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원구 (kwg0328@skkuw.com)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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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 반증할 수 있어야 과학적 진술
쿤, 과학은 서로 다른 체계가 교체되며 발전해


과학과 비과학 나누기
비(非)과학과 진짜 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은 역사적으로 논란이었다. 20세기 철학자 칼 포퍼는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문제를 ‘구획 문제(demarcation problem)’라고 명명했다. 이에 대해, 과학은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 실증주의와 과학은 반증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반증주의가 대립했다. 논쟁은 논리 실증주의가 주류 과학철학이 되면서 시작됐다. 서울대 철학과 천현득 교수는 “20세기 초 독일어권에서 활동하던 많은 철학자는 당시 유행하던 구태의연한 형이상학을 배격하고, 새롭게 발달하던 논리학과 수학, 상대성이론 등에 영향받아 철학도 혁신해야 함을 주장했다”고 말했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논리상 자명하거나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만이 의미 있으며, 대다수 철학 문제는 용어가 추상적이어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경험주의 철학의 시조인 프랜시스 베이컨의 귀납주의 방법론을 따르는데, 이 방법론에서는 연구자의 편견 없는 자료수집을 전제로 한다.

논리 실증주의자에게 특정 명제가 과학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은 ‘검증 가능성’이다. 그들에게 검증 불가능한 명제는 곧 의미가 없다. 따라서 그들에게 신학이나 형이상학은 무의미하고, 과학만이 철학의 대상이다. 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범준(물리) 교수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이란 과학자들에게 ‘관찰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며 “관찰할 수 없는 것은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논리 실증주의가 과학에 미친 영향은 크다. 김 교수는 “양자역학을 만든 두 가지 방법의 하나는 관찰 가능한 것만을 가지고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지금도 양자역학에서는 관찰할 수 있는가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며 논리 실증주의의 의의를 설명했다.

칼 포퍼와 반증주의
하지만 모든 것을 검증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들이 사용하는 귀납 추론이 타당할 수는 있지만, 계속해서 내용이 확장되기 때문에 절대적이지는 않다. 논리 실증주의를 따르다 보면, 보편성이 중요한 과학 명제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예를 들어,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이 과학적임을 검증하려면 모든 까마귀가 검은지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무의미한 진술, 곧 비과학이 돼 버린다.

포퍼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반증 가능성’을 제시했다. 수많은 실험도 가설이 확실함을 검증하지 못하지만, 가설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은 반례가 하나만 있어도 가능하다. 우리가 현재 믿고 있는 과학은 여러 반증 시도를 견뎌왔다. 예를 들어, ‘지구는 평면이다’는 말은 과학은 아니지만, 반증할 수 있으므로 과학적 진술이다. 하지만 ‘지구는 신이 만들었다’는 진술은 경험적으로 반증할 수 없으므로 과학적 진술이 아니다. 천 교수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 같은 과학에는 이렇게 반증 가능성이 있지만, 사이비 과학에는 반증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포퍼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반증 된 가설은 버려지는데, 그러한 가설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사이비 과학이다. 

칼 포퍼 대 토머스 쿤
포퍼에 따르면, 이론에서 예측이 틀리면 그 이론을 철회하는 반증 가능성이 과학의 특성이다. 따라서 반증 가능성이 없으면 과학이 아니다. 하지만 반증주의가 과학을 정의하는 절대 기준은 아니다. 반증주의도 결함이 있는데, 실제 과학 활동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포퍼는 과학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는 이론이 반증 되면 바로 폐기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존 이론을 뒤집는 실험 결과가 있다 해도 정작 그 실험이 신뢰할 만한지 보장할 수 없고, 실제 과학 활동에서는 이론이 반증 되면 바로 폐기하고 다른 이론을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이 지적한 반증주의의 문제점이다. 쿤은 이때까지의 ‘전통적 과학철학’이 실제 과학 활동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전통적 과학철학’은 과학의 기준으로 검증 가능성이나 반증 가능성 등의 ‘방법’을 제시했다. 이러한 견해는 인간의 관찰이 객관적임을 상정한다. 하지만 배경 지식에 따라 관찰 결과가 다르다는 형태주의 심리학이 발달하며 ‘관찰의 객관성’은 위협받는다. 천 교수는 “논리 실증주의자나 포퍼는 관찰과 추론을 통해 얻은 데이터는 누가 봐도 똑같다고 생각해 이를 통해 실험하면 객관성이 확보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쿤은 모든 시대와 분야를 관통하는 중립성은 없으며, 우리의 사고는 한정된 패러다임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며 쿤의 주장을 설명했다. 

과학혁명과 패러다임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이란, 특정 시대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인식 및 지식 체계다. 패러다임이 되려면 과학자들이 범례를 이용해 정상 과학 활동을 해야 한다. 쿤에 따르면, 패러다임과 실제 현상 간의 유사성을 포착해 범례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과학 발전이 이뤄진다. 쉽게 말해, 과학자들은 여러 현상이 어떻게 패러다임에 부합하는지를 익힌다. 이러한 활동이 ‘정상 과학(Normal Science)’이다. 천 교수는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의 핵심 의미는 범례다. 범례가 있어야 정상 과학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대성이론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됐다면 그 이론이 해결한 여러 문제가 범례다. 범례가 책에 등장하고 실험에 활용된다. 이것을 가지고 과학자는 연구하고, 학생은 공부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개념을 법칙으로만 배우지 않고 범례를 통해 학습하고, 범례와 유사한 문제를 발견해 연구하며 범례와 비슷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정상 과학 활동을 통해 패러다임은 확장된다.

정상 과학 시기에 과학자들은 논리 실증주의처럼 사례를 모으지도, 반증주의처럼 반례를 찾지도 않는다. 과학자들은 이미 해답도 있고, 해답을 찾는 방법도 주어진 상황에서 과학을 한다. 비유하자면, 과학자라는 게임 유저들은 특정 패러다임이라는 규칙을 가진 ‘정상 과학’이라는 게임을 한다. 이 게임에서 유저들은 게임이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면 규칙이 잘못됐다고 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탓한다. 오늘날 실제 과학 활동에서도 상대성이론에 근거한 연구 결과가 의도한 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상대성이론을 의심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문제점을 찾기 마련이다. 이는 포퍼의 주장에 반대되는데, 실제 과학 활동에서 반증되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과학자고, 과학자는 그 이론을 버리지 않고 수정해 나간다.

한편, 과학혁명은 기존 패러다임에 변칙사례가 많아지고, 이에 따라 과학자들의 심리 불안이 고조되며, 결정적으로 변칙을 확실히 해결하는 대안이 등장하면 패러다임이 전환되며 일어난다. 기존 패러다임을 끝내 놓지 못하는 과학자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오면 과학혁명은 완성된다. 다만,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 패러다임의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지는 않다. 그저 기존 패러다임의 변칙사례를 효과적으로 해결했을 뿐이다. 과학혁명은 선형적 진보가 아닌 양립 불가능한 세계관 간의 교체다. 토머스 쿤 이전에는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뉴턴 역학이 해결했고, 뉴턴 역학이 규명하지 못한 중력 발생 원인을 아인슈타인이 해결한 것처럼 과학은 누적되며 발전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물리학자이기도 했던 쿤은 실제 과학은 누적되며 발전하지 않고, 개념적으로 다른 과학 체계끼리 교체된다고 생각했다. 즉 과학 발전은 하나의 건물을 점차 쌓아가는 과정이 아닌, 기존의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세우는 과정과 같다. 천 교수는 “다만, 새로운 패러다임이 이전 패러다임의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며 “예를 들어, 플로지스톤 이론에서 산소 이론으로 넘어올 때 플로지스톤 이론이 설명하던 모든 현상을 다 설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중에는 무의미한 문제도 있는데, 이는 버려진다. 이어 그는 “또한 새롭게 지을 수도 없으니 기존 집의 벽돌 중 일부를 가져갈 수밖에 없다”고 과학혁명을 설명했다.

유사과학은 과학 발전의 동력?
그렇다면 쿤은 구획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그에게는 패러다임이 없으면 과학이 아니다. 천 교수는 “쿤은 점성술이 비과학임을 못박는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점성술과 천동설 모두 비과학이지만,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김 교수는 “점성술은 비과학이지만, 천동설은 과학이었다”며 “왜냐하면 천동설은 정상 과학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즉 패러다임이 있었기에 여러 과학적 결과를 얻어냈지만, 점성술은 패러다임도 없고 업적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비과학인 유사과학이 과학 발전에 이바지한 바가 있다. 김 교수는 “4원소설은 지금은 말도 안 되지만, 문제의 원인을 자연 안에서 찾으려는 시도와 나름의 정합적 방법을 이용한 점은 과학 발전에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천 교수도 “연금술은 결국 근대 화학의 토대가 됐다. 연금술이 보여준 자연을 조작하려는 시도는 굉장히 중요하다”며 “시료나 실험 기구 발달에 영향을 많이 줬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연금술이 그랬듯, 유사과학은 과학 발전의 동력일까?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현존하는 유사과학이 미래에 과학사적 의의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점성술이나 연금술 같은 경우는 극소수의 사례일 뿐, 특정 시대의 유사과학이 미래 과학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절대로 말할 수 없다”며 “오히려 유사과학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우생학적 논리에 근거한 홀로코스트는 물론이고, 과거에 죽은 피를 빼냄으로써 치료한다는 사혈 요법이 있었는데, 과다출혈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김 교수는 “유사과학은 근절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유사과학을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