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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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활약했던 코미디언 고 이주일 씨는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 드리겠다니깐요”, “일단 한번 보시라니깐요” 등의 유행어를 남겼다. 30년이 지난 작금에도 유행어가 모방, 재생산되는 경향이 있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라는 제목의 연속극이 인기리에 방영된 바 있다. 요즘 대중매체에 출연하는 연예인, 뉴스해설가, 스포츠 중계 프로그램의 해설위원 등의 방송인들이 “일단”이라는 어휘를 무차별적으로, 빈번하게 사용한다는 인상을 준다. 최근 필자가 시청한 한 지상파 뉴스프로그램에 출연한 해설가는 캐스터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일단”이라는 어휘를 거의 매 소절마다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들었다. “일단”의 부사로서의 사전적 의미는 “우선 먼저”, “우선 잠깐”, 등이다.

“일단”이라는 어휘사용은 이어서 제시하는 의견의 중요성의 우선순위를 강조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따라서 구어체에서의 “일단”은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문장을 형광펜으로 표시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일단”을 거듭해서 사용하는 것을 형광펜 사용에 비유해 보면 읽은 쪽의 거의 전체를 마커로 줄을 쳐서 중요한 부분이 구별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때 서두에 한번 “일단”이라는 어휘를 사용했다면 그 다음에 나열하는 의견은 다시 “일단”이라는 단어를 피하는 것이 말의 간결함과 명확성을 돋보이게 하리라 믿는다.

“일단” 외에 방송인들에게서 자주 듣는 또 다른 어휘가 “경우에는”이다. 축구경기 실황중계방송의 해설위원이 그날의 경기에서의 한 팀의 선수들의 기대되는 역할을 설명하면서 매 선수마다 “ㄱ 선수의 경우에는,” “ㄴ 선수의 경우에는” 등의 표현을 하는 사례를 봤다. 그냥 “ㄱ선수는”, “ㄴ선수는”이라고 표현해도 맥락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경우에는”이라는 불필요한 어휘를 남이 쓴다고 따라 할 필요는 없다. 2000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알 고어는 공화당 후보 아들 조지 부시와의 텔레비전 토론에서 노인의료보험에 “잠금장치”(Lockbox)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잠금장치”라는 단어를 다섯 번 되풀이해서 사용하여 언론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SNL(Saturday Night Live)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된 적이 있다.

“일단”처럼 하나의 어휘가 유행되면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군사정권시절부터 등장한 용어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예컨대, “실탄”, “여당의 2 중대”과 같은 용어가 각각 “선거자금”, “친 여당성향의 야당”을 지칭하는 어휘로 한국 사회에서, 특히 정치계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제는 이 어휘들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져서 청산이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체어휘를 찾는 노력이 부족한 탓도 있다고 믿는다.
 
필자의 지인은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 출신의 교수로 한국은 유행의 나라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프랑스인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데 비해 한국인들은 헤어스타일, 패션, 운동은 물론 건강에 좋다는 음식까지 유행을 따라간다고 했다. 196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압축된 경제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외국의 과학기술을 도입해서 따라잡기에 큰 성과를 일궈냈다. 한국은 최근 20여년의 기간 동안 나름대로 첨단기술 개발에 많은 투자와 인력을 투입한 결과로 개인 평균소득 3만 달러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지식, 정보에 기반을 둔 창조적 경제의 틀을 짜는데 지속적으로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도 타인이 이룩한 훌륭한 업적에서 배우고 본받는 한편, 자신이 가진 고유한 재능을 계발 하여야 사회의 발전과 다양성 증진에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한 기초단계로 남이 하는 어휘사용을 따라 하는 모방의 습관을 벗어나 새로운 어휘, 표현, 각자의 개성에 걸맞는 말하기를 만들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신의항 초빙교수학부대학
신의항 초빙교수
학부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