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인영 (ciy0427@skkuw.com)

인터뷰 - <명탐정 코난>의 남도일, 강수진 성우

사진 l 김나래 기자 maywing2008@

목소리 유지보다 감성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해
좋은 목소리보다 중요한 것은 목소리에 담는 진심

추억 속 애니메이션 캐릭터부터 극장판, 모의고사 안내 음성, 그리고 광고까지 우리 일상을 목소리로 안내하고 꾸미는 이들이 있다. 목소리로만 연기하는 배우, 성우다. ‘목소리로 세상을 그린다’는 좌우명과 함께 강수진 성우는 90년대부터 지금까지 국내 최정상급 성우로 활동하고 있다. 추억 속 만화 캐릭터부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모바일 게임 캐릭터의 목소리까지 연기하는 강수진 성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처음부터 성우를 꿈꿨는가.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해 중학교 때까지 음악 PD가 되고 싶어서 라디오 PD를 꿈꿨죠. 라디오 PD를 지망해 서울예술대 방송연예과에 진학했어요. 방송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공부하다가 성우 연기에도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라디오 PD가 아니라 성우가 된 결정적 이유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서였어요. 지금은 유튜브 크리에이터 같이 PD가 될 수 있는 길이 많지만, 그때만 해도 라디오 PD가 될 수 있는 길은 방송국 PD뿐이었어요. TV 채널도 공중파밖에 없던 시절이라 PD가 되기 위해서는 방송사 시험에 합격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성우로 눈을 돌렸죠.

라디오 PD를 꿈꾼 과거가 성우라는 직업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
학과 커리큘럼에 성우에 관한 수업이 이미 있어서 그 덕을 봤어요. 저한테 성우는 공부했던 분야이기 때문에 낯설다거나 특별하지는 않았죠. 고시라는 벽을 넘지 못한 와중에 과연 성우로서의 나는 어떨까 궁금해서 시험 삼아 KBS 공채 성우에 지원했어요. 한 번 봐 본 시험에 졸업도 하기 전에 덜컥 붙어 버렸죠.

90년대 애니메이션에 대부분 출연했는데 출연 당시 어떠했는가.
90년대 작품에 많이 출연하게 된 이유는 제가 잘해서라기보다 시기적으로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SBS 공중파 방송국이 91년에 새로 생기는 바람에 편성을 채우기 위해 여러 콘텐츠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94, 95년에 케이블 채널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20개가 넘는 채널이 새로 편성되기도 했죠. 신생 방송국은 재정적으로 안정되지 않아 애니메이션을 주로 방송했고, 그 채널 중에는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도 있었어요. 90년대 애니메이션 시장이 갑자기 커졌던 셈이에요. 애니메이션 시장이 커졌으니 당연히 성우에 대한 수요도 늘어났었죠. 세대를 잘 타고난 덕을 많이 봤어요.

처음 대본을 받을 때 어떤 것들을 준비하는지.
라디오 드라마, 애니메이션, 외국영화 등 프로그램 종류에 따라 달라요. 라디오 드라마는 대본만 가지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고, 애니메이션은 만들어져 있는 영상 캐릭터의 특성에 맞게 목소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점이 다르죠.

목소리를 만들어낼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애니메이션은 대체로 수입해오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캐릭터의 특성이나 목소리가 있어요. 그래서 목소리를 만들어낼 때 우리나라 정서에 맞출 것인지, 아니면 기존 이미지를 유지할 것인지 선택해 목소리 톤을 조정해요.

성우는 목소리로만 캐릭터를 표현하는 배우인데 어려움은 없나.
목소리에 이미지나 대사가 담고 있는 의미를 집약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점이 어려워요. 실제로 작품을 분석한 후 캐릭터를 구축하고 연기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영화 연기자나 연극배우와 같아요. 다만 몸을 제한적으로 움직일 뿐이죠. 동작을 연상하면서 이를 소리로 전환하는 감각은 다른 배우들의 연기와 다르지 않아요.

청년 캐릭터를 많이 연기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는가.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신체 관리만 하면 되기 때문이에요. 중요한 것은 그 나이대의 감성을 잃지 않는 것이에요. 그것을 잃는 순간부터 이 일이 힘들어지죠. 어린 감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라 아직 철이 들지 않는 것 같아요. 감성을 유지하기 위해 젊은 세대의 언어를 수집하기도 하고 연구하기도 해요. 근데 수집해보니 비속어나 과한 축약어가 대부분이어서 그런 어휘들을 사용하는 것보다 그런 언어를 쓰는 감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는.
하나만 뽑는 것은 어려워요. 기억에 남고 애정하는 캐릭터는 있어요. <알라딘>의 알라딘이나 '란마 1/2'의 란마가 저를 대중에게 많이 알릴 수 있게 해준 캐릭터예요. 두 작품이 제 데뷔작이나 마찬가지인데 고맙게도 둘 다 큰 인기를 얻었죠. 지금 연기하고 있는 루피도 애증 하는 캐릭터예요.

한국말 더빙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이에 대한 생각은.
더빙에 관해서는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고 존중받아야 해요. 우리말 더빙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고 원어로 듣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개인의 취향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더빙을 좋아하든 원어를 좋아하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빙은 공익 차원에서라도 기본적으로 제공돼야 하는 서비스에요. 우리말을 배우는 단계인 어린이에게 이런 미디어 콘텐츠의 영향력이 크죠. 언어 교육을 위해서라도 더빙은 기본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더빙은 기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필수적으로 제공돼야 하는 서비스라고도 볼 수 있어요.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연예인 더빙이 논란이 됐다. 성우가 아닌 사람이 더빙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더빙은 성우의 전문성이 중요한 일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성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더빙도 연기이고 배우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연기력을 갖춘 가수가 와서 해도 돼요. 다만 직업과 상관없이 해도 되는 일이지만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이 하면 더 좋다는 거죠. 유명인이 더빙하는 것이 얼마나 작품의 흥행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실력이 담보돼 있지 않은 사람이 더빙해 잘된 적은 없어요.

물론 연예인이 더빙해서 결과가 좋았던 경우도 있어요.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업>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이순재 선생님이 더빙하셨어요. 출중한 연기력으로 더빙이 빛났죠. 이런 사례를 보면 더빙이 성우만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성우가 아닌 사람이 한 더빙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올바른 더빙 문화가 형성되면 좋겠어요.

일본과 비교해 한국 성우계가 가지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본보다 한국 성우계에 아쉬운 점이 많아요. 왜냐하면 일본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 일본 성우계가 우리나라보다 성우 고용이나 출연 등이 안정적이고 성우의 양성부터 선발, 활동까지의 구조도 합리적이에요.

우리나라도 성우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은 많아요. 하지만 일본은 작품을 통해 데뷔하는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성우가 데뷔하려면 공채시험에 합격해 일정 기간 전속 성우 기간을 거쳐야 해요. 이 구조가 상당히 오래된 구조인데 이 구조는 점점 변화해가는 미디어 시장 환경 여건에 맞지 않고 불합리한 구조에요. 이런 구조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시장에 맞춰 애니메이션 배급사의 더빙 수요에 대한 성우 수급 조절이 되고 성우가 양성돼야 해요.

음원을 녹음할 때도 가이드 보컬이 있는데 더빙에도 가이드가 있는가
성우가 녹음할 때도 가이드 녹음이라는 과정이 있긴 해요. 해외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에 해외 성우들의 녹음된 목소리가 가이드가 되죠.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녹음을 먼저 할 때도 있고 나중에 할 때도 있어요. 녹음을 먼저 할 경우에는 애니메이션 스케치 초안에 녹음하는데 애니메이션 제작자에게 대사를 말하는 대략적인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녹음해요. 이 경우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려워요. 그래서 나중에 전문 성우가 완성된 애니메이션 위에 녹음하는 경우가 많죠.

최근 참여하는 작품 활동은 어떤 것인가.
최근에는 라디오 드라마 ‘와이파이 삼국지’에 참여하고 있어요. 코믹하고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모든 출연진이 진지하게 임하고 있어요. 그 외에 ‘원피스’나 ‘명탐정 코난’ 같은 기존의 시리즈도 이어서 하고 있어요.

오디오 관련 콘텐츠 생산자가 '일반인'으로 확대됐다. 최근 자신의 목소리를 콘텐츠로 만드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목소리보다는 진심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목소리가 좋으면 금상첨화겠지만 목소리로 뭔가 전달해내기 위해서는 성의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성우에게 있어서 목소리는 배우의 외모와 같다고 볼 수 있어요. 예쁘고 잘생긴 게 이왕이면 좋죠. 하지만 배우가 외모만 가지고 연기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목소리가 좋으면 일단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겠지만 연기에 개성과 진심이 없으면 비판을 받게 될 수 있어요. 성우가 목소리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통념에 불과해요. 좋은 목소리보다 목소리에 자신의 개성과 진심을 담는 것이 더 중요해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와 기억되고 싶은 모습은 어떤지.
지금도 많이 사랑받고 있지만 다양한 미디어 환경에 성우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어요. 과거에는 연기 잘하는 성우로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것도 참 오만인 것 같아요. 지금은 그냥 열심히 일했던 성우로 기억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