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말 2아웃, 아직 내 경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9회말 2아웃, 아직 내 경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 신민호 기자
  • 승인 2019.04.09 20:13
  • 호수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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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과캠 만남 - 장채근(체육 82) 동문

장채근(체육 82) 동문
사진 l 신민호 기자 dao96@skkuw.com

한국시리즈 6회 우승,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3회, 
한국시리즈 MVP 1회에 빛나는 
홍익대 야구부 감독 장채근(체육 82) 동문을 만났다.

우연히 시작한 포수, 한국시리즈 MVP가 되다
예의 바르고 노력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야구 전설의 서막
“야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친구들과 동네에서 야구를 하다 초등학교 야구부 감독님에게 스카우트 됐죠.” 장 동문의 실력을 한눈에 알아본 야구부 감독은 야구부에 들어오라고 그를 설득했다. 계속된 장 동문의 거절에 감독은 그의 부모님을 찾아가 책임지고 좋은 대학에 보내줄 테니 야구부에 넣어달라고 설득했다. 부모님과 감독의 설득 끝에 그는 야구를 시작했다. “야구를 시작하자마자 투수, 유격수, 3번 타자를 모두 맡은 걸 보면 제가 야구를 잘했던 모양이에요.”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고 광주 동성중학교에 스카우트된 장 동문은 각종 경기와 소년체전에서 활약을 펼쳤다. 중학교 3학년 시절, 포수로서의 인생이 운명적으로 시작됐다. “평소처럼 유격수로 뛰다가 경기 도중 포수가 갑자기 다쳤어요. 그래서 제가 급히 포수를 보게 됐는데 잘했던 나머지 이후로도 계속 포수를 맡게 됐죠.” 결국 장 동문은 포수로 광주 동성고등학교(광주상고)에 스카우트 됐다. 그는 1, 2학년 때는 경기에 많이 뛰지 못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인 1981년에는 봉황기 야구대회에서 1호, 11호, 21호 홈런을 쳐 ‘1호의 사나이’로 언론에 보도됐다. 같은 해 장 동문은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며 광주상고 에이스로 급부상했다.
당시 고교야구의 인기가 좋아 장 동문의 인기도 상당했다. “당시 야구 경기가 끝나면 여학생들이 동대문 야구장을 둘러싸 숙소에 못 돌아갈 정도였어요. 하루에 여학생 팬레터를 100장씩 받곤 했죠.” 1982년, 대한민국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해태 타이거즈는 장 동문에게 창단멤버로의 입단을 권유했다. 하지만 대학을 가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장 동문은 우리 학교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했다. 

후회 없는 선택, 성균관대학교
“연고대? 저한테는 다 필요없었어요. 안 때리는 데가 최고였죠.” 그가 연고대의 입단 제의를 뿌리치고 우리 학교 야구부를 택했던 이유는 하나다. 우리 학교가 제일 비폭력적이라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입학하자마자 한 달 동안 도봉산에서 에스카라 응원가를 연습했어요. 아무리 우리 학교가 안 때린다지만 선배들한테 무지하게 맞았어요. 그게 싫어서 저는 선배가 되고 나서 후배들을 때린 적이 없지만 왠지 모르게 후배들이 무서워했어요.”

당시 우리 학교 야구부는 갓 입학한 1학년 5명이 대회를 뛸 정도로 최약체였다. 하지만 실력이 출중했던 그와 동기들이 고학년이 되고 팀의 주축이 되자 팀 또한 강해졌다. “졸업하고 빙그레 이글스 투수가 된 제 동기, 한희민 투수와 열심히 운동했죠. 3, 4학년이 돼서야 우리 야구부가 우승하기 시작했어요. 다 희민이 덕분이죠.” 장 동문은 동기들과의 끈끈한 우애를 추억했다. “매일 새벽같이 동료들과 도봉동 숙소를 나와 113번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어요. 오전에는 전공 수업을 듣고 4교시가 끝나면 같이 점심을 먹고 운동을 했죠. 동기들과 술도 많이 먹고 미팅도 많이 했어요. 다 좋은 기억들이에요.”

장 동문을 특별히 아끼는 교수도 있었다. 장 동문은 “체육과 김승철 교수가 아직도 생각이 나요. 야구를 좋아하셨던 교수님은 저를 특별히 아껴주셨어요. 제가 프로 입단을 뿌리치고 떠들썩하게 입학했기 때문이죠. 지나고 보니 저한테 학점도 더 잘 주신 것 같고요”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장 동문은 대학에 오길 잘했다고 말한다. “대학에 가지 않고 바로 프로 선수가 될 수 있었지만 대학에 가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좋은 후배와 동기, 선배들을 만났어요. 또한 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성균관대학교 출신이라는 데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껴요. 우리 학교 입학은 저에게 후회 없는 선택이었어요.”

노력하는 천재, 장채근 선수
“1986년에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지만 1987년까지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해서 힘들었어요.” 해태 타이거즈는 규율이 강한 팀이었다. 선배들이 많이 때리기도 했다. 이런 힘든 상황 속에서 장 동문에게 큰 힘이 돼준 것은 선동열 선수였다. “선동열 선수는 초등학교 1년 선배였어요. 같은 광주 출신이었죠. 당시에는 김무종 포수가 주전 포수였어요. 하지만 선동열 선수는 저한테만 공을 던지려고 했어요. 그래서 팀의 에이스인 선동열 선수가 출전하면 저도 출전하곤 했죠.” 내일 경기가 없다면 자주 술을 마시곤 했다는 선동열 선수와 장 동문. 둘의 우정은 한국 야구 레전드 최동원과 선동열의 맞대결을 다룬 영화 ‘퍼펙트 게임’에서 등장하기도 했다.

장 동문은 해태시절 △1986년~1989년 △1991년 △1993년까지 총 6번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그는  본인이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한 1991년 우승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는 KBO 역사상 두 번밖에 존재하지 않는 진귀한 기록이다. “감이 너무 좋았어요. 뭔가 다 잘되는 해였어요. 기자들에게 내가 MVP 받을 거라고 공언을 하고 경기에 들어갔거든요” 그의 장타력은 피나는 연습을 통해 형성된 노력의 산물이다. “1987년 겨울에 무지막지한 훈련을 했어요. 새벽 3시, 4시까지 스윙연습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어요.”

그는 그의 프로시절 몸 관리를 못 한 것을 늘 후회했다. “포수라는 포지션은 계속 앉아있기 때문에 무릎이 안 좋을 수밖에 없어요. 당시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저 스스로 몸 관리를 잘 해야 했죠.” 그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1995년, 32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무릎 부상으로 은퇴했다.

호랑이 지도자, 포기를 모르는
그는 은퇴 후 후배 양성에 힘 쏟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해태, 기아, 우리를 거쳐 10년 넘게 프로야구 코치를 하고 중간에 1년 정도 일본으로 야구 유학을 다녀왔어요. 그동안 제가 선수와 코치로서 배운 걸 확인하고 보다 잘 가르치기 위함이었죠.” 이후 그는 2011년 홍익대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야구를 지도한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망설였어요. 감독 지원서를 쓸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죠. 그런데 어린아이들을 지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 동문이 감독으로 부임하던 당시 홍익대 야구부는 그가 선수로 입단했던 우리 학교 야구부와 똑같이 전국 최약체로 손꼽혔다. 그는 노력으로 두 팀을 모두 바꿔 놓았다. 장 동문은 부임 당시 “이렇게 야구를 하면 안 된다. 잘못하다간 나도 여기 같이 묻혀 죽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강하게 학생들을 지도했다. 혹독한 훈련에 일부 선수들은 팀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장 동문은 포기하지 않고 선수들과 같이 새벽까지 운동하고, 숙소에서 함께 먹고 자며 생활했다. 그는 본인이 뼈저리게 느꼈던 몸 관리 부재의 문제를 제자들은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제자들이 저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제자들 몸 관리에 신경 썼어요.” 그 결과 1년 만에 홍익대 야구부는 전국 대회 준우승을 할 수 있었다. 이후 홍익대 야구부는 여러 번의 우승을 거뒀다. “2014년의 전국대학야구 하계리그전 우승은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에요. 아무래도 첫 우승이라 제일 기분이 좋았어요. 첫 우승 이후 선수들도 자신감이 생겼죠.”

그는 감독으로서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다. “제자들이 프로에 가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프로에 지명 받고, 부족했던 선수들이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실력이 늘어가는 것을 볼 때 제일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요.”

장 동문은 대학야구 활성화에 대한 바람도 밝혔다. “대학야구가 많이 힘들어요. 대학에서도 야구팀에 돈이 많이 들어가서 자꾸 없애려는 실정이에요. 대회에서 우승을 해도 매스컴은 주목을 하지 않아요. 프로 야구나 KBO(Korea Baseball Organization,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직접 나서서 대학야구 활성화를 힘써줬으면 해요. 대학야구가 활성화 돼야 프로야구도 더욱 활성화 될 거에요.” 당연히 기회가 된다면 야구의 꽃인 프로감독이 되고 싶다는 장 동문.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야구하면 홍대라는 인식을 만들고자 노력 중이에요.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아요.” 

후배들을 위한 조언
그는 야구계에서 종사하고 싶은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남겼다. “비야구인들도 야구계에 충분히 종사할 수 있어요. 야구를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들을 위해 진심어린 조언을 남겼다. “저는 후배들이 먼저 예의 바른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유교의 정신을 본받아 노력한다면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채근 감독이 홍익대 야구부를 지도하고 있는 모습.
사진 l dao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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