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상환 편집장 (lsang602@skkuw.com)

얼마 전, <고대신문> 편집국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울권대학학보사연합 회의를 하루 앞두고였다. “신문사에 심각한 일이 생겨, 신문사가 거의 올스톱인 상태다”라고 말했다. 연합의 회장직을 맡고 있던 친구였기에 당황스러웠으나, 사안이 제법 심각한 듯했다. 

<고대신문>에 들어가 보니, 비판이 가득했고 사과문까지 올라가 있었다. 글들을 읽어보니, <고대신문> 측 기자가 쓴 칼럼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논란이 된 부분은 서문에서 예시로 든 필자의 토론 수업 경험담이다. 필자가 듣던 토론 수업 중, 한 학우가 “사실,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긴 하죠”라고 말했다. 수업을 듣던 일부 학우들이 “성소수자들에 대한 비판”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고 한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논쟁이 <고대신문>에 불을 지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1980~1990년대 대학가와 시민사회, 정치권을 중심으로 퍼진 운동이다. 인종, 성별, 민족, 종교 등에 대해 편견을 갖지 말고 그런 차별이 포함된 용어나 표현을 쓰지 말자는 게 주장의 골자였다. 이 운동은 사회의 소수자들을 보호함으로써 다양성의 가치를 지키자는 의미였다. <고대신문>에게 ‘성소수자 비하 표현’이 들어간 칼럼을 왜 내보냈는가에 대한 비판이 가해졌다. 칼럼은 소수자를 비하했고, 다양성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떠한 주장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칼럼의 주장이었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주장도 권장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는 구분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불쾌하게 할 권리, 소수자를 모욕하고 비난할 권리를 줄 수는 없다. 칼럼이 비판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름으로 반대파에게 철퇴를 휘두르는 현재의 풍경은 우려스럽다. 본지의 홍정균 기자가 이번 호 <기자가 읽은 책과 세상>에서 다룬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는 현재의 우려를 잘 표현한다. 주인공인 피씨는 소설가다. 피씨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강요하는 이들에 의해 목소리를 잃고 어떤 작품도 쓰지 못하게 된다. 말을 말로써 부수는 일은 쉽다. 그러나 그 속에서 개인은 쉽게 목소리를 잃는다. 결국 어떤 토론장도, 공론장도 만들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성과 함께 '비판할 수 있는 자유' 역시 존중해야 한다. 소설가 E. M. 포서터의 말처럼 “민주주의가 위대한 이유는 두 가지, 다양성과 비판이다.”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상 경쟁’은 없다. ‘사상 투쟁’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토론이 아닌 언쟁이 된다. 비판 없는 다양성은 공허하다.

현재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담론은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비판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비판은 때때로 해롭지만,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답게 한다. 나는 알코올 없는 술, 니코틴 없는 담배, 카페인 없는 커피를 사절한다. <고대신문> 기자들이 목소리를 잃는 사태는 없길 바랄 따름이다.

이상환 편집장
lsang602@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