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매직아일랜드는 동경(憧憬)하는 것을

비추어 주는 흐릿흐릿한 동경(銅鏡)이었다


그애의 입 속에서는 항상 허브 향내가 났다. 처음 학원에 왔을 때, 그러니까 1교시부터 집에 돌아가는 8교시 끝날 때까지 그 애가 말하는 방향에서 꽃들이 두 송이, 세 송이 씩 피어났다. 허브 향은 수업 시간에 더 짙은 향기를 내뿜었다. 그 애가 내 귀를 향해 다가와 자신의 몸을 기울이고, ‘선생님 재밌으시다’, ‘2번 답이 뭐야?’, 하고 속삭이면 새벽녘에 톡 터지듯 벌어지는 싱싱한 나팔꽃처럼 생생한 향기가 내 코끝에 다가왔다.
그 애를 알게 되었던 건 우연은 아니었던 듯싶다. 그 애 역시 나처럼 아는 사람 없이 혼자 학원에 왔던 것 같았다. 저마다 친구들끼리, 사귀는 남녀 아이들끼리, 온통 아이들로 쉬는 시간이면 시장처럼 시끄러워지는 교실 안에서 우리는 두 개의 섬처럼 고립된 채 얼른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면 멀뚱멀뚱 칠판을 바라보거나 영어 단어를 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학원에서 스터디 조를 짜주지 않았다면 역시 이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북적대는 이 큰 강의실 안에서 그 애와의 인연도 없었으리라. 조를 짜고 둘러앉아 서로 소개를 했을 때 나는 그 애가 나와 같은 영문과 지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우리 조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삼수생이고 우리 둘만이 재수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애는 반색을 했다.
“재인아, 말 놔도 되는 거지? 우리 친하게 지내자.”
나는 낯선 향기가 처음 내 코끝에 전해져 왔을 때 온몸에 두드러기처럼 닭살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애의 얇은 입술 선과 아무래도 밥 한 술 들어가기 힘들 것 같은, 조그마한 입 안을 바라보며 얼떨결에 대답을 했다.
“으, 으응.”

엄마는 행상인이었다. 처음에는 롯데월드 매직 아일랜드가 물끄러미 건너다 보이는 석촌 호수 가에서 군것질 거리들을 팔았다. 낮에는 매직 아일랜드 입구 앞에서 꼬마들의 신기하게 바라보고 섰는 손에서 500원 짜리 동전을 하나나 두 개를 받고 솜사탕을 팔았다. 어둑어둑해져서 근처가 잘 보이지 않을 즈음이면 리어카 지붕에 전구 두 개를 달고 석촌 호수 옆구리 쪽으로 자리를 옮겨 갔다. 더우나 추우나 그저 밤이면 꼭 붙어 걷는 연인들에게 추억 거리를 제공하는 갖가지 간식거리들을 팔거나 트레이닝복 차림에 모자를 푹 눌러 쓴 조깅 족들에게 시원한 음료수들을 팔았다. 간혹은 건너편 동네에 살고 있는, 자기네 언어를 가르쳐주고 돈을 벌러 온 외국인들이 음료수를 사러 왔다. 땀에 함뿍 젖어 더 짙은 노린내를 풍기며 다가온 하얗다 못해 노리끼리한, 털 많은 외국인들과 엄마는 안 되는 영어로 한참 씩 입씨름을 했다. 그러면 나는, 그 놈의 영어, 뭐가 대단해서 저것들은 이 땅에 와서까지 영어야, 영어가, 혼자 철없는 소리를 중얼대며 리어카 옆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화려한 조명에 휩싸인 저 건너의 Magic Castle을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고 다시 지웠다.
계절이 두 번이나 세 번쯤 돌아가기를 마칠 때마다 매직 아일랜드엔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란 어쨌든 석촌 호수 이 쪽 편에서도 건너다 보이는 것으로, 매직 아일랜드를 채우는 새로운 비명이었다. 놀이 기구들은 갈수록 높아졌고 갈수록 거칠어졌다. 저 편에서 더 커다랗고 더 째지는 소리를 내지르면 엄마의 어깨는 더 쳐지고 엄마의 눈은 더 생기를 잃었다. 까만 옷을 입고 까만 안경을 쓴 사람들은 일주일에 두어 번 쯤 찾아왔다. 그들은 한참을 배가 차도록 꾸역꾸역 입 속으로 먹을 것들을 밀어 넣고 나서 오히려 돈을 받아갔다.

봄은 어느새 사라졌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도 이제는 더 이상 빙그르르 춤추며 낙화하지 않았고 5월말께야 피었던 흰빛, 보랏빛, 라일락도 넘치는 향기를 발산하기를 멈춘 채 시든 꽃잎을 보도에 음식찌꺼기처럼 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애는 달랐다. 그 애와 함께 하는 동안 그 애는 꾸준히 허브 향을 내게 선사했다. 어느 시인은 모란이 지는 때를 찬란하게 슬픈 봄이라 했던가. 나는 그 애의 항상성을 띤 허브 향에 감사해마지 않았다.
간혹 그 애가 결석이라도 한 날이면 나는 불안해했다. 그 애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 애에 대한 걱정이라기보다 내 자신의 뜻 모를 허둥댐에 스스로도 놀라곤 했다. 아침 자습 때는 하염없이 문 쪽만을 바라다봤고 쉬는 시간에는 자습실에 내려가서 왔는지를 꼭 확인해야했다. 하루 종일 나는 안절부절 못한 채 문제집을 이것저것 부산하게 꺼냈다 집어넣기를 반복할 뿐 좀처럼 집중하지를 못했다. 그리고는 행여 다음 날도 결석하지 않을까를 지레 걱정하며 결국 집으로 전화를 넣었다. 내일은 나아서 꼭 나오라고. 속이 다 새카맣게 타 들어가도록 기다렸다가 야간 자습시간이 되면 결국 난 그 애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가끔 엄마에게 물었었다. 왜 하필 여기서 장사하느냐고. 내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어떤 곳에서나 나는 엄마처럼 힘없고 꿈 없는 사람들을 만났노라고 따지듯이 물었다. 석촌 호수에 가족이라도 빠져 죽은 것처럼 매일 이렇게 호수바라기만 하지말고 차라리 역마살 맞은 모녀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자고 했었다. 호수는 늘 시커먼 색이었다. 바람이 불어 호수가 간지럼을 탈 때 그다지 호수와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 모녀의 움직이는 가게에 자주 오는 까만 선글라스를 낀 까만 양복쟁이들처럼 호수는 그 속까지도 새까맣고 지저분할 것만 같았다. 그런 호수 앞에서 매일 장사를 한다는 게 얼마나 하릴없는 짓이냐고 마구 대들었다. 호수의 죽은 빛깔을 보며 의미 없는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는 우리의 내일도 죽은 것이 아니냐, 말도 안 되는 논리까지 펼쳤다.
그러면 엄마는 말없이 한참을 호수에 눈길을 준 채 정말 호수바라기를 했다. 그런데 한번은 언제나처럼 씩씩거리며 흥분했던 내가 제풀에 지쳐 엄마 옆 플라스틱 의자에 주저앉자 입을 뗐다.
“호수 속에 뭐 숨겨놓고 궁상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니? 저 속에는 아무것도 없어. 나도 잘 알아. 그런데 너 그거 아니? 쟤 나랑 많이 닮았어. 평생 흐지부지 살았지. 저 안에 비춘 것들은 그저 흐릿흐릿 할 뿐이야. 어쩌면 저 호수는 magic island보다 더 먼저 마법의 성을 꿈꿨는지도 몰라. 그저 꿈만 꿨던 거지. 나도 재인이가 내가 꿈꾸었던 그런 무언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항상. 호수 속의 섬처럼 내가 품은 이 아이가 마법 같은 행운에 사로잡힐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단다. 호수바라기? 글쎄. 나하고 호수는 서로가 닮아 있기 때문에 늘그막에 서로 의지하는 것뿐이란다.”

나는 늘상 궁금했다. 그 애의 입 안에는 허브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 번은 그 애에게 어떤 치약을 즐겨 쓰는가, 하고 물었다. 그 애는 얼굴이 발그레 해지며, 왜, 하고 되물었다. 나는 그저, 아냐, 향이 좋아보여서 나도 다음엔 그 브랜드 걸 사볼까 하고, 대답했다. 예상대로 허브향이 강하다던 그 브랜드였다. 나는 그날 집에 가는 길로 그 치약을 샀다.
다음날은 친구가 소개팅을 시켜준다던 날이었다. 재수생 주제에 무슨 소개팅은, 했더니, 자기 과 동기 가운데 우연히 자기 지갑 속에 있던 내 사진을 보고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아이가 있다고 했다.
“자기 사진까지 보여주라고 하면서 너를 꼭 만나고 싶어 했어.”
“사진은 무슨, 내가 무슨 조선족 여인이래니? 사진 결혼 하는 거야?”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면서 웃고는 나는 사진을 보지 않고 그냥 만나겠다고 했다.
“”한 번 보면 내 실체를 알게 될 거야.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않게 해줄게. 중학생들 소개팅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사진 타령이야.”
새로 산 치약에서 그 애의 향이 났다. 하지만 뚜껑을 닫아버리고 나면 금세 그 애의 환영은 사라지고 없었다. 문득, 양치질을 열심히 하면 그 애와 계속 함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자그마치 이를 다섯 번을 닦았다. 이를 닦고 치약 거품을 물로 헹구어 내면 어느새 거짓말처럼 허브 향은 자취를 감췄다. 다음 번에는 좀 덜 헹궈내야지, 했지만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떻게 그 애는 오전 내내, 그리고 오후 내내 나에게 한껏 허브 향을 뿜어대는 것일까. 동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마법이라도 쓰는 걸까. 이를 다섯 번 정성 들여 닦는 동안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압구정동의 한 까페였다. 나에게는 너무도 낯선 곳이었다. 언제나 로맨틱한 장소 앞에서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던 나에 대해 친구가 언질을 해주었던 것일까, 그 아이는 약속 장소를 눈부시도록 하얀 찻집으로 정했다.
“안녕하세요.”
깔끔한 그 아이의 외모는 그 까페와 잘 어울렸다. 유리창을 향한 삼각형의 자리에 나란히 앉은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의자를 비스듬히 해야 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치고는 거리가 너무도 가까웠다. 짧은 치마를 입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징그럽게, 우리 그냥 말 놓자.”
그 아이는 나의 시원시원한 태도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 자신도 편안하게 나를 대했다.
“그럴까? 예쁘게만 생긴 줄 알았더니 사람 편안하게 하는 재주도 있었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아무개와 닮았노라고 나도 그 애의 외모에 칭찬을 해주었다.
“그 머리를 이쪽으로 빗어 넘긴, 미니시리즈에 나온 신인 있지? 너 그 애 닮았다. 정말 영광이야.”
도련님 같이 고운 흰 뺨에 보조개가 올라왔다. 내가 평소에 말하던 바로 그 왕자님 같은 스타일이라고, 너도 곧 좋아하게 될 거라고, 둘이 잘 되는 게 저를 돕는 거라고 말하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정말 그 아이는 내가 평소에 이상형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그런 아이였다.
“만나자마자 이래도 되나 고민했는데 그래도 난 꼭 너와 이 영화를 보고 싶었어.”
저녁을 먹고 나자 그 아이는 나에게 영화 티켓 두 장을 흔들었다.
“갈래?”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이상형이다. 나는 지금 즐겁다. 즐거워야한다. 나는 그 아이에게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아이는 자가용도 가지고 있었다. 내가 한 번도 타 보지 못했던 새하얀 고급 승용차였다.“이, 이거 네 차니?”
“어? 아, 지난주가 내 생일이었거든.”
생일 선물로 자가용을 가진 그 아이. 하루 놀기 위해 몇 만원 투자를 하지 못해 여태껏 롯데월드를 바라보기만 해온 나. 우리 둘은 그 아이의 새하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멜로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차 안에 두 개의 공기가 공존했다.

 

매직 아일랜드는 말 그대로 내게는 magic island였다. 저 성 안에는 백설공주랑 못된 마녀가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나의 말없는 동경은 컸다. 석촌 호수는 내게 있어 이중적인 존재였다. 나를 magic island로부터 떼어놓고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magic island를 비추어 주는 거울 같은 존재였다. 동경(憧憬)하는 것을 비추어 주는 흐릿흐릿한 동경(銅鏡)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욕망의 대상에 대한 한 줄기 희망도 없이 욕망으로 끝나는 서사는 아무런 이야기 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만화방에서 읽었던 수없이 많은 만화책 속에서 배웠다.
나는 처음에 그 아이를 동경했다. 하지만 그 아이와 나 사이에는 동경(銅鏡)은 없었다. 나의 그 아이를 향한 동경도 곧 사라졌다. 손만 뻗으면 그 아이의 모든 것은 쉽게 내 것이 되는 듯 했다. 그 아이는 종종 점심 시간과 저녁 시간에 차를 몰고 학원 앞으로 와서 나를 고급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그 아이도 나에 관해 이미 알만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그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주말에는 내가 동경해왔던 사랑 이야기들을 이 극장, 저 극장으로 쫓아다니며 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뻔하고 긴장감 없는 soap drama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다만 그 아이는 늘 웃고 있었다. 행복해 보였다.
그 애는 주말에도 학원에 나오는 것 같았다. 단 한 번, 나에게 영문과 간다며, 라고 말꼬리를 흐리는 이야기를 했을 뿐 내 생활의 변화에 대해 질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친구가 생긴 것을 진짜로 축하해주었다. 그 아이의 뽀얀 얼굴과 하얗고 가지런한 이가 허브 향을 내게로 강렬히 반사시켰다. 단정한 옷차림과 가는 손가락이 여전히 나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Magic Castle은 참 이상한 곳이었다. 그 아이가 나에게 롯데월드에 가자고 했던 날 나는 갑자기 강렬하게 거절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올 것만 같은 예쁜 성을 보면 저 성에 사는 공주가 되고 싶던 소녀 같은 마음이 막상 성 안을 생각해보면 만화책에서 흔히 나오던 어두침침한 복도와 삐걱대는 계단을 연상시키면서 곧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 몸서리치는 그런 꼴이었다. 이십년을 동경해 온 Magic Castle이었는데 막상 눈앞에 두고 보니 유령의 성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magic인가,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오년 전, 구청에서 석촌 호수 환경 정화 작업을 하면서 엄마를 길가로 내몰기 전까지 군것질 거리를 팔았던 자리에 생긴 벤치에 그 아이와 나는 나란히 앉았다. 롯데월드는 흔들리고 있었다.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동경(銅鏡), 호수를 사이에 두고 우리가 있는 곳은 너무도 적막했다. 그 아이는 손을 뻗어 내 손 위에 손을 얹었다. 촉감이 참 부드럽고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손을 꽉 힘주어 쥔 그 아이는 몸을 뻗어 내 앞에 얼굴을 드러내었다. 참 잘생긴, 예쁘게 생긴 얼굴이야,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아이는 내 입술에 자기 입술을 묻었다. 기분이 나빴다. 그 아이에게서 나는 짙은 향수 냄새가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 애의 허브향이 생각났다. 나는 그만 그 아이의 가슴을 떼밀고 말았다.
매직 아일랜드에서는 부웅, 하고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와 아악, 하고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 소리와, 우울한 발라드가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고는 미안해, 하고 속삭였다. 그리고 일어나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내가 다시 그 애의 곁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가을이 시작되어 있었다. 대학 수학 능력 시험도 한 달 남짓 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 아이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애의 눈은 참 맑았다. 문득 이렇게 편안한 느낌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그 애의 입에서는 허브 향이 났다. 나는 공부를 하다가 종종 그 애의 옆모습을 바라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만화영화에서 한 캐릭터가 커다란 입을 쫙 벌리면 그 입속에서 나비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캐릭터가 희화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모습은 우습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만약 그 애의 벌어진 입 속에서 허브 이파리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그 광경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 애의 뽀얀 살결 때문에 한 번은 저 귀를 한 번 깨물어주고 싶다는 상상을 하다가 스스로 놀란 적도 있었다.
하루는 더 이상의 수업을 포기하고 둘이 자습실에 나와 모의고사를 풀고 있었는데 나는 어느새 그 애의 가까이에 코를 들이 대고 있었다. 그 애는 그만 놀라서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사람들이 문제집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 우리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너 뭐해, 문제는 안 풀구. 깜짝 놀랬잖아.”
“어? 그, 그냥. 너한테서 오늘도 허브 향이 나는 구나.”
그 애는 조금 화가 난 듯 했다.
“빨리 문제나 풀자. 시간 안에 다 못 풀겠다.”
그 때였다. 전화기가 지이이이잉, 진동 소리를 냈다. 그 아이였다. 내가 문제를 풀다 말고 그 애를 생각하고 그 애의 입 속엔 누가 살고 있는가, 고민하고 있을 때면 그 아이는 전화를 걸어 왔다. 밥은 제대로 먹었니, 군것질하지 말고 밥을 먹어라, 일찍 자라, 그 아이는 아직 우리가 헤어졌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했다. 어쩌면 내가 잠시 시험 때문에 자신을 피하는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오늘은 시간 좀 내주라. 한 시간만. 한 시간이면 돼.”
“무슨 일인데?”
“오늘…… 우리 사귄지 백일 되는 날이야. 맛있는 거 사주고 싶어.”
“야. 나 바빠.”
“재인아.”
“정말이야. 나 오늘 모의고사 하나 더 풀고 풀이까지 하려면…….”
“한 시간이면 돼. 내가 그리 갈게.”
그 아이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렇게 까지 단호하게 나온 적은 없었는데. 하긴 우리가 안 만난 지도 벌써 두 주가 지났다. 매일같이 함께 식사하고 영화 구경 가고 하던 사람을 이 주 째 못 보았으니 그 아이도 속이 끓을 만큼 끓었을 테지.
그 애의 차는 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가로등에 빛을 반사하는 태가 한층 더 근사해 보였다.
“너 사진 들여다보면서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었어. 새로 뽑은 거야.”
그 아이가 나를 안내 한 곳은 근처의 큰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조용한 곳에 가고 싶었지만 네가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가까운 데로 정한 거야. 괜찮지?”
“네가 자꾸 이러면 내가 부담스러워. 이러지마.”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뭐. 무척…… 보고 싶었어. 나 너한테 주고 싶은 게 있어서 오늘 꼭 좀 나와 달라고 했어.”
“응?”
그 애는 포장지에 쌓여 있는 무언가를 꺼냈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물려주신 거야. 너한테 주고 싶었어.”
포장지에서 나온 것은 작은 손거울이었다. 거울 맨 위에 작은 다이아몬드 하나가 반짝, 하고 조명을 반사했다.
“너 알아? 네가 얼마나 예쁜지? 그런데 너는 항상 우울해 보여. 특히 나랑 있을 때. 좀 웃어봐. 난 네가 스스로를 좀더 알았으면 좋겠어. 거울을 봐봐.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지를 좀 보란 말야.”

학원에 돌아와서 다시 공부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지만 공부는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동경하던 대상이 늘 내가 볼 수는 있지만 완전히 내 것이 될 수 없었을 때, 거기에 우리를 연결해주던 동경(銅鏡)이 있었다. 매직 아일랜드는 늘 바라 볼 수 있지만 완전히 내 것이 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뿌연 상으로 내 마음에 자리 잡았듯이 호수는 동경(銅鏡)처럼 뿌연 상으로 매직 아일랜드를 자기 품에 안고 있었다. 나는 나의 동경(銅鏡)에 연민을 느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나의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애가 나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 애의 허브 향과 그 애의 뽀얀 살결이 나를 늘 자극했다. 그런데 내 동경의 대상과 나 사이에는 완충적인 동경(銅鏡)은 없다.
그 애의 입 속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나는 견딜 수 없이 궁금해졌다. 그 애의 손을 잡아 말없이 밖으로 이끌었다. 옥상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애가 뭐라고 소리치는 것도 무슨 말인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이아몬드가 반짝이는 손거울을 그 애의 입 앞에 들이밀고 그 애의 입을 억지로 벌렸다. 거울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그래, 동경(銅鏡)이 필요한데. 갑자기 화가 확 치밀었다. 거울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그 애의 얼굴을 내 앞으로 강하게 끌어당기고 내 입술을 들이댔다. 혀로 강하게 그 애의 입 안을 헤집었다.
양치질을 한 지 두 시간은 지났을 터인데 그 애의 입 속에서는 여전히 허브 향이 났다.
 

[소설당선소감] 이효진(아동3)

당신과 공감하는 글를 쓰고 싶다

▲ 당선자 이효진(아동3)
한 남자가 있었다.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문학하는 것을 탐탁치 않아 했다. 너 글 못 쓰잖아. 네가 무슨 작가야. 펜은 놓고 이제 나만 바라봐. 시작도 하지 못한 내게 그 사람은 사랑하니까 그런 말도 해줄 수 있는 거라고 우겨댔다. 그 사람에게 말했다. 유치하긴 하지만 난 당신보다 문학을 사랑해요. 못 써도 좋으니 그저 펜 붙들고 살 수만 있으면 좋겠어.
삼류 소설 주인공처럼 난 그렇게 문학을 택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글쟁이 좋아하네, 주부 백일장에 당선이나 될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입을 댔다. 그 때마다 나는 한결같은 대답을 했다. 그래도 좋은 걸요. 무언가 써내려 간다는 것만큼 내게 희열을 주는 것도 없는데요.
무엇이든 쓰는 동안은 나는 하나도 불행하지 않았다. 아니, 쓸 수 있는 동안은. 내가 여태껏 글쟁이가 되지 못한 것은 항상 쓸 수는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내 안에 무수하게 살고 있는 말들, 아직 글로 태어나기에는 여려서 흐드러지게 꽃필 그 날까지 따스한 태양의 광선을 자꾸만 쐬어야할 터.
이루어진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란다.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글 한 줄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필명부터 정해두려던, 지금보다 더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내 삶 그 자체가 드라마인 양 환상 속에 살고 있다는 친구들의 말이 떠오른다. 꿈에서 깨려고 무지 애를 썼다. 하지만 오늘 난 여전히 셋째 아기돼지가 지었던 견고한 벽돌집을 짓기 위해 벽돌과 타르를 언덕 위로 나른다. 늑대도 벽돌집만큼은 부수지 못했지.
당신과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다. 지금도 바다의 경계 위에는 하얀 포말이 공중을 가르고 있다.
그리고. 심사해주신 선생님들, 가르침주신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 어리버리한 맏딸이 못 쓰는 글 쓰겠다고, 작가 공부한다고 고집 부려 속상하셨지요? 저, 정말 열심히 해볼게요.

 

[소설심사평] 조건상(국문) 교수, 소설가

가볍게 버리고 싶은 작품 하나도 없어

 우리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흥미로운 화두는 역시‘사랑’인 것 같다.
이번 성대문학상에 투고된 13편의 작품들 대부분이 색깔과 형체는 서로 다르지만 한결같이 ‘사랑’의 변주로서 주제를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인간의 탄생과 사랑과 죽음은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아있을 소설의 주제인 것만은 틀림 없다.
그런데 매년 대학생들의 작품을 대하면서 느끼게 되는 흥미로운 사실은 소설의 주제나 형식이 일반적으로 당대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한 시류적 경향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시류적’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어감을, 굳이 폄하한다거나 우려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필요는 없겠지만 소설의 본령에서 일탈된 듯한 가벼움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실험성과 별개의 문제다.
어쨌거나 이번에 성대문학상에 응모한 13편의 소설들은 나름대로의 특징과 색깔을 지니고 있어서 가볍게 버리고 싶은 작품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들이어서 예년 같으면 모든 작품을 입선권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소설들이었다. 그러나 한정된 작품을 선정해야 하는 규정에 묶여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이효진(아동학) 양의 「동경」을 당선작으로, 황인용(인과) 군의 「최후의 만찬」을 가작으로 뽑으며 못내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동경」은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의 한자어 ‘동경(憧憬)’과 ‘동경(銅鏡)’을 절묘하게 대치시키면서 주인공의 심리를 추적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담담하고 평면적인 서술 속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심장한 의미를 담고 있다. 「최후의 만찬」은의 혼란, 작중인물‘그’의 정체가 선명치 못한 흠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진술에만 매달리지 않고 상황의 제시 속에서 사건을 끌어가는 재능이 탁월했다. 이밖에도 정승록 군 , 변인숙 양, 김의경 양, 그리고 이원용 군의 작품도 놓치고 싶지 않은 수작이었음을 밝혀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