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지리는 서로 영향 미치는 관계”
“정치와 지리는 서로 영향 미치는 관계”
  • 한연수 기자
  • 승인 2019.05.27 15:21
  • 호수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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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경희대 지리학과 지상현 교수

사진 l 한연수 기자 yeonsoohc@skkuw.com
사진 l 한연수 기자 yeonsoohc@skkuw.com

지정학, 아직까지 지리학적 위상 낮아
수동적 세계관 극복해야 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전쟁의 원인이라 평가받아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금지됐던 학문이 있다. 바로 지정학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점점 치열해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지정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정학은 어떤 학문이기에 외면당했다가 다시 주목받고 있을까.

지정학은 어떤 학문인가.
지정학은 지리적 요인을 통해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학문으로 정치지리학의 하위 학문이다. 정치지리학은 공간 내부의 권력 간 역학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것의 하위 학문인 지정학은 공간 중에서도 국가 간 관계를 바라본다. 지정학에는 고전 지정학과 현대 지정학이 있다. 고전 지정학은 한 국가의 위치가 그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전제로 해당 국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근대사에서 러시아가 부동항을 얻기 위해 남진 정책을 실시할 때 이를 막기 위해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사건도 고전 지정학의 영향이다. 그러나 고전 지정학은 학계에서 더 이상 연구되지 않는다. 고전 지정학의 전제 자체가 환경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현대 지정학은 이러한 전제에서 벗어나 고전 지정학에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며 특정 담론이 왜 의미 있는가를 연구한다. 담론의 예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믿는 반도의 숙명을 들 수 있다. 반도는 해양과 대륙 사이에 끼어있어 침략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반도의 숙명이다. 하지만 이 말은 다른 반도 국가에는 없고 오직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담론이다. 이 담론이 왜 우리나라에서만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 현대 지정학이다.

현대 지정학은 또한 공식 지정학, 현실 지정학, 대중문화 지정학으로 나뉜다. 공식 지정학은 국가의 공식적 대외 전략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특정 국가의 위협은 무엇이고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공식 지정학이다. 현실 지정학은 정치인들의 말에 녹아있는 지정학적 사고가 무엇인지를 유추해내는 학문이다. 대중문화 지정학은 대중문화에 나타난 지정학적 사고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캡틴 아메리카의 무기가 방패인 이유는 ‘우리는 강하지만 방어하기 위해서만 힘을 쓸 뿐’이라는 미국의 정치이념이 담겨있다는 것이 대중문화 지정학이다.

지리와 정치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과거 학자들은 고전 지정학을 바탕으로 지리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정치가 지리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이러한 연구는 지속될 수 없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정치가 어떻게 공간을 바꾸어 나가는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세종시의 경우도 정치적 결정에 의해 도시가 만들어졌다. 게다가 세종시가 처음에는 수도로 고려됐다가 행정 중심 복합도시로 바뀐 점들을 생각해보면 지리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도 있지만 정치가 지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래서 결국은 지리와 정치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리학에서 지정학은 어떤 위상을 갖는가.
지정학은 1900년대 초에 만들어져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지리학에서 위상이 높았다. 나치의 유럽 정복과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것이 지정학이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당시의 신문에서 지정학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학문’이라고 표현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와 일본 군부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지정학자들은 전범이 됐고 학계에서도 지정학이라는 단어가 금지어가 됐다. 이렇게 지정학 연구는 맥이 끊겼다가 1990년대 이후 고전 지정학을 비판하면서 현대 지정학이 등장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이 치열해지며 국가의 힘이 뻗어 나가는 것을 공간적으로 바라보는 지정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정학이 부활한 지는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아직 우리나라에 지정학 전공자는 거의 없고 지리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이 지정학 연구를 시작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오늘날 지정학은 아직까지는 지리학에서 위상이 낮다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 지정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첫 번째로 ‘반도의 숙명’이라는 수동적인 세계관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연구를 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에 갇혀있으면 우리나라만의 정체성을 가질 수가 없다. 세계를 동아시아 혹은 한반도에만 초점을 맞춰 바라보기보다는 한반도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한다. 두 번째로 우리나라에 합당한 지정학적 시각을 가져야한다. 우리나라는 항상 지정학적으로는 수동적인 세계관을 가지면서 경제적으로는 GDP 몇 위를 달성했다고 자랑한다. 이렇게 두 시각의 균형이 너무 안 맞는다. 균형을 맞춰가기 위해서는 지정학적으로 수동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에 합당한 세계관을 가져야한다.

*대동아공영권=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며 내세운 정치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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