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오카야마에 가 닿기 전, 1월의 나는 조금 바쁜 마음으로 무엇들이 시작되기 직전의 상태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일들을 준비하려면 그만큼의 다정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겨울의 오카야마는 그런 여운을 얻어 오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다. 오카야마 대학에 도착한 날, 새까만 캠퍼스에 몇 명이 덩그러니 서서 선명한 북두칠성과 눈 마주친 순간부터 시간은 느긋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2주 동안 시간을 걷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이. 

전철을 아주 많이 탔고 정말 많이 걸었다. 서울에서는 그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잠을 푹 자고 일어나서 어디로든 멀리 가는 버스를 타고 싶다는 생각. 사랑하는 사람들과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 하염없이 걷고 싶은 마음.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었을 길들을 따라 이어지는 전철들은, 나를 정말로 일상에서 멀어지게 했다. 유리병 속에 든 돌멩이 같은 기분이 묘하게 부드럽고 소중했다. 코지마나 덴포잔의 작은 바닷가는 그 기분을 꼭 닮은 소리를 내었다. 다정함이 이렇게 가만가만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느라 한참을 서 있었다. 나는 이런 마음들을 하루도 쉬지 않고 만났으므로 오카야마 근교와 도이야초의 거리들, 구라시키와 고베의 노을, 다카마쓰와 교토의 밤하늘을 찾아가야 했다.

학교생활을 떠올리면 눈 섞인 공기가 들이마셔 진다. 첫 월요일 아침에 눈이 내렸기 때문이다. 이곳에 몇십 년 만에 내린다는 눈과, 창문이 열리면 같이 열리는 ‘유키’라는 말소리. 처음 만들어보는 발음과 글씨체가 내 것이 되어가는 온전한 시간들. 수업이 끝나면 나오는 길에 따뜻한 녹차와 조그마한 푸딩을 먹을 수 있는 날들. 그렇게 충실하고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몰랐다. 더듬거리며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은 새로운 길을 걷는 일과 닮아 있었다. 살아가는 것에 대해 더 많은 방식으로 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굳이 소리를 내며 만만치 않게 살아가려면, 그런 방식들이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뎌지지 않도록 애쓰는 나날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천천히 생각하고 더 천천히 이야기하는 연습을 한다. 일부러 낯설어지는 습관을 들인다. 언제나 낯선 것들이 있다고 믿으면 마음이 편하게 가라앉는다. 오카야마에서 2주를 보냈으니 나는 그곳에 대해 예전보다 더 낯선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멀어진 후에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무언가를 지나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딜 가나 이방인이었고 또 어디에서나 환대받는 나날이었다. 내 서툰 말을 알아들으려고 기다려주고 웃어주었던 수많은 얼굴들과, 어떤 시간을 함께해준 사랑스러운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다가온 3월에는 다시 많은 것들이 시작될 것이고 나는 또 애정 어린 시간을 붙잡기 위해 애쓸 것이다. 마음이 힘들게 또는 힘차게 바스러지는 순간들마다 읽고 쓰기도 할 것이다.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기억나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춰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고요하게 다정해져야지. 겨울에 만난 바다에서처럼. 우리는 늘 뜻하지 않은 모습으로도 함께한다.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김민지 (국문 17)
김민지(국문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