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예술 사이 불안정한 틈새
기술과 예술 사이 불안정한 틈새
  • 김윤수
  • 승인 2019.05.12 19:22
  • 호수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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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스케치 - 불온한 데이터 展

단순히 계산된 수치가 진정한 작품의 가치인가라는 질문 던져
불온한 데이터를 만드는 주체에 대해 거듭 고민해야 해


과학기술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뤄질 때면 기술의 가치에 대한 기대에 못지않게 우려의 시선 역시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 같은 우려의 시선에 대해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오그번은 ‘문화지체(Cultural Lag)’라고 이름 붙였다. 그의 저서 『사회변동론』에서는 문화지체를 “기술 발전을 비롯한 물질문화의 변화 속도와 기존의 생활양식과 같은 비물질문화의 변화 속도 사이 괴리로 인해 발생한 과도기적 혼란”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지체와 같은 맥락에서 예술가가 바라본 과학기술의 발전, 특히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곧잘 입에 올리는 현대의 모습을 조명한 예술작품을 만나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향했다.

지하1층,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내려가자 보이는 문 입구의 ‘불온한 데이터’라는 흰 글씨가 전시장으로 안내한다. 입구 오른편에는 본 전시에 대한 설명이 개략적으로 적혀 있다. 그 중 “인간이 구축해 온 디지털 체계와 이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발생한 예측 불가능한 ‘틈새’를 보여준다”라고 적힌 부분에서 틈새가 강조된 것이 눈에 띈다. 입구 왼쪽에는 ‘모든 데이터를 사람들에게’라는 문구가 성인 남자보다도 훨씬 더 큰 글씨로 입구부터 출구까지의 벽면을 채우고 있다. 이 큰 글귀는 덴마크의 예술집단 ‘SUPERFLEX’의 작품 <ALL DATA TO THE PEOPLE>로 현재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곧 권력이 되는 세상에서 그 권한의 불균형에 주목한 작품이다. 해당 전시를 위해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 인상적이다.

전시장 안으로 발을 들이자 오른편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형형색색의 물체를 얼굴에 뒤집어써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의 사진과 얼굴을 가린 물체가 눈에 들어온다. 이는 미국의 예술가 자크 블라스의 작품 <얼굴 무기화 세트>로 안면인식기술로 탐지될 수 없는 무정형의 가면이다. 작품 설명에 따르면 <얼굴 무기화 세트>는 가면을 씀으로써 동성애자의 안면인식 데이터를 수집해 이를 바탕으로 성적지향을 결정하고자 하는 연구에 맞서거나 생체인식기술이 피부색, 성별 등의 정보를 감지하지 못하게끔 역할한다. 이는 생체인식기술이 불러온 여러 가지 차별과 폐단에 대응하는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매우 많은 로봇 청소공이 눈에 띄는 영국의 예술가 크리스 쉔의 <위상공간 360> 뒤 붉은 네온 전등으로 불이 들어온 7자리 숫자가 보인다. 작품 오른편에는 ‘레이첼 아라, 나의 값어치는 이정도: 한국 버전’이라고 적혀있다. 작품의 4번째 숫자 위에는 조그마한 카메라가 하나 보인다. 작품 설명에 따르면 카메라가 작품 앞의 관람객 수를 파악해 *FTSE 100 지수에 작품명이 언급되는 횟수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네온에 표시하는 것이다.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프로그래밍으로 자신의 작품이 스스로 가치를 매기게끔 했다고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건 단순한 숫자 7개뿐이다. 숫자를 계속해서 들여다보면 문득 ‘합리적인 데이터와 프로그래밍을 통해 추산한 수치더라도 이를 진정한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하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첫 번째 방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두 번째 방 안쪽으로 들어가면 높이가 다른 두 기둥 위에서 각각 자율주행로봇 청소기가 한 대씩 계속해서 떨어질 듯 말 듯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차오 페이의 <룸바 01 & 02>, 최첨단 기능을 탑재한 가전제품이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계속 제한된 움직임만 반복하고 있는 모습은 급속한 경제 발전과 첨단기술 분야의 도약을 이뤘지만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는 현 중국 사회를 의미한다는 설명이 쓰여있다.

하지만 전시회의 모든 작품이 정보화 시대의 이면을 비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 방 왼쪽 벽면에는 강의 느낌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영상 아래에는 ‘하름 판 덴 도르펠, 레프트 갤러리 설명자’라고 적혀 있다. 영상 내용은 새로운 개념의 가상 갤러리를 제시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미술 작품의 생산 및 유통 등 미술계가 걷게 될 새로운 방향에 대해 소개한다. 처음 접하는 형태의 미술 갤러리이기에 익숙지 않은 느낌을 주지만 거부감이 들거나 불안함을 조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 든다.

두 번째 방 안쪽의 기다란 의자 앞 스크린에서도 짤막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영상에서는 우리는 지금까지 기존의 은행, 국가, 무역단체와 같은 제3의 기관을 통해서만 정보의 신뢰성을 보장받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블록체인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면 비로소 모든 개인 거래를 안전하게 보장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전달한다. 두 영상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서 비롯한 기술의 발전이 긍정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두 영상과 지금까지 바라본 작품들의 의미를 곱씹어 보며 출구로 나선다. 출구에서 다시 한 번 입구에서 바라봤던 ‘모든 데이터를 사람들에게’라는 문구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리고 전시회의 이름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불온한 데이터는 무엇인가. 전시회의 작품은 누가 데이터를 불온하게 만드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기술 발전 속도와 생활 모습의 변화 사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문화지체를 줄이기 위해 질문의 답을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오른쪽 위 사진부터 얼굴 무기화 세트, 룸바 01 & 02, 나의 값어치는 이정도; 한국 버전.
위 사진부터 <얼굴 무기화 세트>, <룸바 01 & 02>, <나의 값어치는 이정도; 한국 버전>.
사진 l 이민형 기자 dlalsgud2014@

*FTSE 100 지수=FTSE인터내셔널에서 개발, 산출하고 있는 지수 중 하나로, 런던국제증권거래소(LSE)에 상장된 100개의 우량주식으로 구성된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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