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연수 기자 (yeonsoohc@skkuw.com)

인사캠 만남 - 최태성(사학 90) 동문

최태성(사학 90) 동문별별한국사연구소 제공
최태성(사학 90) 동문
ⓒ별별한국사 연구소 제공

“한 번의 젊음, 한 번의 삶 어떻게 살 것인가?”
강의 속에서 쉴 틈 없이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고민하게 만드는 
별별한국사 최태성(사학 90)동문을 만났다.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로 표현돼야
더 많은 대중에게 무료로 강의하고 싶어


소년, 책의 매력에 빠지다
“어린 시절,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접하게 됐어요.”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최 동문이 어린 시절 즐길 수 있던 것은 값싼 책뿐이었다. “친구 집에 있는 소설과 위인전 전집을 다 빌려 읽었어요. 또 매달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문방구에 배달되는 만화책을 읽었어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은 위인전이다. “한 사람의 역사를 담아낸 위인전이 그렇게 재밌었어요. 지금 역사가 재미있는 이유도 그때의 기억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책을 즐겨 읽은 경험 때문에 그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책을 즐겨 읽는다.

그러나 위인전에 대한 기억이 사학과 진학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역사를 좋아해서 사학과 진학을 한 것만은 아니에요. 고등학교 때 역사 성적이 다른 과목보다 좋았어요. 역사를 잘한다는 착각을 하고 사학과에 진학하게 됐어요. 그런데 대학교에 와서 고등학교 때 성적이 잘 나오는 것과 전공은 별개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아닌 우리를 생각하다
대학 시절 동양사학회 활동은 그에게 놀라운 경험을 선사했다. “처음 학회에 들어갔을 때는 당황스러웠어요. 공부하려고 들어갔는데 공부는 안 가르치고 철학을 가르쳤어요. 그러면서 철학 공부를 시작하고 토론에 참여하게 됐죠.” 학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만의 틀을 깨고 외연을 확장하는 경험을 했다. “고등학교 때 저는 존재감 없이 그냥 학교에 와서 조용히 수업만 듣는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대학에 와서 비로소 대화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이죠. 다른 사람과 의견 공유를 통해 머리통이 커지는 것이 대화란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그는 내가 아닌 우리를 생각하는 법도 배웠다. “제가 만난 선배들과 친구들은 모두 우리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처음에 그는 이런 환경이 낯설어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저 살자고 공부하는데 그들은 우리 사회에 대해 고민한다는 사실이 저를 참 초라하게 만들었어요. 그때 저는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저 자신에게 약속했어요. 내가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이 친구들에게 배운 ‘우리’라는 그 고민의 지점들을 잊지 않고 실천하겠다고.” 결국 그가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대학 시절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사 강연을 하고 있는 최태성 동문.
한국사 강연을 하고 있는 최태성 동문.
ⓒ이투스 제공

역사 길잡이가 되다
그가 처음부터 교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교직 이수를 하게 된 이유도 빨리 취업하기 위해서였어요.”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그는 대학 시절 가족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로 인해 안정적인 직장을 확보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취업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교직 이수를 한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교사가 됐다. 그는 교사가 된 이후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았다. “처음으로 수업을 하고 교실을 나왔을 때 아이들이 웅성거리던 것을 잊을 수 없어요. ‘우리 선생님 진짜 잘 가르친다’라는 소리를 제가 들었거든요. 저도 잘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됐어요.” 그때 그는 자신이 27년 동안 타인과 비교하며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인과 비교하면 저 자신의 장점을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나 자신과 비교하면 저만의 장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죠.” 학생들을 통해 장점을 발견한 그는 자신의 장점을 활용해 대학교 때의 다짐을 실천하고자 EBS 강의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EBS 강의이지만 2010년대 초반에 엄청난 위기가 찾아왔다. 한 언론사에서 최 동문을 모자이크 처리해 좌익 이념을 선포하고 선동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수능에서 EBS 연계 비중을 높인다고 했던 시기라서 이게 딱 터지니까 EBS뿐만 아니라 교육부, 청와대까지 다 난리였어요. 제가 해오던 모든 것을 접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최 동문을 구해준 것은 그의 ‘랜선 제자들’이었다. “그때까지는 랜선을 타고 오고 가는 강의가 소비되고 소모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직접 만나볼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 기사가 터졌을 때 저의 랜선 제자들이 저를 위해 힘써줬어요. 저를 위해 해당 기사에 댓글을 달아주고 해당 언론사에 전화도 하고 1인 시위도 해줬어요.” 이 사건을 겪은 이후 그는 자신이 이제껏 해왔던 강의들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때 저는 정말 큰 빚을 졌어요. 제 랜선 제자들을 위해 앞으로 더 좋은, 더 의미 있는 강의를 찍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2017년 그는 학교를 떠났다. 2016년에 김영란법이 발효됐기 때문이다. “많은 분이 김영란법을 부정청탁 방지법이라고 알고 계시는데 공무원인 저희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공직자들의 외부활동을 금지하는 법이 김영란법이랑 같이 발효됐어요. 이 법이 시행되니까 학교에 있으면서 EBS 강의를 못 하는 상황이 돼버렸어요.” 한 번도 학교를 떠나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최 동문은 수많은 고민 끝에 학교를 떠나기로 했다. “제가 그때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21년간 교직에 있었으니까 남은 10년은 더 많은 대중에게 좀 더 넓은 공간에서 무료 강의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학교를 떠나 이투스로 가게 됐죠.”

더 많은 대중에게 강의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루어진 현재 그의 누적 수강생은 500만 명이다. “저도 당황스럽다고 할 정도의 기록이에요. 한국사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수능에서 한국사가 필수가 됐고 공무원 시험에서도 중요해졌어요. 또한 교사가 되려면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급 이상 있어야 해요. 한국사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500만이라는 숫자 때문에 더 책임감 있고 의미 있게 강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역사란 사람을 만나는 학문
최 동문은 “많은 분들이 역사가 사실을 암기해서 시험 보는 것이라는 오해를 많이 해요. 역사의 본질은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어요. 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해보는 것이 역사예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역사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동사(動詞)’의 꿈을 꾼 인물들이라고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명사, 즉 직업이 꿈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직업이라는 명사는 꿈이라고 할 수 없어요. 내가 잘하는 것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꿈이에요. 즉,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표현돼야 해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동사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죠.” 최 동문에 따르면 우리가 역사를 통해 인물을 만나고 동사의 꿈을 고민할 때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해진다고 한다. 그는 “결국 역사는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원천이죠”라며 역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최 동문 동사의 꿈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제 꿈은 누군가의 삶에 건강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역사 길잡이예요”라고 답했다. “제가 제일 잘하는 것이 역사 개념을 잘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학생들뿐만 아니라 성인들까지 누구에게나 무료로 역사 강의를 제공하고 있어요. 이를 통해서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현재 최 동문은 한국사 강의만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사 무료화 작업이 끝나면 세계사 무료화 작업도 실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후배들에게 조언,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실천해라

최 동문은 성균관대학교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남겼다. “600년의 역사는 단지 숫자에 불과한 시간이 아니에요. 그 긴 시간 동안 성균관이 무엇을 해내고 있는지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성균관대학교는 6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회를 바꾼 인재들을 양성한 학교에요. 더 나은 삶을 위해 개혁을 추구했던 선배들이 지냈던 곳이라는 의미죠.” 이어서 그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그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말아야죠. 현재 그 공간에서 하루하루 생활하고 있는 후배들 역시 자신이 속한 사회의 변화에 대해 고민을 하고 실천함으로써 그 전통을 지켰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였다.

그는 교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도 조언을 남겼다. “내가 왜 교사를 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버티기 힘든 것이 교사거든요. 단순한 업무를 처리하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내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지를 먼저 고민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학생들을 향한 사랑과 관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