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인영 (ciy0427@skkuw.com)

사소하게 신경 쓰이는 것들이 있다. 발 사이즈보다 5만큼 더 커서 발뒤꿈치에서 달랑거리는 235 신발, 매번 인형이 바뀌지만 내가 원하는 인형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인형 뽑기 기계, 작고 흔한 맛이지만 항상 사람들이 복작복작한 마카롱 가게.

신문사도 그 정도만 신경 쓰이는 일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머릿속에서 잠깐 까먹었다가도 오래지 않아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것이었다면 조금 더 편하게 생활하지 않았을까,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만큼 신경 쓸 일이 많은 신문사 생활이었다. 기사를 잘 쓰는 것도, 인터뷰를 부탁드리는 것도, 사진을 찍거나 구하는 것 전부에 신경을 쓰느라 마음이 바빴다.

하지만 그중에서 내 마음을 더욱더 가쁘게 만드는 것은 ‘과연 내가 잘하고 있나?’는 질문이었다. 이 기사가 남이 읽어도 잘 이해될 수 있을 만큼 잘 쓰였나. 단순히 나만 만족하는 기사가 되지는 않을까. 내 기사로 하여금 독자가 이 사건에 대해 공평한 시선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는가. 1646호 발간 전까지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런 고민을 질질 끌기에 당장 닥친 마감에 숨이 가빴고 연락을 받지 않는 교수님, 원고 분량에 대한 두려움이 자기 전마다 나를 압박했다. 두려운 한 달이었다.

그렇게 끝없는 고민과 걱정 속에서 신문이 발간됐다. 내 기사에는 아무런 고생의 흔적이 담겨있지 않았고 두어개는 그때로 돌아가 다시 쓰고 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들 만큼 부끄러웠다, 후회도 느껴졌다.

하지만 후회 속에 잠긴 내 오래된 마음쓰임의 끝은 ‘그럼에도 해냈다’는 것이다. 첫 인터뷰 기사부터 순탄하지 않았지만, 기사의 방향을 찾지 못해 허둥댔지만, 몰아치는 마감에 3월 한 달 내내 새벽에 혼자 궁상맞게 굴었지만, 그럼에도 난 무사히 모든 기사에 완고라는 마침표를 찍었다. 남이 보면 대체 뭘 잘했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기자로써 기사를 마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 ‘당연함’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가 숨어 있는지 아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발간 전 주 토요일마다 신문사에 스무 명 이상이 모여서 반나절 동안 같은 글을 5~6번 읽는 하루 동안의 일에 ‘당연하다’는 표현은 민망하다.

1646호를 마감하며 난 내 열다섯 번째 기사에 마침표를 찍는다. 몇 개를 더 쓸 수도 있고, 여기에서 마무리할 수도 있다. 쓰고 싶은 주제보다는 쓸 수 있는 주제를 더 많이 쓴 정기자는 여전히 아쉬움이 가득하다. 이 작은 마음 쓰임이 또 다른 마음 쓰임을 낳을 수도 있다. 세 번의 발간을 마치고 학업에 집중하며 간간히 신경 써봐야겠다. 끝없는 신경 쓰임이다.
 

최인영 기자 ciy0427@skkuw.com
최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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