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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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학기 축제도 끝나고 기말시험의 어두운 그림자가 점차 다가오는 듯한 심기 불편한 세월에, 늦봄 날씨는 지나치게 화창하다. 일상이 되었던 미세먼지조차 잠시 자제해주고 있는 화창한 늦봄 날씨는 오히려 폭풍전야의 불안함, 불확실함의 전조라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 것은--, 이제 우리가 익숙한 세상에서 익숙한 전략과 전법으로 하루하루 반복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세상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음을 이제 우리 모두가 나날이 절감하기 때문일까?

우리가 익숙한 세상이 예측가능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이런 예측 가능한 세상에서 예측 가능한 미래를 대비하여, 정돈되게 미래를 준비하는 안정적 세계를 경제학은 늘 꿈꾸었다. 이렇게 확실하게 안정적인 세계를 균형(equilibrium)이라고 부르고, 그렇지 않은 불확실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세계는 불균형(disequilibrium 혹은 off-the-equilibrium)이라고 부르면서, 이는 단지 균형으로 가는 과도기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는 늘 확실하고 안정된 세계를 꿈꾸는 경제학의 꿈이 허망한 신기루인가 하는 의문을 더욱 증폭시킨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격동의 세월을 그쳐서, 그나마 인류역사상 전례없이 긴 평화와 안정의 세계를 누릴 수 있게 해주었던, 브레턴우즈 체제를 중심으로 한 2차대전 이후의 세계경제체제를, 이 세계경제질서를 제안하고 주도적으로 유지해왔던 미국의 대통령이 앞장서서 붕괴시키며, 세계경제의 미래를 예측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더해서 산업혁명의 발상지이자, 자유무역과 경제통합의 주창자였던 영국이 돌연 브렉시트를 선언하면서, 유럽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를 불안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전대미문의 불확실성이 확산된 배경으로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 및 사회양극화의 원인을 시장개방과 외국인 노동자유입과 같은 대외적 요인들에게 뒤집어씌운 극우선동주의정치세력들이 득세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믿기지 않는 것은, 이런 언어도단의 논리를 구사하고 있는 미국의 트럼프와 영국의 극우세력들을 양국 유권자들의 다수가 지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경우, 재선까지도 노릴 정도로, 정치적 지지도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급기야, 미국인들과 영국인들에게는 민주주의가 과분한 제도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더해서, 정보통신기술을 중심으로 한 기술혁신의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수입한 기술의 민첩한 상용화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대기업의 생존전략이 통하는 산업이 거의 없어졌다. 여전히 원천기술개발능력은 거의 전무한 가운데, 상용화기술은 중국에 이미 뒤쳐진 한국대기업의 미래는 막막하다. 그래서 이런 불확실한 세계를 사는 우리 청년들의 미래도 더더욱 막막하다. 답은 없는 것인가?

돌이켜보면, 원래 세상에서, 또 우주를 통틀어서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안정적 세계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었고, 또 존재할 수도 없었던 것 같다. 당장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계와 은하계와 함께 광속의 속도로 예측할 수 없는 우주의 알 수 없는 공간으로 팽창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 세계는 동일한 공간에서, 하루 24시간, 한해 365일이 안정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은 완벽한 착각이다.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세계 자체가 착각이었던 만큼, 이런 예측불가능한 우주를 살고 있는 청년들의 덕목은, 안정적 수입을 보장해주는 철밥통을 찾는 부질없는 노력이 아니라, 이런 약동하는 우주에서 내가, 또 우리가 더욱 기쁘게 약동할 수 있는 길을 찾는 현명함일 것 같다. 경제학도라면, 안정된 부동산수입만을 쫓던 우매한 트럼프와 그의 추종자들이 뒤흔들어버린 세계질서를 회복하는 길, 즉 기회의 균등화를 통한 사회통합의 전략을 찾는 길, 정치학도라면, 교활한 분열의 정치수작으로 버티고 있는 정치모리배들의 여지를 줄일 수 있는 정치제도를 설계하는 길, 공학도라면, 지속가능한 생산혁신의 기술을 찾는 길, 이런 길들이 신기루 같은 철밥통을 찾는 전략보다는 더욱 훌륭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청년의 길인 것 같다. 혹시 이런 나의 고백이 꼰대의 고백이라고 청년들이 일깨워준다면, 나는 또 다시 불확실한 우주에서의 덕목을 찾아 나설 수 밖에~

김영한 교수 경제학과
김영한 교수
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