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만 50번째’
‘이별만 50번째’
  • 성대신문
  • 승인 2019.04.09 19:51
  • 호수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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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첫 키스만 50번째>는 기억상실에 걸린 여성과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인기를 끌었던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명작이다.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 루시는 매일 아침, 잠에서 깨면 전날 있었던 일을 모두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성으로 이 여자와 사랑에 빠진 남자 주인공 헨리는 루시와는 첫 키스 이후로는 관계의 진도를 나가지 못하지만, 그녀를 헌신적으로 사랑한다. 기억상실증인 루시로서는 이런 생활은 매일 첫 만남만이 있을 뿐 헤어짐은 찾아오지 않기에 어떻게 보면 그녀는 사랑의 신에게 축복받았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은가?

여러분의 친애하는 화자인 나는 어떤 관점에서는 영화 속 여주인공과는 같으면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기억상실증도 없고, 매일 아침 나를 깨워주는 사랑하는 사람도 없지만 무언가를 하염없이 반복 중이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나는 이별을 겪는다. 혹자는 내가 월요일에 누군가를 사귀기 시작해서 일요일에 헤어지는 어처구니없는 방랑벽을 가진 사람으로 오해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명백히 누군가를 새로이 만나는 것이 아니다. 혹시 나의 이 만남이 없는 이별을 이상하게 느낀다면 루시가 이별 없이 만남을 계속한다는 것을 떠올려라. 대게는 그렇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분명히 나와 루시처럼 계속 이별만을 혹은 계속 만남만을 반복하기도 한다. 루시의 만남이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에 끝난다면, 나의 이별은 잠들면 시작되고 새벽녘에 끝난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의 빈도로, 나는 어떤 순간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눈이 펑펑 오는 길을 그녀와 나는 함께 걷는다. 유난히 따뜻하던 그 계절은 포근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가득 차고, 나는 어느새 봄바람이 불어옴을 느낀다. 그녀와 나는 다른 장소에서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간다. 그러나 얼마 안돼 나는 무언가 기시감을 느낀다. 그녀와의 대화가 이미 몇 번이고 한 것 같고 모든 행동이 이미 익숙할 때 즈음 여름과 함께 결말이 다가온다. 이즈음이면 나는 무언가를 깨닫고, 체념한다. 결말을 볼 때까지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영화의 결말은 최악이다.

한밤중에,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다. 악몽을 꾸고 난 다음 날이면, 나는 세계가 아직도 그녀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한다. 파도는 그녀의 숨소리를 내고 바람은 그녀가 즐겨 듣던 노래를 담아 불어오며 가게마다 거리마다 그녀와 지낸 시간이 녹아 있어 새벽에 꾼 꿈을 상기시킨다. 그런 날에는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나는 하염없이 방황하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결국 꿈의 결말에 대해 생각할 때 즈음 나의 시간은 노을을 만난다.

그녀가 남긴 흔적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은 노을을 등지고 환히 빛나던 그녀의 웃음이었다. 나는 추억 속으로, 빛나던 꿈의 처음으로 돌아가 어젯밤 꿈이 한편으로는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비로소 나는 그날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해 내고 여기가 어디인지 생각해 낸다. 그렇게 한밤과 한낮을 지나 다시 밤에 이르면 나는 나의 이 지독한 트라우마를 걱정하는 친구에게 애증을 담아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별만 50번째’라고.
 

유길선(기계 18)
유길선(기계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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