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신민호 기자 (dao96@skkuw.com)

지하철 실버 택배 현장 체험기

3500원을 넘지 못하는 시급
가족을 위해 계속 일하고 싶어

실버 택배원 조용문 씨가 노트북 배송을 위해 지하철역으로 들어서고 있다.사진 l 신민호 기자 dao96@skkuw.com
실버 택배원 조용문 씨가 노트북 배송을 위해 지하철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l 신민호 기자 dao96@skkuw.com

조용문(78) 씨는 9년 차 지하철 실버 택배원이다. 지난 15일 하루 동안 조 택배원을 따라다니며 지하철 실버 택배원의 삶을 들여다봤다.

조 택배원은 오전 7시 40분에 경기도 양주시의 집을 나섰다. 9시까지 종로3가역으로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8시 10분, 출근길에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조 택배원의 집과 가까운 의정부역에 가서 시청역 근처로 배달할 서류를 받으라는 전화였다. 1만 3000원짜리 운임이었다. 평상시의 7000~8000원  운임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보수였다. 시청역에서 만난 조 택배원은 부지런히 걸으면서 "신 기자 만나서 오늘 운수가 좋네"라고 말했다.

첫 번째 배송을 마치고 시청역으로 돌아온 조 택배원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다. 지하철역 안에 있는 자판기에서 그는 300원짜리 커피를 뽑아 마셨다. 커피를 마시며 조 택배원은 스마트폰의 앱으로 두 번째로 배송할 만한 오더(Order)를 찾았다. 강남에서 회기행 배송을 찾자 이내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노약자석에 앉자 그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십여 년 전, 조 택배원은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해 많은 기억을 잃었다. 30년 이상을 살았던 대구에 대한 기억이 거의 다 사라질 정도였다. 대학병원에서 수년간 치료를 받으며 마침내 기억과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진정으로 활력을 불어넣어 준 것은 지하철 택배였다. 매일 수 ㎞를 걸어다니며 운동을 하고, 배송하며 겪은 경험을 적은 블로그가 인기를 끌자 그의 삶은 한층 더 밝아졌다.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목적지 강남역에 금방 도착했다. 배송을 완료하고 새로운 오더 받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점심시간은 지나갔고 조 택배원은 2시쯤이 돼서야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배송할 스마트폰을 품에 꼭 안은 채 돈을 아끼기 위해 집에서 싸온 토스트를 이태원행 열차를 기다리며 허겁지겁 먹었다. 식사 시간 부족과 같은 택배원을 고충을 얘기하며 조 택배원은 심층적인 문제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근로계약서를 써 본 적이 없어요." 회사에서 그를 고용할 때 요구한 것은 그의 주민등록등본밖에 없었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으니 당연히 주휴수당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는 당연히 근로계약서를 써야 하는 것도, 주휴수당을 받아야 하는 것도 몰랐다. 9년간 여러 차례 회사를 옮겨 가며 실버 택배원으로 일했지만 4대 보험에 가입해본 적이 없다. 그는 배송 중 뙤약볕 속에서 "한 달에 보통 50만 원 가량을 버는데 매달 5만 원을 통신비로 내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의 고충을 듣다 보니 마지막 5번째 배송만을 남겨두게 됐다. 우연히도 마지막 배송지는 혜화역이었다. 처음으로 잘 아는 장소가 나온 기자는 혜화역 4번 출구 계단을 빠르게 올라갔다. 먼저 위에 도착해 뒤를 돌아보니 조 택배원은 계단 오르기가 힘에 겨운 나머지 다리를 절뚝이며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조 택배원은 배송이 힘들다며 "일이 힘들어서 일주일에 2, 3 번은 자다가 쥐가 나요"라고 말했다. 기자의 집 인근의 오목교역에서 출발해 일을 마치고 성대신문사에 도착하기까지 8시간 30분간 약 1만 9000보와 11㎞를 걸었다. 그 사이 108개의 역을 지나쳤다. 비슷하게 이동한 조 택배원이 일을 마치고 번 돈은 3만 1500원. 9시간 이상을 일한 조 택배원의 시급은 3500원을 채 넘지 못했다.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을 알면서도 조 택배원은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린 을이에요. 회사의 부당한 대우에 문제를 제기할 경우, 해고당할 것이 두려웠어요." 가족의 생계를 위해, 300일 된 쌍둥이 손자에게 줄 용돈을 위해 그는 계속 일하고 싶다. 퇴근 후 부인과 마시기로 한 맥주 생각 때문인지 작별 인사를 건네는 그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