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현(법학 졸)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학교앞 육교 사라지고 횡단보도 신호등하나 온몸으로 빛나고 있다.
바람이 가지에 할퀴어 울던 날 소리없이 육교 무너지고...

젊음은 신호등에 맞춰 횡단보도 앞 도로에 멈춰 있다.
깜빡이는 파란불과 뚜르르 울리는 신호음 사이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다가 잠시 멈추어 다음 차례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옆에 사람 빨리 뛰어 나간다. 새총에 쟁겨 둔 콩알처럼, 그 남자가 잘 건너가기를 바라는 맘 반, 뭔가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흥분된 맘 반이 불처럼 나뉘어 있다.

겨울인데도 학사모는 더욱 숨이 막힌다. 찍새로 동원한 후배놈은 연신 담배를 피워대며 흡연의 욕구를 재촉하지만 어메 앞에서 피기는 글렀다. 학사복 긴자락 밑에 숨겨둔 주머니 속 입사원서(실상 이건 나에게 상관이 없다. 학점 평균 3.5이상 토익750이상이란 무혐의 벽은 내게 큰 장애다. 졸준위 취대를 꼬셔서 얻은 게 겨우 이런거라니...)와 디스만 만지작 거린다. 대학 4년이 되면서 잘 나오지 않던 친구들이 양복을 입고 본관 계단 앞 잔디밭에서 어색한 포오즈로 사진을 찍고 있다. 교수님들을 사이에 두고 서로 얼추 재 키를 재어 알아서 선다. 뒷줄 중간에서 허리를 구부리며 김치하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본다. 앞줄에 뒤통수만 보인다. 교수님 옆에서 친한 듯 동기들과 서 있는 대가리는 2년 선배다.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하고 2차 발표만 기다리는 중이라고 어제 술자리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머리를 새하얗게 탈색시킨 저놈은 1년 후배인 문제의 꼴통이다. 올 시월에 결혼한다지. 임신시켰단 소문만 파다하다. 그 옆엔 까마득한 4년 후배 3년만에 졸업한다고 흥분했었지. 그 옆엔 시집간다는 여자 하나, 명함을 건네주던 동기 둘, 유학 하나, 대학원 진학 셋, 졸업하고도 학교 도서관에서 계속 봐야하는 지겨운 놈들 넷.(IMF와 경제에 대해 가장 떠들던 놈들이다.)
작년엔 그래도 경기가 청신호였는데...
목울대에서 간지러운 소리 같은 게 들린다. 심장 박동과는 다른 찌르레기 우는 소리같은... 어제 술을 잘못 먹었나? 자문하다가 몰래 가래를 뱉어 낸다. 피가 썩여 검붉음...
아 시원해라, 동기 한놈과 눈이 마주친다. (비)웃는다. (비)웃었다. 언제 사진을 찍었는지 생각이 없다. 빨리 이 더운 학사복을 벗고 싶을 뿐이다. 총장 축사는 동네 개 짖는 듯 흩어버리고 어매에게 할 얘기나 열심히 만들고 있다. ‘어매 나 집에 안 내려 갈란다. 와? 공부 더 해야지.’ 나조차 믿지 안는 넋두리를 열심히 게워내겠지. 옆집 철수 얘기나 안 들었으면 좋겠다. 등은 땀에 젖어 벗어나고 싶다. 뱀처럼 넥타이가 달랑거린다.

잊고 있던 급한 일이 생각나 신호를 쫓는다. 깜박거리던 청색이 꺼멓게 정지하며 빨간 불 속에 젊음이 속절없이 갇힌다. 신호등 소리 끊어진지 오래,
그래도 달린다.
그 순간의 정적 ...그리고 비명

하늘이 맑아 시리도록 푸르다. 오랜만에 땀에 누워본다.
여름 시원했던 그 밤 은하수 헤아리며 잠들던 그때에 행복은 나이들어서 오는 것인줄 알았다. 파랑새처럼
사람들이 빨간 신호를 밟고 뛰어오고 있다. 신호등 소리 살아난다.
삐용삐용삐용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l l l l

젊음에
기억된 신호들
- 파랑, 빨강 -.
횡단 보도 앞
신호등 하나 온몸으로 빛나면
젊음은 멈추어야 한다.

“얘 졸업사진이 이게 뭐냐. 꼭 장례식에 쓰는 영정 같아.”
 

시 가작 당선소감- 박수현(법학 졸)
이룬것 없는 졸업의 막막한 심정

먼저 부족한 저를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를 쓴다는 게 어렵다는데 이런 큰 상을 받게 되어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전에 쓴 시들을 지금 다시 읽어보니 말장난 같은 대구들로 가득 차있더군요. 아마 이 시가 그래도 뽑혔던 건 졸업을 앞에 두고 느끼는 두려움을 글로 적었고 그 당시 저의 혼란스런 마음을 가장 담담히 담아 내었기 때문이겠죠. 끝으로 이 시에선 화자의 시점이 번번이 변하는데 다소 읽는데 혼란스러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학교앞 육교의 철거와 졸업 전에 지하철에서 사고난 광경을 목격하고 이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여러 경험들이 혼란스럽게 연결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졸업하는 심정을, 그리고 끝이 아닌 시작하는 자의 막막함을 허술하나마 담아내려 애 썼습니다. 모든 일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지만, 진정한 끝은 죽는 날까지 오지 않겠지요. 엔드가 아닌 앤드를 기약하며 저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비 내린 다음의 무지개같은 희망이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