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1980년대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와 IBM PC의 결합에서 출발한 정보기기의 대중화는 1990년 대 인터넷이 보급되며 야후와 구글을 낳았다. 이후 유선 인터넷망이 이동 무선망으로 진화하면서, 야후는 쇠락한 반면 구글은 더욱 강력해졌고, 페이스북과 같은 새로운 기업이 출현하였다. 기술혁신의 순간마다 기업들은 명멸하지만, 대중은 신기술이 가져온 새로운 시장과 그에 따른 사회, 문화적 진보에 환호하며 기술혁신이 좀 더 풍요롭고 안전한 사회를 이끌어 낼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기대는 비록 몇번의 경제위기 속에 비정규직이 늘고, 글로벌화에 의해 생산 플랫폼이 표준화되며 고용의 국지적 축소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전지구적으로는 기술혁신과 함께 노동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공유경제라는 환상적인 타이틀로 에어비앤비와 우버가 다가왔다. 사실 그들에게서 구글이 보여준 기술혁신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들은 호텔보다 싸고 택시보다 친절하며 유연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들은 주장한다. 유휴자원의 활용을 통해 전체 시스템의 효율을 개선할 것이라고. 결국 공유경제는 기술혁신에 바탕을 둔 사회경제적 혁신처럼 보였다. 그런데, 문득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기업을 통해 공유경제가 가능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거시적으로는 생산의 확대를 통한 성장이 가장 중요한 자본주의에서 자원의 효율적 이용은 성장의 역기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자본주의 기업과 공유경제의 조합은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전쟁을 관장하는 평화부’와 같이 이중사고의 결과물인지 모른다.

에어비앤비는 호텔들의 경쟁자로 등장했기 때문에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그러나, 우버는 단순히 택시 사업자를 대체하는 것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우버는 그들의 드라이버에게 파트너라는 환상적인 용어를 부여한 대신 종래의 기업이 지는 노동에 대한 기본의무를 제거하였다. 비정규직을 넘어 비고용의 형태로 노동을 사용할 수 있는 관계가 구성된 것이다. 어쩌면 우버의 혁신은 기업과 노동 간의 새로운 계약방식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내에서 ‘타다’라는 카쉐어링 플랫폼을 둘러싼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 사업주는 공유경제를 통한 혁신을 주장하지만 다른 편에서는 택시와 다름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저항을 한다. 혁신의 주창자는 피해를 증명해 보라고 말한다. 그런데, 카쉐어링이 공유경제라면 택시는 왜 공유경제가 아닌가? 운행의 정교한 스케쥴링을 제외하면 택시업과 차별점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왜 타다는 이런 비극적 상황까지 왔을까? 타다는 신규시장으로 포장했지만 가장 열악한 환경의 노동시장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매출상으로 광고회사이다. 하지만 구글은 기술혁신을 통해 그들만의 광고 플랫폼을 기획하고, 현재까지는 이 플랫폼 구현을 위한 새로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장을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수 많은 고용을 창출하였다. 앞으로 정부는 혁신을 주장하는 사업들의 고용영향 평가를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문제는 과도적 현상이다. 인공지능이 진화하고 있는 지금 10년 뒤의 노동시장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우버도 타다도 인공지능에 기반한 무인주행을 기술혁신의 최종목표로 잡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산업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다. 결국 기술혁신의 종점은 노동이 없는 생산방식이 될지 모른다. 여전히 자본과 토지는 유효한 이윤을 창출하겠으나 노동이 설자리는 점점 좁아질 것이다. 인공지능의 방아쇠를 당긴 구글은 evil이 되지 않기 위해서 컨텐츠 생산자뿐 아니라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에게도 보상을 해야 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