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정균 (jeonggyun@skkuw.com)

오늘날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다빈치, 미켈란젤로부터 인상주의 화가인 마네, 고흐 등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걸작을 디지털 기술로 리마스터링한 전시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새로운 표현 양식이 예술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그리고 수용 형식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바꿨을까.

미디어는 소통에 개입·매개하는 수단
상호작용에서 시작하는 능동적 관찰자로서의 관객

발터 벤야민
마셜 매클루언

벤야민에서 시작하기
매체미학의 선구자인 발터 벤야민은 그의 유명한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19세기 사진이라는 매체의 등장을 미학에 있어 중요한 사건으로 본다. 사진의 재현 능력 앞에서 회화는 자연의 모방 또는 재현이라는 개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탐구해야 했으며 이는 기술의 출현이 예술 자체의 개념까지도 변화시키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벤야민은 ‘아우라’라는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성에 대한 미학적 개념을 만들어냈다. 시스티나 대성당에서 천지창조를,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만났을 때 느껴지는 아우라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등장한다. 하지만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 걸작을 사진에 담으면 아우라는 사라지고 만다. 이와 같이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기계적 복제가 작품의 아우라를 탈각시킨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기술복제로 인해 예술작품은 특정 장소와 특정 계급에게만 부여되는 배타적인 경배가치(Kultwert)로부터 벗어나 누구에게나 접근이 허용되는 전시가치(Ausstellungswert)를 가지게 되며, 예술의 민주화라는 긍정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에 대해 전북대 과학학과 심혜련 교수는 “새로운 형식의 예술에 걸맞은 새로운 수용 형식에 대한 인정이 필요함을 강조한 부분이 벤야민의 기술복제와 예술에 대한 사유가 빛을 발하는 지점”이라고 전했다.

매체와 예술의 입맞춤
문화비평가 마셜 매클루언은 한 시대의 지배적인 매체를 중심으로 그 시대의 문화예술 전반이 변화한다고 본다. 그는 구술과 필사를 넘어 인쇄술이라는 매체가 등장한 시대를 구텐베르크 은하계라 불렀다. 우리나라의 경우 20세기 초반에 유행한 인쇄물인 딱지본이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대표적인 예시가 된다. 아이들의 장난감인 딱지처럼 울긋불긋한 표지를 지닌 딱지본은 구술과 필사로 전해지던 이야기를 그 내용으로 한다. 이 매체는 구소설과 신소설을 활판 인쇄기의 도입을 통해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전달했다. 비록 딱지본은 예술의 하위문화양식으로서 존재했으며 지식인들에게 경멸의 대상이 됐지만 당시 대중소설 독자가 형성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딱지본 소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캡처
딱지본 소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캡처

음악 매체인 축음기 또한 음악 예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에디슨의 원통형 축음기와 에밀 베를리너의 원반형 축음기가 시장경쟁을 벌였다. 일반적으로 음질 측면에서는 종진동 방식으로 음을 재현하는 원통형이 횡진동 방식의 원반형보다 우월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원반형은 레코드의 회전 속도가 일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량 생산 측면에서 원통형보다는 원반형이 양산성에서 훨씬 뛰어났고 결국 축음기 시장은 원반형으로 표준화됐다. 후에 원반형 레코드는 1948년 LP판으로 기술적 진보를 이루며 앨범 형식의 음반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는 음악가들에게 음반에 대한 분명한 자의식을 부여했고 대중은 이에 호응하며 음반 문화의 부흥을 이끌었다.

대중매체인 영화는 기술의 발전과 밀접하게 엮여있다. 1920년대 카메라의 소형화와 함께 삼각대 없이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는 핸드헬드 기법이 등장했다. 이는 패전 후 모든 것이 망가진 이탈리아에서 네오리얼리즘이라는 양식이 생겨난 계기가 된다.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스튜디오가 붕괴하자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폐허가 된 거리로 나와 일상의 것들을 찍게 됐다. 대표적으로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과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도시>가 있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이러한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을 모호성과 복잡성에 기초한 진정한 현대 영화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한다.

시네마스코프는 2.35:1의 비율을 가진 와이드 스크린 형식을 지닌 영화다. 이는 1950년대 점차 늘어나는 TV의 보급으로 할리우드가 영화 산업에 닥친 위기를 타개하고자 고안했다. 와이드 스크린은 TV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체험을 영화관에서 할 수 있게 했고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 전차경주 스케일이나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가진 광활한 사막 풍경을 구현했다.

꽃핀 미디어 아트
매체예술로도 불리는 미디어 아트의 미디어는 라틴어 ‘medium’에서 유래한 말로, 소통의 중간에 개입해서 매개하는 수단이란 뜻을 지닌다. 심 교수의 책 『20세기의 매체철학』에서는 매체예술이란 용어의 등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인상주의 또는 초현실주의 등 내용이나 표현기법으로 정의됐던 한 시대의 미술 사조가 매체라는 도구와 수단에 의해 규정되는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매체예술의 대표적인 예로 도구와 수단을 예술로 승화한 비디오 아티스트 세대가 있다. 이들은 1960년대 비대칭적 소통방식인 TV가 전폭적으로 보급된 후 이에 맞서기 위해 대중이 직접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비디오카메라를 이용하며 TV의 비대칭적 소통을 비판하고자 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과학과 매체예술의 융합에 대한 선행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그 중 유명한 MIT의 미디어랩은 멀티미디어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네그로폰테와 AI의 창시자로 불리는 민스키 등이 1985년 설립했다. 이들은 가상현실, 웨어러블 디바이스, 터치스크린 등의 개념을 고안해냈다. 오스트리아 린츠에 있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는 1979년에 창립됐고 매년 축제를 열며 과학자, 예술가들을 초청한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예술, 테크놀로지, 사회를 키워드로 내세우며 현대사회가 직면하게 된 문화적인 변화상에 대한 미래를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미디어 아트에 주목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66년 뉴욕을 기반으로 등장한 E.A.T.(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라는 비영리 단체에 대한 전시를 지난해에 펼쳤다. E.A.T.는 앤디 워홀, 백남준 등 현대 예술의 유명 인사와 교류하고 협업의 가치를 이끌어내며 과학과 예술 사이의 여러 문제를 결합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현재 디지털 기술을 탐구하고 미학적 특징을 발견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인 ‘불온한 데이터’전을 선보이고 있다.

디지털 매체 시대에서
매체예술은 디지털 매체의 등장으로 다시 변하고 있다. 매체예술은 디지털 매체의 특성상 상호작용성(Interaction)을 중심으로 사이버스페이스와 관련된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의 새로운 현상을 제시하며 발전해나가고 있다. 심 교수는 “매체를 인터페이스로 삼아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음악이나 문학 등 철저히 작품 밖에서 감상하거나 해석할 수밖에 없는 닫힌 구조에서 벗어나 수용자의 만짐과 작동에 의해 완성되는 예술이 등장한 것”이라며 디지털 매체예술의 상호작용성을 강조했다. 상호작용성 때문에 디지털 매체예술은 수용자와의 관계에서 고유성을 가지며 퍼포먼스와 같은 놀이가 되기도 한다. 이는 디지털 매체예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수용자가 적극적으로 행위를 해야 하며, 장치의 작동을 해야 하게 됨을 뜻한다. 여기에서 몰입(Immersion)이라는 새로운 수용양식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상호작용성은 장애를 서로 다른 감각으로 해석하는 곳에서 사용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다원예술축제 ‘나다’의 뮤직 페스티벌은 청각장애인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된 공연이다. 라이브 공연이 대형스크린을 통해 실시간 미디어 아트로 시각화되고 우퍼 조끼와 진동 스피커는 장애가 더 이상 공연 관람에 장애가 되지 않는 환경을 만든다. 이는 작가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넓어지기도 했지만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자들의 폭이 넓어지는 데도 디지털 매체 예술이 일조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심 교수는 디지털 매체 시대에서 능동적 수용자의 등장을 위해서는 매체가 만들어내는 스펙타클에 대해 감탄만 하는 일방적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디지털 매체예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와의 상호작용, 타자와의 상호작용 또는 공감을 보여주고 있다. 어찌 보면, 이는 예술로서의 디지털 매체예술이 갖는 필연적 운명인지도 모른다. 비판으로서의 예술과 능동적 관찰자로서의 관객은 바로 사회와의 상호작용 그리고 타자와의 상호작용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