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구지연 기자 (atteliers@skkuw.com)

인사캠 만남 - 서형욱(미디어 94) 동문

사진 l 구지연 기자 atteliers@skkuw.com
서형욱(미디어 94) 동문
사진 l 구지연 기자 atteliers@skkuw.com

“제가 해외축구에 대한 지식도 많고 외모도 어느 정도 준수하다며 중계를 시켜주더라고요.” (웃음)
서형욱(미디어 94) 동문의 한마디 한마디는 유쾌했다. 
그는 스포츠해설가가 되기 위해 어떠한 시간들을 보냈을까. 스포츠해설가 서형욱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외축구에 대한 애정, 해설위원의 길로 인도해
사람 가득 찬 경기장에서 K리그 중계해보고 싶어


해외축구에 대한 지식을 강점으로
“고등학교 재학 당시 축구 해설위원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서 동문은 “비선수 출신 최초의 해설위원이라는 타이틀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았지만 늘 우연한 기회로 해설위원을 하게 됐다고 대답했어요”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 당시 축구 해설위원은 대부분이 축구 선수 출신이었고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는 해설위원이 되기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를 한 적은 없다. “막연하게 꿈이 계속 바뀌어왔어요.” 서 동문이 축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98년도 프랑스 월드컵 때부터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대화하고 정보 나누는 활동을 즐겨 했어요. 축구와 관련된 단체나 소모임을 만들기도 했죠.” 축구에 대한 그의 관심은 학교 생활로 이어졌다.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공 한번 차보려고 신문방송학과(현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축구 소모임 ‘불나비’를 만들었어요. 당시 사회과학대학 체육대회에서 우승도 했었죠.”

대학 시절 그는 우연한 기회로 외부의 후원을 받아 ‘토탈사커’라는 축구 전문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 당시에는 커뮤니티 사이트가 별로 없었고, 축구만을 다뤘던 웹 사이트도 거의 처음이었을 거예요. 방송사도 해외축구에 대해 모르는게 많으니까 저에게 연락이 많이 왔죠.” 그 계기로 서 동문은 25살에 축구 애널리스트가 됐다. 그 때 연이 닿은 SBS 스포츠 채널 PD가 서 동문에게 해외 축구 중계를 제안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었는데, 그 당시 여자친구가 가볍게 한번 해보라고 하더군요. 알바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해봤어요.”

서 동문은 해설 위원으로 일하며 스스로 해외 축구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겉핥기 식의 해설이 하기 싫었던 그는 리버풀대학원 축구산업학과로 진학했다. “대학원 공부보다도 주변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 사람들과 대화한 게 가장 도움이 됐어요.” 해외 축구에 대한 그의 지식은 차곡차곡 쌓여 프리미어리그 녹화 중계로 그를 인도했다. 그렇게 서 동문은 복귀 후 국내 스포츠 채널 프리미어리그 해설을 도맡아 하기 시작했다.

‘진짜’ 직업이 된 해설위원
수많은 경기 중계로 경력이 쌓이며 서 동문은 축구 해설위원을 직업으로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 공을 찼던 사람이 해설을 해도 모르는 부분이 많다고 하죠. 저는 매 경기 힘들었어요.” 직접 공을 차는 경험을 해보지 않았기에 더욱 어려웠다. 한 선수의 움직임을 해석하고 이를 해설에 적용하려면 그 선수가 출전한 모든 경기를 보고 분석해야 했다. “해외축구 경기 중계를 위해 새벽에 일어났어도 육체적인 피로는 거의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 것보다 축구 해설을 하기 위해 모든 경기를 보고 분석해야 했던 점이 힘들었어요. 아무리 많은 자료를 봐도 놓치는 부분이 늘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서 동문은 가장 인상깊은 경기로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을 꼽았다. 세계 랭킹 1위 독일을 꺾었다는 것과 막판에 극적으로 들어간 손흥민의 골 때문이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손흥민 선수에 대한 애정이 깊어요. 손흥민 선수가 어릴 때부터 오래 알고 지내서 정이 가고 잘 되면 너무 좋죠”라고 말했다. “독일전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경기 자체의 드라마틱한 상황뿐만 아니라, 제가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경기를 중계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에요. 매 경기가 똑같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나라 월드컵 경기만은 꼭 중계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날의 중계 경험은 그에게 즐겁고 영광스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서 동문은 “우리나라는 인구 수 등의 여건에 비해 이상할 정도의 축구 강국이에요. 중국을 생각해보세요”라고 웃어보였다. “물론, 협회나 구단 측의 활동은 여전히 아쉬움이 있지만 전에 비해 발전하고 있어요. 하룻밤에 성공을 이뤄내기는 힘들겠지만, 이 방향으로 나아가다 보면 충분히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K리그의 회복은 필수적이라고 덧붙엿다. “K리그의 회복도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축구로 인한 기쁨을 느껴봤기 때문에 축구 바람이 불면 K리그도 다시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관중으로 가득 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K리그 중계를 해보고 싶네요.”

축구를 위한, 축구에 의한 풋볼리스트
서 동문은 동료와 함께 <풋볼리스트>라는 축구 전문 매체를 만들었다. “클릭 수 유도를 위해 제목과 내용을 자극적으로 구성하고, 대중의 요구에 맞는 기사를 쓰기보다, 이러한 풍토에 반기를 들고 싶었어요.” 그는 <풋볼리스트>는 일반적인 언론사보다는 독립언론의 성격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야기만 다루는 게 아니라 필요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얘기가 하고 싶어요.” <풋볼리스트>도 서 동문의 이러한 마음가짐과 함께하고 있다. 서 동문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도 다루고 싶어요. 기사와 칼럼 이외에도 영상 콘텐츠 등 다양한 형식을 도전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회사 대표라는 직함이 제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해요. 지금은 제게 해설위원보다는 <풋볼리스트>를 더 잘 이끄는게 중요해요.” 서 동문은 풋볼리스트를 보다 좋은 직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풋볼리스트가 기자 입문을 위한 회사보다는 은퇴까지 생각할 수 있는 직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운 좋은 사람을 넘어서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축구 보면서 돈 받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라며 서 동문은 웃어보였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질리거나 마음이 식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그런 사람은 그 일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해설위원이라는 직업을 통해 축구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는데, 그만큼 책임감도 깊어지더라고요. 제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 책임감이 생기죠. 팬으로만 남았다면 애정이 금방 식었을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는 축구에 대한 칼럼도 지속적으로 써오고 있다. “경기 자체에 대한 내용을 작성할 때보다 칼럼을 쓸 때가 가장 긴장돼요. 이렇게 부담을 갖고 글을 쓰다 보니 글에 대한 격려를 받을 때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의 말에서 남들이 꺼려하는 얘기를 앞장서서 하는 모습이 묻어났다. “그저 운 좋은 사람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계속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지만 예전에 축구 펍을 오픈한 적이 있는데, 그 때의 꿈을 다시 실현해보고 싶어요.” 서 동문의 축구에 대한 애정은 축구 펍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축구는 경기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과 같이 축구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경기를 보고 대화를 나누며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그의 목표 중 하나다. “펍에서 축구와 관련된 책만 모아서 공유하고 유니폼도 함께 구매하면 즐겁지 않을까요.”

후배들에게 조언, ‘연령 제한은 없다’
“저는 제가 뭘 하고 싶어 하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무모하면 안되지만, 하고 싶으면 해보세요.”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남겼다. 그는 “늘 자신이 어리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모든 일에는 연령 제한이 없는 거죠. 30살에 일본어를 배우다가 그만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왔다면 일본어를 유창하게 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들의 말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이 가는 일들을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으면 시도해보라’, 그것이 그가 살면서 깨달은 것이다. “무엇이든지 많이 해보세요. 연애도 많이 해보시고요.”

MBC 아시안컵 해설을 맡은 서형욱 동문.
MBC 아시안컵 해설을 맡은 서형욱 동문.
ⓒ서형욱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