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 차문석 (정치학 강사)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오랫동안 ‘서양’(미국을 포함해서)과 관련된 것들을 우월한 것으로 교육받은 우리는 전통적인 우리가치 보다 서양의 가치를 더 존중하는 이상한 존재가 되었다. 프란츠 파농의 문제의식을 빌린다면, ‘황색 피부, 하얀 가면’이 아니던가. 그러나 최근 몇 년 전부터 날조된 서양 문명의 역사적 궤적들에 대해 ‘오리엔탈리즘’,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등의 사유와 서술양식은 이상화된 유럽에 균열을 가하고 있다. 폰타나의 이 책은 날조된 유럽의 역사를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탄생과 육성에 대한 사이드(E.Said)의 작업과 맞먹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기껏 도시 국가들로 난립했던 폴리스(polis)들이 당시 문명과 제국적 질서를 구가했던 非유럽세계(오리엔트)에 대해 느꼈던 열등감과 굴욕감이 사실상 ‘오리엔탈리즘’의 초기적 형태였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조셉 폰타나가 저술한 『거울에 비친 유럽』은 유럽의 대표적 지성들(에코, 브라운, 귀레비치, 구디, 르 고프, 롯시 등)이 “유럽을 만들자”라는 의도로 기획한 총서(26권) 중 1권이다. 유럽 문명과 역사의 전 분야를 점검하고 있는 이 총서는 유럽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성찰과 전망을 위해 기획되었다. 특히 『거울에 비친 유럽』은 유럽 중심적 세계사 해석에 근본적인 비판을 가한, 이른바 전통적 역사관에 맞서 수정주의적 경향의 역사관을 대표하는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폰타나가 ‘거울’이라는 개념으로 유럽을 분석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유럽(이라는 관념)의 형성은 非유럽세계의 ‘타자화’를 수반하는 매우 잔인한 역사적 과정이었다. 폰타나는 이러한 잔인한 유럽의 형성 과정을 일그러진 거울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하여 유럽사를 폼나게 구축했던 전통적인 시선들을 ‘일그러진 거울들로 이루어진 유령의 집’으로 묘사한다. 이 책의 부제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는 바로 이런 의미를 지닌다. 이때 거울은 야만적 유럽을 ‘화장’(化粧)하여 그 야만성을 은폐하고 신화화된 유럽을 창출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폰타나의 의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의도를 한국의 싯구로 재생시켜본다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유럽의 진정한 역사를 꿈꾸는 것, 이것이 “유럽을 만들자”는 새로운 기획의 소산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폰타나는 이 유령의 집에다 야만, 기독교, 봉건제, 악마, 촌뜨기, 미개, 진보라는 일그러진 거울에 자신을 날조하여 정의해 온 유럽사를 분석한다. 이 거울을 통해서 마치 자신들이 ‘타자들’(비유럽인들, 비기독교들, 농민들, 민중들, 여자들)보다 우월하고, 그래서 자신들의 타자에 대한 지배가 정당하다는 왜곡된 관념을 세계에 투사했던 것이다. 결국 폰타나는 유럽인들이 하루 빨리 이 유령의 집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자신이 구축한 ‘게토’에 갇혀 결국에는 “자신들의 말살을 준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거울들의 방 밖에서’ 유럽이 해야 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근본주의’로 무장한 전체주의 미국은 여전히 일그러진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 사실상 폰타나의 주장은 21세기에도 그 비판적 칼날이 유용함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미국중심의 세계 재구성(지구 제국)이 21세기 ‘유럽들’을 만들어 내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면 폰타나는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거울에 비친 미국”의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