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아버지가 냉장고 속으로 들어가신다. 냉장고 문을 꼭 걸어 잠근 아버지. 문을 열어 주세요. 우리는 배가 고파요. 채워질 수 없는 허기를 한 숟갈 퍼서 동생에게 내민다. 자궁에서 뿌리뽑힌 동생은 자구만 냉장고 문을 두드린다. 동생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한 움큼씩 작아지는 냉장고. 그르렁 그르렁 새어나오는 아버지의 울음소리를 받아먹는다. 곰팡이 슨 기억들이 위에서 소화되지 못하고, 발갛게 부어오른 목 너머로 멍든 위액이 출렁거린다. 아버지 거기서 무얼 하세요? 축축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쓸쓸하게 얼었던 동생의 영혼이 녹아서 저수지로 흘러간다. 고여서 썩어 가는 동생의 영혼을 한 컵 퍼서 냉장고 앞에 놓는다. 문이 열리고 젓가락 같은 아버지가 걸어 나오신다. 동상에 걸린 아버지의 전 생애가 컵 속으로 들어가서 차갑게 녹아 내린다.

[시 당선소감] 정민경(정외3)

불확실함 속의 작은 가능성

▲ ▲ 당선자 정민경(정외3)
작년 가을에 처음 시를 만났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던 그 때 한 계절을 온전히 시에 기대어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지금 내가 썼던 시의 가장자리를 더듬더듬 훑고 있다.
성대신문에서 당선을 알리는 전화를 했을 때 도서관에서 토익 책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4학년이라는 이름에 눌려 토익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즈음, 뜻밖에도 성대신문에서는 내 시가 당선작으로 뽑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구겨 넣어 버린 내 꿈을 다시 꺼낼 용기를 갖게 되었다. 도서관의 무거운 공기에 눌려 조용히 숨 죽이고 있었던 꿈을 이제서야 똑바로 바라본다. 불확실함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했던 시간들을 끌어안고 이제 다시 시작이다. 부족한 작품이지만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시 심사평] 제법 심사다운 심사

 강우식(어문학 교수, 국문·시인)

이번 성대문학상 시 부문은 투고자가 지난해보다 훨씬 많아서 제법 심사다운 심사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할까 저울질도 하고 망설이기도 했다. 특히 이공계 쪽 학생들이 많이 응모를 하여서 가능하면 한 편 정도 뽑으려 했으나 그렇지 못하여 아쉬움이 남는 기사였다.
당선작으로 정치외교 전공 3년인 정민경의 <냉장고 속의 아버지>로 정했다. 정 양은 우선 시가 무엇이고 시를 만들 줄 아는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사자의 개인적 취향이지만 나는 요즘 씌어지는 산문시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왜냐하면 시가 설명조로 되고 시적 긴장감이 덜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양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한 것은 그의 산문시들이 시적 형상화에 뛰어났음을 말해준다. 초현실풍의 이 시속에서의 아버지와 냉장고의 관계, 그리고 가족들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가작으로는 법학과 심민경의 <공무도하가>와 인문과학계열 제아름의 <문득>으로 했다. <공무도하가>는 고전가요의 패러디이나 나름대로 잘 시로 창작한 능력을 높이 샀으며 제아름의 <문득>은 단시이나 사물의 미세한 느낌들을 표현할 줄 아는 점을 좋게 보았다. 좋은 시들을 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