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 붐에 부쳐
융합 붐에 부쳐
  • 성대신문
  • 승인 2019.04.09 19:30
  • 호수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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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쇼크와 소위 4차 산업혁명 담론의 확산 이래 한국 사회와 대학에서는 ‘융합’ 바람이 불고 있다. ‘융합’의 개념과 양상이 복잡다단하여 정확히 그 실체를 아는 이가 없고, 과학기술과 자본이 인간을 테크토피아로 데려갈지 디스토피아의 던전을 열지 아무도 모르지만, 어쨌건 어느새 ‘융합’은 거부할 수 없는 당위처럼 되고 있다.

이런 바람은 늘 휘황한 새로움의 아우라를 걸치지만 사실은 그리 새롭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한때 세계적으로 유행하다가 어느새 사라지다시피 한 ‘통섭(consilience)’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라. ‘횡단(crossing)’이나 ‘하이브리드(hybrid)’는 또 어떤가? BT와 IT의 융합학위 국내에 출현한 지 어언 10년이 훌쩍 넘었고, 수의학ㆍ생명공학ㆍ의학 등의 융합 ‘드림팀’이 국가주의와 생명윤리 위반의  수렁에 빠졌던 ‘황우석 사태’가 지금도 생생하다.

명멸하는 이런 붐은 한편 우리가 얼마나 학문 사이의 좁은 격벽을 넘고 복잡한 현실에 적확한 새 지식을 갈망하는지, 또 한편 얼마나 발전과 선도의 욕망이 강하게 인간을 사로잡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바람의 배후에는 언제나 발전론과 광적 이윤 동기, 국가주의ㆍ패권주의 같은 어둠의 권세, 그리고 첨단기술이 자극하여 만들어내는 SF적 유토피스틱스가 뒤섞여 있다.

융합에 대해서 두 가지 흔한 태도를 자주 보게 된다. 첫째는 보수적인 융합 거부론이다. 여기에는 언제나 인간주의와 기초학문 옹호의 논리가 수반하지만 기실 과학기술의 힘과 패권적 학술자본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작동하는 경우도 많다. 더 나쁜 경우는 기존 학문체계의 선입견과 학과 이기주의가 함께 움직일 때이다. 이런 보수적 융합 거부는 비단 일부 인문ㆍ사회과학자들뿐 아니라 과학자ㆍ공학자들 사이에서도 꽤 자주 나타난다.

두 번째는 맹목적인 융합 찬양론이다. 무엇을 위한, 무엇을 향한 융합인지도 모르면서, 발전주의ㆍ국가주의ㆍ과학기술만능주의에 이끌려 융합만 하면 대박이 터질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기업이든 대학이든, 융합의 실패 사례들도 허다하다. <축적의 시간>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서울대 공대 이정동 교수가 짚듯, 분리되어 있던 요소들이 새로 융합되었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깊이 있는 고유의 핵심지식(core knowledge)이 없으면 융합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이정동 외, 『기업에서 융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문명과 경계』 1호, 2018.12.)

대학에서 감당해야 할 융합 연구와 융합 교육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 자연과학ㆍ공학자들은 인문학과 윤리학을 다시 배워야 하고 인문ㆍ사회과학 학생들 모두도 과학기술에 대한 리터러시를 갖춰야 할 형편이지만, 그 구체적 이념과 교정(敎程)이 무엇일지에 대한 합의는 없다. 누구도 잘 모른다. 그런데 어느새 융합은 실체를 가진 것이 되고 있다. 이번 학기에 우리 학교에서도 융합 학과가 새로 만들어지고 문화예술미디어융합원도 개원했다.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무엇을 위한 융합인지? 무엇이 융합의 중심 지식이며, 어떤 외부 지식과 지식 네트워크를 활용할 건지? 차분한 준비와 학술적 탐색이 충분했는지 걱정된다.

차제에 명륜ㆍ율전의 학생ㆍ학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융합교육, 융합연구에 대한 정밀한 계획과 건강한 토론이 활발히 오가기를 바란다. 그래야 새로움에 이끌린 학생들이 모르모트가 되지 않고, 또 이미 존재하는 융합적 커리큘럼이나 프로그램과 충돌ㆍ중복되어 재정이 어렵다는 학교의 자원이 낭비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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