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인영 (ciy0427@skkuw.com)


처방에 드는 많은 시간과 비용 … 환자들의 걱정은 여전해
느슨한 개정안과 제한적 시행령 … 사회적 합의 필요

​​​​​​​오는 12일부터 자가 치료용에 한해 의료용 대마초가 수입돼 사용된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불법으로 규정된 대마초가 처음으로 의료 목적으로 수입되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의견이 나뉘고 있다. 마약을 수입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환자들은 의료용 대마초가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의료용 대마초가 합법화된 이유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정된 마약류 관리에 대한 법률
지난해 11월에 마약류 관리에 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의료용 대마초 성분이 포함된 의약품 수입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의료인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대마 성분이 포함된 의약품을 처방할 수 있고 환자는 처방받은 약을 자가 치료용으로만 소지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허가한 대마성 의약품 종류는 4가지다. △마리놀(MARINOL) △시빅스(Sativex) △시스매트 캐노메스(CESAMET·CANEMES) △에피디올렉스(Epidiolex)가 그것이다. 이 중 에피디올렉스는 환자들의 수요가 높았던 뇌전증 치료제로 알려져 있다. 허가한 4가지 의약품은 간질이라고 알려진 뇌전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나 파킨슨병 환자들이 주로 사용한다. 다만 해외에서 의약품으로 허가를 받지 않은 식품과 대마 오일, 대마 추출물 등은 허용되지 않는다. 허가받은 약들은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 한 곳에서만 처방될 수 있다. 의약품 처방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환자가 의료인이 작성한 처방전을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이후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가 외국 제약회사에서 약을 수입해 환자에게 제공한다. 환자가 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국내 대체치료수단이 없다고 판단한 의학적 소견서 △의약품명, 1회 투약량, 1일 투약 횟수, 총 투약일수, 용법 등이 명시된 진단서 △진료기록 △환자 취급승인 신청서 등 최소 12종류다.

식약처에서 허가한 마약성 의약품 4가지
식약처에서 허가한 마약성 의약품 4가지

 

의료용 대마초? 기호용 대마초?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마약 청정국을 자처해왔다. 오랫동안 대마초를 마약으로 규정해왔기 때문에 이번 개정안이 의약품이 아닌 마약 수입을 합법화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개정안이 허용하는 의료용 대마초는 마약으로 사용되는 대마초와 다르다. 대마초는 크게 의료용 대마초와 기호용 대마초로 나뉜다. 마약으로 규정된 대마초는 기호용 대마초다. 기호용 대마초에서 향정신성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주성분은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etrahydrocannabinol)이며 흔히 THC라고 불린다. THC 성분을 섭취했을 때 환각 효과가 나타나며 이외에도 △구강 건조 및 갈증 △심장 박동수 상승 △안구충혈 △혈압 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의료용 대마초의 주성분은 칸나비디올(Cannabidiol, 이하 CBD)이다. CBD 성분은 △결정성 경화증 △드라메 증후군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 △영아 연축 등의 난치성 뇌전증에 효과가 있다고 미국 *FDA의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도 CBD의 효능을 공식 인증했다. 같은 대마초라도 기호용과 의료용 대마초에서 사용되는 성분이 다른 것이다.

의료용 대마초가 필요한 이유
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 강성석 대표는 의료용 대마초를 사용해야만 치료할 수 있는 환자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의료용 대마초 성분이 들어간 약은 환자들이 이전에 처방받은 다른 약들에 비해 부작용이 적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의료용 대마초가 뇌전증 환자들에게 유일한 치료약인 것은 아니지만 *항경련제의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들에게는 유일한 치료약”이라고 말했다. 뇌전증의 치료제 중 하나인 항경련제는 중증, 만성 환자들의 약 의존성을 높이고 심하면 내장 기관까지 손상시킬 수 있다. 대한소아신경학회(학회장 이준수) 김동욱 박사도 논문 「항뇌전증 약물의 부작용」에서 뇌전증 치료약물이 가진 부작용을 기술했다. 김 박사는 논문에서 △기억력 저하와 같은 인지기능 저하 문제 △실조 등 중추신경계 부작용 △어지럼증 △졸림 △피로감 등 환자들에게 발생하는 부작용을 나열했다. 그는 “소아 환자들이 항뇌전증 약물의 부작용에 더욱 취약하며 부작용의 양상이 성인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항경련제에 약제내성이 있거나 진통제, 진토제와 항암 보조제가 맞지 않았던 환자들에게 의료용 대마초는 대체 가능한 의약품으로 받아들여진다.

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가 의료용 대마법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가 의료용 대마법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 제공


그럼에도 환자들의 부담은 여전하다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환자들은 이번 개정안에 우려를 드러낸다. 기존 약의 부작용을 피해 의료용 대마초를 선택했지만, 의료용 대마초를 처방받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의료 목적으로 대마초를 사용할 수 있게 법이 개정됐지만, 정부가 시행령으로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만 의료용 대마초를 공급하도록 제한시켜 놓았다”며 “환자들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식약처가 우선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의료용 대마초는 뇌전증이나 파킨슨병의 치료제로 쓰이는 항경련제 외에도 진통제, 진토제, 항암 보조제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 의약품 구입절차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 의약품 구입절차



강 대표는 의료용 대마초를 처방받을 수 있는 경우가 제한된 점도 문제 삼았다. 그는 “의료용 대마초는 식약처에서 허가받은 의약품이어도 *오프라벨 처방이 불가능하다”며 “식약처가 허가한 4가지 의약품에 적힌 대로만 의료용 대마초를 처방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행정적 보급이 원활해지기 위해서 해외에서 의료용 대마초를 보급하는 방식을 예시로 들었다. 그는 “해외에서는 영농 기업이나 바이오테크 기업에서 의료용 대마초를 생산해서 합법 대마초 판매점인 디스펜서리(dispensary)에 공급한다”며 “이러한 해외의 선진 사례 도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환자들에게는 약을 처방받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도 문제지만 구매하는 비용도 부담이 된다. 의료용 대마초 성분이 들어간 의약품은 보험 처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약을 처방받을 때 드는 비용의 80%는 건강보험부담금이다.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약값의 20%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 자가치료용으로 공급되는 약은 비보험 대상이다. 강 대표는 “식약처가 허가한 의약품 중 하나인 에피디올렉스는 1년 처방에 약 3600만 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완치를 위해서 수년 이상 약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의 가족에게 큰 부담이 되는 금액”이라고 말했다. 뇌전증을 앓는 자녀를 둔 황주연 의사도 “의료용 대마 오일을 약 1년 복용하는데 드는 비용은 약 3만 달러(한화 약 3천 350만 원) 정도”라며 높은 비용을 지적했다.

충돌하는 개정안과 시행령
강 대표는 지난 1월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모법에서 개정된 것을 정부가 시행령과 시행 규칙으로 한정 짓는 것은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대한한의사협회(회장 최혁용) 이은경 부회장은 “모법인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의 개정 취지에도 어긋나고 위법적 요소가 분명한 해당 시행령 및 시행규칙 입법예고안은 모법 개정 취지에 맞도록 수정, 보완돼야 마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법에 따르면 대마 또는 대마초 종자 껍질을 흡연 또는 섭취하는 행위는 금지하지만 ‘의료 목적’으로 섭취하는 행위는 허용된다. 의료 목적으로 대마초를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한 것이다. 따라서 시행령이 제한하는 의약품 규제를 완화하고 외국 제약사에서만 의약품을 공급하는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강 대표는 “시행규칙을 재개정하기 위한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 통과 이후 남은 과제
논란이 여전하지만, 개정안에 따라 의료용 대마초는 오는 12일부터 처방이 가능해진다. 식약처는 의료용 대마초 허가와 더불어 카이스트 화학과 최인성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에게 연구용 대마초 사용을 처음으로 허가했다. 또한 지난 1월에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진통제 수입 등을 추진하고 모니터링을 통해 추후 품목 확대 등 사회적 합의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을 통과시킨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대마초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에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신 의원은 발의안에서 “현행법은 아편, 모르핀, 코데인 등 중독성이 강한 마약류는 의료 목적 사용으로 허용되면서 대마초만을 예외로 하고 있다”며 현행법이 가진 한계를 드러냈다. 신 의원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개정안 통과를 통해 희귀질환 환자와 환우 가정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강 대표도 “앞으로 의료용 대마초에 대한 국민 정서와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목적 사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FDA=미국 식품의약국.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의 약자.
*항경련=근육이 갑자기 수축하거나 떨게 되는 현상을 억제함.
*오프라벨=적합한 약이 없거나 촌각을 다투는 환자의 치료를 위해 의료 기관이 꼭 필요할 때 식약처가 허가한 의약품을 용도 외 목적으로 처방하는 행위.
*모법=어떤 법의 근거가 되는 법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