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상환 편집장 (lsang602@skkuw.com)

일련의 사건들이 채색한 사회의 풍경은 암담하다. ‘버닝썬’ 사건으로 시작된 성범죄와 비리, 마약 사건 그리고 제시되고 있는 수많은 범행 정황들까지. 대중을 분노케 할 사건들로 가득했다. 사태는 점점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결코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라며 "법무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이 함께 책임을 지고 사건의 실체와 제기되는 여러 의혹은 낱낱이 규명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버닝썬 사태’를 보는 일은 슬프고 기막혔다.

다만, 현재는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라’나 ‘범죄자니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식의 구호만이 가득하다. 만약 우리 사회가 마약, 성폭력, 정치 비리가 뒤섞여 나타난 이 사건으로부터 ‘악인들이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식의 흔하디흔한 교훈밖에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건 자체보다 더 큰 비극이다.

철학자 에덤 모턴은 『잔혹함에 대하여』에서 악을 정의하고 분석한다. 이미 오래전 발행된 책이지만, 이 책은 ‘버닝썬 사태’와 같은 끊임없이 악이 벌어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그는 『잔혹함에 대하여』에서 “악은 오히려 보통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에서 비롯되며, 악이 존재한다는 관념 자체가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잔혹 행위를 가로막는 저마다의 심리적 장벽을 갖고 있는데, 이 장벽을 넘어설 때 악행이 발생한다. 애덤 모턴의 설명을 빌리자면 ‘버닝썬 사태’의 당사자들은 “문화적 토양에서 신념 체계가 형성된 사람들”이다. 클럽 문화 속에서, 그리고 ‘몰카 혐의’가 만연한 이 사회 속에서 자란 ‘문화적, 사회적 토양’이 악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버닝썬 사태’의 사회적 맥락을 제공하거나, 혹은 방관했다는 혐의를 쉽게 벗을 수 없다.

한편, 모턴은 악을 대면하기 위한 방법으로 용서와 화해를 구분했다. 용서는 참회의 끝에서,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하겠다는 의지다. 다만, 화해는 그것을 눈감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미래를 함께 구상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은 용서해서는 안 되지만, 어쩌면 인간이라면 그런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믿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홀로코스트의 비극으로부터 나치당이라는 악인들이 저지른 악행과 더불어 이에 동조해온 독일 국민과 전체주의 사고가 낳은 참사를 목도했다. 화해는 그 비극을 나치의 일탈로만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전체주의라는 사고방식의 무서움을 깨닫고, 이를 인정하며 대면하고 대비하는 일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악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하는 사회일 것이다. 끊임없이 악과 대면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사회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이 사건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사건의 배후에 있을 구조화된 악과 비리, 무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상관성을 그리는 거대한 사실적 벽화를 그려내야 한다. 그리고 악을 대면하며 사회적 분노를 미래를 향한 동력으로 바꿔야 한다. 사회를 바꾸는 일은 가능하다고, 우리는 말해야 한다.

이상환 편집장 lsang602@skkuw.com
이상환 편집장
lsang602@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