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상환 편집장 (lsang602@skkuw.com)

‘인문캠은 학교에서 치킨집 사업 배운다던데’, ‘들어올 땐 1등급, 나갈 땐 9급’, ‘인서울도 못한 놈들이….’

자인전 문구는 학내·외에 큰 파장을 가져왔다. 학내 커뮤니티에는 문구를 작성한 학우와, 이를 허가한 총학생회에 대한 비판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문구를 작성한 학우는 결국 사과글을 올렸다. 대학사회에서 논란이 되니, 기성언론도 주목했다. 한 언론사는 “대학생이 취업난으로 인한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나서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집단을 공격해 안도감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수평폭력’은 나와 비슷하거나 아래인 계층의 사람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정작 자신을 억압하거나, 문제의 근원들은 잠시 비켜둔 채로.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프란츠 파농이 세계2차 대전 이후 제시한 이 개념은 프랑스의 식민인 알제리에서 착안한 개념이다. 알제리인들은 정작 자신들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프랑스가 아닌 같은 알제리 민중을 대상으로 범죄 등의 분노를 표출했다. 농담 삼아 올렸을 저 현수막 문구에 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저 문장의 기저에 있을 ‘수평폭력’을 봤기 때문이다. 현수막 논란의 풍경은 과거의 알제리인의 모습과 중첩됐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수평폭력'은 만연하다. 비단 이번 현수막 논란만이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멸시에서, 공익들에게 대한 군필자들의 조롱에서, 이번과 같이 취업이라는 잣대로 인문대를 비하하는 시선에서, 수평폭력은 존재하고 있다.

김수영 시인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말한다. 우리를 억압하는 시대가 아닌, 주위의 약자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자신을 향해 자조 섞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문제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누구도 12년간의 교육과정이 단 하루 만에 결정되는 수능체제에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수강신청을 할 때마다 대부분의 대학생은 피시방까지 가 광클릭을 한다. 누구도 애초에 수업수강이 ‘마우스 클릭의 속도’, 혹은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여부’에 따라 결정돼야 하는지, 시스템 자체에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질문의 결여’는 쉽게 ‘수평폭력’으로 이어진다, ‘자신보다 성적이 낮은 대학에 간 이들’에게 은밀한 우월감을 느끼며.


틀에 안주하지 않고 틀을 벗어나는 것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체제에 순응하고 불편하게라도 그것에 몸을 끼워 맞추는 것은 편하다. 체제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그 자체로 반체제적이다. 그러나 폭주기관차와 같이 앞을 보지 않고 질주하는 이 사회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현수막 같은 문구가 재미삼아 올라오지 않도록 하는 길이다.

끝으로 이런 '수평폭력'이 낳을 논란을 상상하지 못한 총학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끊임없이 상상하고 꿈꾸는 자만이 창조할 수 있다. 총학이 꿈을 잃으면 그저 '대내활동 하는 장사꾼’에 불과하다. 재능과 시간, 열정을 바쳐 꿈과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건 사고 없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끝낼 수 있을지’ 따위의 손익계산서에 얽매인다. '수평폭력'을 방관하고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학우들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점들을 상상하고 지적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총학의 앞으로를 기대한다. 

이상환 편집장lsang602@skkuw.com
이상환 편집장
lsang602@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