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기황 (rlghkd791@skkuw.com)

법최면수사, 억압돼 있던 기억 회상시켜 사건 해결에 기여
최면수사관 자격 법제화 및 최면수사 지침 제정 필요해

흔히 사람들은 최면에 대해 마술적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면은 과학에 근거를 둔 하나의 기술이다. 때때로 최면은 수사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법최면수사는 우리나라보다 미국에서 먼저 시작했으며, 많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줬다. 법최면수사는 무엇이고, 정말 수사에 이용해도 되는 방법일까? 찬찬히 살펴보자.

최면과 수사의 교집합, 법최면수사
『경찰학 사전』에서 정의 내린 법최면수사란 시간의 경과 혹은 범죄로 인한 심리적 외상의 이유로 기억 인출이 곤란한 피해자 혹은 목격자의 기억 회상을 고양하기 위해 신문 시에 최면기법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 수사 방법은 물리적 단서가 없고 피해자 혹은 목격자 진술에만 의존해야 하는 사건 수사의 경우에 주로 사용한다.

무의식 속 단서, 최면으로 끌어내기
1997년 박희관 신경정신과 박희관 원장이 범인의 차량을 본 목격자에게 최면기법으로 차량번호를 회상해 범인을 검거한 게 국내 최면 수사의 최초 성공사례다. 그 후 1999년 최면 수사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법최면수사를 통해 가장 많은 성공을 거둔 범죄는 뺑소니 범죄와 성범죄로 알려졌다.

2003년 4월경부터 충남의 당진, 예산 등지에서는 트럭을 운전하는 용의자가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을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가 약 11회에 걸쳐 연쇄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수사대는 피해자 두 명을 대상으로 법최면수사를 실시했고 피해자들은 △용의자의 인상착의 △용의자의 차량 번호 △차량 내부의 정보 등을 회상했다. 이를 바탕으로 수사해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법최면수사가 이용된 또다른 사건은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은 2004년 2월에 발생했으며, 당시 피해자인 엄 양의 시신은 심한 부패 때문에 사인과 사망 시각을 특정할 수 없었다.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으나 끝내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고, 이 사건은 대표적인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그러나 16년이 흐른 올해 해당 사건에 관한 제보자가 등장했고 트라우마가 남아 있던 제보자를 대상으로 박주호 법최면수사관이 법최면수사를 실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용의자의 몽타주를 제작했고 현재는 공개수배 중이다.

수사, 최면, 그리고 기억증진
곽 교수는 법최면수사가 수사의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는 최면의 특성은 기억증진이라고 설명했다. 최면에 몰입하게 되면 기억의 양이 증가해 잊어버렸던 과거의 사실을 기억해내 경험했던 사실을 되살릴 수 있게 된다. 즉, 강력사건 및 교통사고의 피해자 또는 목격자가 충격이나 놀람 등 심리적 외상과 시간의 경과로 사건 관련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에 유용하게 이용된다. 법최면수사로 증인의 정서적 안정 및 사건 당시로의 심리적 퇴행을 유도해 회상을 도와준다.

특히, 범죄의 실체가 뚜렷하게 존재하지만 가시적인 물증이 없어 범죄 피해자나 목격자의 진술에 의존해 단서를 찾아야 하는 사건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이러한 사건의 경우 법최면수사가 억압돼 있던 기억을 회상시켜 사건의 단서를 찾아내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최면, 만능 수사 도구는 아니에요
곽 교수는 논문 「법최면수사의 성공사례 분석 및 발전 가능성 연구」에서 법최면수사의 대상자를 피해자 또는 목격자로 한정 지었고 그 대상을 범죄자에게 적용하기 위해 범죄자가 자백한 경우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면의 특성상 피최면자 본인의 의지가 있어야만 최면 수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용의자를 범인으로 확정하기 위한 경우나 피해자 및 목격자에게 최면을 사용했을 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감정적으로 충격을 받을 것이 예상되는 경우도 법최면수사를 활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건이다.

한국법과학회 김광원 박사는 논문 「법최면수사 활성화 방안」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긴급한 사건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타의 논리적, 전통적 수사 기법을 적용해 본 후, 효과가 없을 경우만 최면기법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면의 이용은 증인의 증거 능력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최면을 통해 입수한 모든 단서는 물리적 증거나 증언이 뒷받침되도록 반드시 검증돼야 하며, 최면을 통해서 얻은 정보만을 토대로 수사에 연루돼 있는 피해자나 목격자의 진실성을 판단하는데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왜곡을 피해 수사하라
사건관련 피해자나 목격자의 기억을 변화시키거나 왜곡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면 수사를 의뢰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따라서 최면의뢰 전 △동일수법 전과자의 사진을 사전에 열람하는 것 △용의자의 사진 등을 사전에 열람하는 것 △교통사고시 용의차량과 번호판숫자 등을 미리 알려 주거나 사전에 열람하는 것 등 기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행위가 금지된다. 박 원장은 논문 「법최면수사의 이론과 실제」에서 “최면반응성이 높은 피최면자는 기억 왜곡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최면 외적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기억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정확한 정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론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감정을 배제한 상태에서의 회상의 효과 △최면 회상 내용의 실체와 상상의 구별 △최면 상태의 거짓말과 최면에 걸린 것처럼 흉내내는 판단에 대해 검토함으로써 최면 수사를 진행하는 최면수사관이 주의해야 할 절차상의 주의점을 강조했다.

법최면수사, 나도 증거가 되고 싶어!
△최면 감정서의 증거능력 △최면 상태 하의 진술에 의하여 수집된 증거능력 △최면의 정도 및 최면을 이용한 증언의 증거능력 △최면 현장을 촬영 또는 녹음한 비디오나 녹음테이프의 증거능력 등에 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곽 교수는 “최면수사관의 자격요건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 ‘법최면수사의 결과가 증거능력이 있는가’가 문제 되고 있다”며 “최면수사관의 자격요건 법제화 및 최면 수사의 지침 및 법규를 하루빨리 제정해 법최면수사관 및 우리나라 경찰관들이 법적인 보호 아래 법최면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서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