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2018년 4분기 한국 TV 드라마 중 최대의 화제작은 반론의 여지 없이 <SKY 캐슬>이었다. 권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들이 자아내는 모순이 주는 쾌락은 즉각적이었고, 이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 또한 자연스러웠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오른 부유계층들이 각자의 욕망을 위해, 자신들의 지위를 십분 활용하며 펼치는 권모술수들, 그 속에서 비틀려 무너져 가는 개인과 가정의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를 조망하는 시청자들의 관음하는 ‘시선’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흥행 정수였다.

같은 시기 KBS에서 방영한 16부작 드라마 <땐뽀걸즈>는 이러한 ‘쾌락’과는 거리가 멀다. 거제 여자 상업 고등학교에서 댄스 스포츠에 도전하는 학생들을 그린 이 드라마는 자본 집약적인 공간인 서울 대신 쇠락해가는 공업 도시 거제를, 전문직종 종사자들 대신 일용직 여성 노동자의 삶을, 숨 막히는 입시 경쟁 대신 당장의 삶을 이어나가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는 일견 대중 서사로서 흥행에 실패했다는 의미로 읽히지만, 동시에 다른 한 편에서는 ‘청소년’ 담론에 대한 ‘다양성’ 문제를 대중문화 내에서 어떻게 생각해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대중매체로서 KBS가 제시했던 ‘청춘 표상’의 계보는 장편 드라마 <학교> 시리즈로 집약된다. 희망찬 청춘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기존의 청춘 드라마와는 달리, <학교> 시리즈는 한국 학교에 도사리는 모순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학교’를 기존의 낭만화된 재현방식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집단 따돌림, 체벌, 자살 시도, 정신 질환에 얽매인 아이들의 이야기로 채웠다. 10년 정도의 공백기 이후 2013년부터 재가동 된 <학교> 시리즈 또한 원 시리즈의 비판의식을 잇는 한편, 2010년대에 이르러 새롭게 등장한 세습적 권력과 부가 어떻게 학교 사회 내에서 재편되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하였다.

불투명한 진로와 미래 앞에서 갈등하는 아이들의 감정과 갈등을 그린다는 점에서 <땐뽀걸즈> 또한 <학교> 시리즈의 정신적 계승자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땐뽀걸즈>의 구성은 전략적으로 <학교>와는 다른 길을 택한다. <학교>의 주된 갈등 요소인 ‘성적’과 ‘입시’, 이를 통해 매겨지는 권력체제는 거제 여자 상업고등학교에서는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의 앞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취업 문제, 노동현장에서 사회 초년생으로서 겪는 괴로움,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맞이하는 하루하루다.

자신을 버린 친모에게 찾아가나 오히려 그녀에게 고소당하는 혜진,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속여 가며 춤을 배우는 영지, 대학 등록금을 위해 아버지의 죽음을 업무 환경에 의한 사고사가 아닌 우울증에 의한 자살임을 인정해야만 하는 시은. 춤을 위해 모인 학생들의 이야기 각각에 드리워진 어둠 속에서 이 작품은 시종일관 밝은 곳만을 비춘다. 작품 특유의 밝고 화사한 색감, 경쾌한 연출, 카메라의 따뜻한 시선은 이들의 삶이 불행 포르노 같은 관음의 대상이 아닌 현재 이 땅에서 같이 숨 쉬는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끊임없이 환기한다.

대학에 가는 것이 삶의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는 여성 청소년의 삶을 조망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러한 시선을 통해서 그 정당성을 획득한다. 보이지 않는 것, 기억되지 않는 것, 재현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 거제여상 스포츠 댄스 동아리 ‘땐뽀걸즈’의 학생들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있다.

글 l 김재형(일반대학원 국문학과 석사과정ㆍ4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