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얼마 전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원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오랜만에 국가사회를 위한 진정어린 걱정이 스민 발언이 나왔다. 요약하면 "정치권의 대립이나 갈등이 정파에 따라 점점 더 격렬해지고 또 그에 따라서 지지하는 국민들 사이의  적대감도 갈수록 높아지는 현상이 가장 걱정스럽다"는 내용이었다. 긴박한 시사 정치이슈와 일정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한 사회의 지적 생산자의 역할을 다하고자 애쓰는 아카데미아의 많은 사람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정파의 대립과 갈등이 국민들 사이의 '적대감'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한 레토릭 때문이다. 정치학 사전에도 공식적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그러한 현상은 세계 도처에서 벌어진 참혹한 내전(Civil War)의 가장 명백한 전조이다. 물론 지난 세월의 지난한 고난을 극복하고 이제 겨우 살 만한  나라를 세웠는데 '내전'이라니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한 국가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서술하는 데 절대로 사용되지 말아야 할 매우 강하고 유의미한 '언어'가 바로 '적대감'이라는 단어이다.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소위 국가의 최고 지도자들과 원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러한 용어가 버젓이 사용되었다는 점은 매우 충격적이다.

광고철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빌 번바크(Bill Bernbach)는 "광고는 근본적으로 설득이다. 설득은 꼭 과학일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아트여야 한다" 라고 말했다. 아트(Art)라는 단어를 '예술'이라고 번역하지 않은 이유는 미를 창조하고 표현하는 '예술행위'에 더하여 그것을 제작하기에 충분할 만큼 세밀하고 노련한 '기술'을 동시에 지칭하는 단어가 바로 '아트'라는 함의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 짧은 말 속에서 '좋은 광고'='미적 가치가 오랫동안 기억되는 광고'='설득력이 높은 광고'라는 결론이 곧바로 도출된다. 그러기 위해선 그것의 표현을 위한 세밀하고 노련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 기술은 바로 자연과학, 행동과학, 사회과학 등의 과학적 지식과 발견, 그리고 철학, 문학, 언어학 등의 인문학적 지식에서 나온다. 또한 설득은 결국 메시지에 노출된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가 인지하는 현실조건에 비추어 그 진실성을 어느 정도 수용할지 결정하는 인지적 협상과정이다. 따라서 설득의 메시지는 진실해야 한다. 진실할수록 강한 설득력을 내뿜고, 그 진실이 아름다울수록 그 효과는 오래간다.

느닷없이 정치와는 전혀 관련 없는 광고이야기를 꺼내서 의아해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빌 번바크(Bill Bernbach)의 광고철학은 우리에게 한국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유추해볼 좋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우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인류 전체가 바로 상품과 정보의 소비자라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광고의 미적 가치가 내뿜는 끌어당기는 힘, 상품과 정보의 효용성, 광고 메시지의 진실성 등을 종합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결정하는 상품구매행위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그들은 좋은 광고와 나쁜 광고를 골라내는 평가자이자 감시자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잘 구축된 시장경제에서 허위광고는 끼어들 틈이 없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인류 전체가 감시의 눈을 번득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특정 상황에서 허위광고가 처벌되지 않고 시장에 범람하게 되면 시장 감시자 논리는 붕괴되고 시장은 약육강식의 홉스적 자연 상태로 타락하고 만다. 예를 들어 한강물을 무병장수의 명약으로 속여 팔고, 사정이 급하게 보일수록 더 심한 바가지 가격을 덮어씌우고, 그러한 불의와 부정을 하소연할 데가 없는 사회. 그러한 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 관계는 깨지고 거짓말, 사기, 공갈·협박, 하다못해 납치가 횡행해도 아무도 항의할 엄두를 못 내고  강자가 약자를 맘대로 집어삼키는 야만상태로 퇴행한다.

  이 나라는 한때 공식적으로 저개발국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거짓말하는 정치인이나 언론인, 연예인 등 공인은 용납되지 않던 시대가 있었다. 그가 뱉은 말이 거짓임이 드러나면 은퇴나 하차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짓말이 하나의 정치도구, 생활 도구처럼 사용되고 있다. 거짓임이 드러나도 거짓이 아니라고 우길만한 핑계는 주변에 넘쳐흐른다. 거짓을 거짓이 아니라고 힘을 실어줄 '내 편'도 많고, '거짓증언자'도 얼마든지 동원 가능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적대감'이란 말이 무심코 사용되는 한편 신뢰관계가 깨지는 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들린다. 이것이 더욱 가슴 아픈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