삶의 양식과 편의를 주지만 한편 어떤 상실감 또한 안겨준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바닷가 시퀀스는 필름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파토스를 만들어냈고 이에 마음이 동하지만 여전히 필름을 고수하는 타란티노와 놀란의 고집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건 위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책과 함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동네 서점의 서가에서도 느껴지는 비애감은 세상의 속도에 한 발 빗겨서 그 장소가 유지됐으면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장편 서사의 무대가 끝나감을 아쉬워해 소설의 마지막 권을 아껴 읽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더욱이 사람과 서점을 매개하는 책이란 글자 이후의 세계인 역사와 함께 태어난 지식과 상상력의 운반자다. 책을 규모의 경제라는 시장의 논리에만 맡겨도 되는가. 책은, 상상력은 다양할수록 좋다는 명제를 보편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신자유주의의 논리로 동네 서점의 종말이라는 마침표를 찍고 난 후 등장하게 될 독과점의 시장실패란 황폐함은 우리를 얼마나 빈곤하게 만들 것인가. 다시 다짐한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홍정균 기자
홍정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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