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민형 (dlalsgud2014@skkuw.com)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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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과 수면 … 뇌파의 차이로 구분
"최면, 이상한 마술이란 선입견 벗어나 치료기법으로 활용 필요해"

이거 한 방이면 훅 간다. 레드썬.” 2006년 한 코미디 프로그램은 최면을 이용해 용의자의 자백을 받아내는 소재의 코너를 선보였다. 최면에 걸린 후 전생 체험을 하는 방송이 전파를 타면서 최면은 대중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시청률을 위해 최면의 신비성을 부각했던 미디어 때문에 최면은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선입견이 생겼다. 최면은 정말 비과학적일까.

최면, 자는 건가요?
최면의 정의는 ‘최면법이라 불리는 방법을 통해 의도적·인위적으로 야기되는 인간 유기체의 특수한 상태 및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하는 심리적·생리적인 일련의 현상들’이다. 과거 코미디 요소로 썼던 ‘당신은 이제 잠이 듭니다. 레드썬’과 같은 언어적 암시나 좌우로 흔들리는 추를 바라보게 유도하는 비언어적 지시를 최면법이라 한다.

스스로 최면 상태로 유도하는 것을 ‘자기 최면’, 타인에 의해 유도되는 것을 ‘타자 최면’이라 한다. 타자 최면에는 최면사와 피최면자 사이의 신뢰 관계가 필요한데 이것을 ‘라포(rapport)’관계라고 한다. 타자 최면은 다시 ‘무대 최면’과 ‘임상 최면’ 등으로 구분된다. 대표적으로 무대 최면은 최면사가 무대에서 마술쇼 같은 형태로 시행하는 최면을, 임상 최면은 심리적 문제나 신체적 질병에 대한 치료를 목적으로 행하는 최면을 말한다. 임상 최면은 최면사가 언어나 비언어적 지시를 통해 눈을 감
은 피최면자에게 직접 최면을 거는 ‘전통적 최면’과 피최면자의 배경 자료를 바탕으로 대화를 하며 자연스럽게 최면으로 유도하는 ‘에릭슨 최면’으로 나뉜다.

최면에 빠진 모습을 상상하면 잠을 자듯 눈을 감은 상태로 최면사의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이처럼 피최면자는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면은 수면과 다르다. 최면과 수면 상태에서의 뇌파를 확인하면 차이를 알 수 있다. 최면 상태의 뇌에서는 일반적으로 눈을 감고 안정을 취하고 있을 때 관찰되는 알파파가 나온다. 이는 명상에 잠겨있을 때 확인할 수 있는 뇌파와 동일하다. 반면 수면 상태에서는 알파파보다 느린 델타파가 관찰된다. 최면은 수면 상태 보다 안정을 취하거나 무언가에 집중하는 상태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면은 언제부터?
기원전 10세기경 그려진 그리스의 벽화 조각에서, 최면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고대의 최면은 주술에 가까웠다. 최면은 18세기가 돼서야 오스트리아의 의사였던 프란츠안톤 메스머에 의해 의료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메스머는 인간의 세포가 자석과 연관이 있다는 동물자기(animal magnetism)이론을 발표했다. 이후 그가 자석을 환자의 몸에 근접시켜 병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해 영국의 의사 제임스 브레이드는 자석을 이용한 메스머의 치료 과정이 환자의 시신경을 피로하게 했고 이로 인해 환자가 잠이 든 것이라고 했다. 브레이드는 이를 발전시켜 시신경을 피로하게 만들어 최면에 빠지게 하는 ‘응시법’을 고안했다. 그는 응시법을 사용하면 환자가 잠이 든다고 생각해, 응시법을 잠의 신인 히프노스(Hypnos)에서 착안한 힙노티즘(Hypnotism)이라 명명했다. 1843년 최초의 최면요법 책인 『신경최면학』을 집필했고, 마취제가 개발되기 전까지 최면은 효과적인 마취법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약물에 의한 마취가 행해지고,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론이 등장하면서 최면은 한동안 외면당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전쟁신경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최면이 사용되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신분석법은 1년이 넘는 치료 기간이 필요하지만 최면은 짧은 기간 안에 완치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클라크 헐은 전쟁신경증 환자의 자료를 바탕으로 『최면과 피암시성』이란 책을 써 최면 연구가 활발해지는 데 기여했다. 클라크 헐의 제자였던 밀턴 에릭슨은 기존의 ‘전통적 최면'을 탈피하고 대화를 하다 최면에 빠지는 ‘간접적 최면(에릭슨 최면)’을 고안했다. 그의 논문인 「Two-Level Communication and the Microdynamics of Trance and Suggestion」에 따르면 “우리의 일상적 의식은 일반적 현실 인식상태와 부분적 *트랜스의 미세한 역동성 사이의 계속된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고 했다. 그는 “행동에 몰입하는 모든 순간에 트랜스가 발생하지만 일상 속에서 너무 자연스러운 것으로 판단해 최면 상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피최면자가 대화의 몰입을 통해 최면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1958년 미국의학협회에서 최면의 유용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최면이 과학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믿을 수 있을까?
21세기에 들어와 최면은 뇌과학 분야에서 연구되기 시작했다. 스탠포드 대학 데이비드 스피겔 교수의 논문인 「Brain Activity and Functional Connectivity Associated with Hypnosis」에 따르면 “MRI 분석 결과 최면 상태에서 배측전방대상피질, 좌우 배외측전전두피질, 디폴트모드신경망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배측전방대상피질은 어떤 것을 걱정해
야 할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부분으로, 최면 상태에서는 이 부분의 활성도가 감소했다. 이는 최면을 통해 스트레스 해소를 경험하는 사례를 설명하는 근거가 됐다. 최면에 빠지면 좌우 배외측전전두피질의 연결이 증가하고, 그로 인해 계획 실행 능력이 향상됐다. 치료용 최면을 경험한 후 금연이나 체중 감소의 효과가 발생하는 이유다. 디폴트모드신경망은 멍한 상태이거나 몽상에 빠졌을 때 작동하는 뇌의 영역으로 최면 상태에서 이 부분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그는 같은 논문에서 “아직 최면 상태의 뇌 활동 변화가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며 최면에 대한 더 많은 연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MRI와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최면 상태일 때의 뇌를 관찰할 수 있게 됐고, 뇌의 변화 작동원리에 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최면은 미디어에서 생성되는 이미지로 인해 치료 목적으로서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설기문 설기문마음연구소장은 자신의 저서인 『최면의 세계』에서 “최면은 ‘이상한 마술과 같은 것’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서 타당한 치료기법으로서, 인간의 삶의 질에 기여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연구되고 활용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며 최면의 가치가 올바르게 평가되길 희망했다.

*트랜스=자신의 내부에 확고하고 일정한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일어나는 변형된 의식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