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지리학, 끊어진 지리학의 맥을 잇다
전통 지리학, 끊어진 지리학의 맥을 잇다
  • 조수빈 기자
  • 승인 2019.05.27 15:07
  • 호수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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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지리학의 두 축, 지도학과 지지학
천원지방의 관념 따라 방격법 이용해 지도 제작

인간은 땅 위에 집을 지어 마을과 도시를 만들고, 땅에서 먹을 것을 얻고, 땅 위에서 구한 것들로 의복과 필수품을 해결한다. 인간은 땅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에서 지리학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약 600여년 전 우리 선조들에게 지리학은 어떤 의미였고, 그들은 지리학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전통 지리학이란 무엇일까
전통 지리학은 근대 지리학이 도입되기 이전에 한국에서 전개됐던 지리학을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이전, 선사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지리학이 이에 해당한다. 전통 지리학은 땅을 표현하는 학문인 지도학과 땅을 기술하는 학문인 지지학을 두 축으로 삼고 있다. 이는 ‘왼쪽에는 지도, 오른쪽에는 지리서’라는 뜻의 좌도우서(左圖右書)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다. 한편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풍수지리는 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전통 지리학의 한 분야로 볼 수 있지만, 신비적이며 점술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성격이 지도학, 지지학과 다소 다르다. 따라서 전통 지리학은 풍수지리를 제외한 지도학과 지지학을 중심으로 다룬다.

땅의 모습을 표현하는 지도학 
지도는 과거의 공간 현상을 전해주는 귀중한 시각 자료다. 지도를 통해 우리는 국토와 지역의 옛 모습을 생생하게 살필 수 있으며, 제작 당시의 과학 기술과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전통 시대에 국가가 주도적으로 지도를 제작하는 경우에는 전담하는 기관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고 테스크 포스팀처럼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지도 제작에 참여한 사람은 △산천의 형세를 파악하는 상지관 △구체적으로 방위나 거리들을 측정하는 산사 △그림에 정통해 지도를 직접 그리는 화원 등이 있다. 국가 차원에서 제작한 지도는 주로 행정이나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됐다. 행정적 목적으로는 지역의 형세, 인구, 재정 등과 같은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 지도가 활용됐다. 또한 군사적 목적인 경우에는 적의 침입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고 전쟁 같은 유사시에 대비할 때 사용됐다.

조선 시대 양대 전란을 겪은 후에 지도 제작은 민간 주도로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민간에서는 지도가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됐다. 특히 여행할 때 지도를 많이 이용했는데, 이 때문에 휴대하기 편리한 지도의 수요가 증가하기도 했다. 실용적인 이용과 더불어 예술적 차원에서 지도가 이용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허균은 지도를 펴놓고 우리나라의 산천을 감상했다. 이러한 경우를 ‘와유(臥遊)’라고 하는데, 실제 용도로 이용하지 않고 지도를 집 안에 걸어두고 감상하는 것을 말한다. 이 외에 지도는 역사 공부의 참고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안정복은 과거 역사 지리적 내용을 고증할 때 지도를 이용하기도 했다.

둥근 지구를 전제로 해 *투영법을 활용한 지도 제작 이론이 발전했던 서양과 달리, 전통 시대의 동양에서는 천원지방의 관념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투영법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 따라서 당시 동양에서 지도 제작의 핵심적 문제는 평평한 땅의 모습을 2차원 공간에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를 구현한 대표적인 지도 제작 방식은 방격법이다. 방격법은 동서와 남북을 일정한 거리로 구분해 바둑판 모양의 방안망을 만들고 그 망을 이용해서 정확한 방위와 거리를 나타내는 도법이다. 방격법은 거리와 방위, 그리고 축척을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했으며, 지도의 축소와 확대도 가능하게 했다. 전통 시대의 여러 지도에서 방격법을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지도인 '대동여지도'에서도 방격법이 사용됐다.

땅의 형상을 기술하는 지지학
전통 지리학에서는 지도뿐만 아니라 지리지도 중요하다. 전통적 지리지는 지역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기술하는 현대적 지리지와 형식에서 차이가 있다. 전통적 지리지의 가장 큰 특징은 백과사전식 기술 방식이다. 백과사전식 기술방식은 자연과 인문에 관한 여러 항목을 배열하고 이에 대해 간단하게 기술하는 형식을 말한다. 따라서 지리적 현상의 인과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이 부족해 전통적 지리지가 지닌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돼왔다. 그러나 전통적 지리지가 오랜 기간 동안 전국에 걸쳐 일정한 형식과 내용을 고수하면서 지속되어온 점은 지리지가 편찬된 시대성과 지역성을 반영해준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의 지리지는 조선 시대 사람들이 조선이라는 지역의 성격과 특징을 추출, 표현하고자 했던 방법이며, 이러한 점에서 지리학의 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 시대의 지리지는 국가 행정의 기본적 자료다. 지리지의 편찬은 산천의 구분과 같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은 국가 차원에서 편찬된 대표적인 지리지이다. 이러한 관찬(官撰) 지리지 이외에 지방의 사림이나 유학자가 편찬한 읍지(邑誌)도 향토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됐다. 또한 지리지는 강역과 연혁, 산천의 형세와 흐름, 국방과 관련된 사적 등을 중요한 항목으로 기록해 이를 후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학문, 전통 지리학
근대 지리학이 도입되기 이전에 이 땅에 수천 년 존속했던 전통 지리학에 관한 연구는 그 역사만큼 풍부하거나 심오하지 못하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고 서양의 지리학이 본격적으로 수용되면서 전통 지리학에 대한 연구가 단절됐기 때문이다. 또한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은 전통지리에 대한 접근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왜곡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제주대 지리교육과 오상학 교수는 “전통 지리학에 대한 연구는 단순한 지리의 한 분야로서가 아니라 끊어진 지리학의 맥을 잇는다는 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통 지리학은 과거의 박제화된 유물이 아니고 현재에도 재창조 가능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지지학의 전통은 지금에도 한국 지리지를 비롯한 다양한 지지의 편찬으로 이어지고 있고, 지도학 역시 국가 기본도를 비롯하여 최첨단 컴퓨터 지도학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전통 지리학의 의의를 밝혔다.

*투영법=지구표면의 상태를 될 수 있는 한 오차를 줄여 평면으로 나타내는 방법.

방격법의 원리를 이용한 '대동여지도'. 방격법을이용했으나 지도 읽기에 방해되기 때문에 실제 지도에 선으로 그려 넣지는 않았다.
방격법의 원리를 이용한 '대동여지도'. 방격법을 이용했으나 지도 읽기에 방해되기 때문에 실제 지도에 선으로 그려 넣지는 않았다.
ⓒ오상학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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