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정균 (jeonggyun@skkuw.com)

인터뷰 - 황호덕(국문)교수

반대되는 논리들이 꽂힌 백가쟁명의 선반
"서점은 서점 주변을 둘러싼 공동체의 것"

 

황호덕(국문) 교수는 학부생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책방 풀무질을 왕래하며 지냈다. 사회과학 서점이유통하던 책을 포함한 문화의 이야기를 그와 함께 따라가 봤다.

황호덕(국문) 교수는 학부생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책방 풀무질을 왕래하며 지냈다. 사회과학 서점이 유통하던 책을 포함한 문화의 이야기를 그와 함께 따라가 봤다.

풀무질과의 첫 만남
92학번 황 교수는 신입생 환영회 때 풀무질을 알게 됐다. 선배들은 풀무질 게시판을 통해 모임 장소를 공지하고는 했었다. “국문과 신환회 2차 어느 술집.” 황 교수는 그때 풀무질이 서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식을 전하고 학교를 드나드는 이들의 사랑방임을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당시 풀무질에 들어가면 풀무질 주인이 무슨 과인지 묻고 당신 과 선배는 이런 책을 봤다며 책들을 추천해 줬다. 그는 “봐야 해요?”라고 되물었고 주인은 다시 “이건 봐야지”라고 대답했다. 황 교수는 여러 책을 소개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지향에 맞는 책과 아닌 책을 찾을 수 있게 됐지만 이 과정에서 주인과 티격태격한 적도 있음을 고백했다. 그는 풀무질이 이사하기 전 2층 서가에는 대중적인 책 말고도 문건들이나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에 있는 책 또한 있었다고 반추했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의 풀무질
“1980년대의 사회과학 서점은 지금과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며 황 교수는 “대학생들이 오히려 학교 수업보다는 소모임이나 세미나 준비를 열심히 했었고 그 중심에 사회과학 서점이 있었다”고 전했다.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지금껏 받아온 제도교육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커리큘럼들을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1987년 이후에 사회과학 서적들의 합법화가 시작되고 이후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함께 여러 이론이 대학사회에서 용솟음쳤다. 황 교수는 “68혁명 이후 서구의 사회주의 재해석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압축적으로 이뤄졌다”며 “△합법과 비합법을 포함한 마르크스의 원전과 해설 △그것에 대한 비판적인 서유럽의 프랑크푸르트학파 △영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뉴레프트 경향 △프랑스에서 일어난 과학적 사회주의” 등을 꼽으며 당시의 이념들을 간략히 짚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신식민주의 상태 혹은 고도 자본주의 사회의 중간 단계에 있느냐에 따라 이념이 분화됐고 전자인 *민족모순(NL)이 먼저다 후자인 *계급모순(PD)이 먼저다 하는 논쟁도 벌어졌다.”

풀무질에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에 맞춰 정반대의 논리들이 꽂힌 백가쟁명의 선반을 갖게 됐다. 그는 “이런 논리의 대립이 당시 사회과학 서점들의 융성과 관련돼 있을 것 같다”고 전하며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진보담론이 훨씬 다양해졌다”고 이야기했다. 민족·계급 범주의 우선성은 운동권 내부의 억압된 정체성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었다. 황 교수는 “진보담론은 거대 담론이 아닌 마이너리티에 방점을 찍으며 여성주의나 장애인 문제, 베트남 전쟁, 식민주의에 대한 문제 등으로 다양해졌다”며 “당시 우리 학교에서는 <성균비평>이라는 잡지, 여성잡지 <정정헌>, 지금은 없어진 대학원 신문 등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논쟁의 장 역시 사회과학서점이 일부 제공했다.

책을 포함한 문화
황 교수는 “서점에는 책과 책을 포함한 문화가 있다”며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사회과학 서점이라고 모두 그 서점을 이념의 장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생일 선물로 많은 이가 시집에 축하의 말을 써 주고받았는데 학생들은 풀무질에서 많이 읽히는 시집을 구매했다.” 그는 덕분에 친구 세 명에게 고정희 시인의 이 시대의 아벨을 선물 받기도 했으나 소중한 마음이 쓰인 세 권을 모두 책장에 꽂아 놓았다고 추억했다. 그는 “요즘의 풀무질은 예전 사회과학 서점이라기보다는 수험서도 들여놓고 여러 종류의 책을 들여놓은 인문과학 서점이라 생각된다”며 시대에 따라 지식의 성격이 변하고 서점은 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음을 전했다.

“책은 읽으려고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을 포함한 문화 속에 있어야 책을 읽을 수 있다.” 황 교수는 대학사회가 책 읽는 장의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점이 대학가 서점의 위기 이유 중 일부라고 보고 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새로운 매체의 발달로 요즘 문학 수업을 하면 책을 대하는 자세가 교육자나 학생이나 예전과는 달라졌다”며 많은 독자가 책을 포함한 문화 외부에 있게 됐고 자신도 일정 부분은 그것에 가담한 느낌이라 전했다.

대형 서점 외의 동네 서점의 필요성에 대해 황 교수는 서점의 속성에 주목한다. “서점은 주인도 출판사의 것도 아니다. 서점 주변을 둘러싼 공동체의 것이다.” 그는 “동네 서점을 둘러싼 공동체가 책을 포함한 문화를 갖고자 하는 열망이 있을 때 동네 서점에서 좋은 책을 우연히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지식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등대가 필요한데, 동네 서점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NL=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
*PD=민중민주(People's Democracy).

사진 ㅣ 홍정균 기자 jeonggyun@skkuw.com
사진ㅣ홍정균 기자 jeonggyun@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