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상환 편집장 (lsang602@skkuw.com)

 "언론은 사회의 선생님이다." 신문사를 담당하는 주간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비판하는 것도 좋지만, 대학 문화를 만들어 가도록 도와야 한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이번 학기가 시작되던 때 편집장인 나를 불러 하신 말씀이다.
 

한편으로 불편했다. '비판해야 좋은 기사'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었다. 본지에는 '기사의 위상'이라는 것이 있다. 기사에 무엇을 담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일종의 지침서다. 그중 하나가 '비판적 시각'이다. 기사 작성을 위해 피드백을 가지는 회의 때도 기자들에게 간혹 나오는 말이다. 나 역시 후배 기자들에게 가장 많이 한 피드백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만이 대안을 제시하고 건전한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지난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누가 5년짜리 정권에 국가 운명을 뒤엎을 권한 줬나>를 읽었다. 현 정권 들어 대내외적으로 국가가 어려움에 처해있음을 걱정하는 글이었다. 비판의 타당성을 떠나 칼럼은 무책임했다. 그토록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자’라면, 대안을 제시하고 나아갈 방향을 고민했어야 하지 않나. 칼럼은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우려하고 비판만 할 뿐이다. 칼럼은 여론을 분열시키고 정권에 대한 증오만 부추기는 위험한 불장난이 됐다. 해당 칼럼뿐 아니라 비판만을 위한 기사는 언론계에 차고 넘친다.

 

언론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언론을 보면 불행과 비판만이 넘쳐난다. 언론사들은 특정인의 죽음, 개인의 몰락, 슬픔에 빠진 유가족, 누군가의 무능함을 경쟁하듯 보도한다. 결과는 참담했다. 2015년 미국의 퓨 리서치 센터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보수 지지자 중 40%, 진보 지지당 중 54%가 더 이상 언론은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분석에 따르면, 사람들은 불행을 소비하고 일방적으로 비판만 하는 기사에 염증을 느꼈다. 우리 사회 역시 언론에 대한 불신이 매년 커져간다.  

 

미국에서 비판을 넘어 해결책을 제시하는 ‘솔루션 저널리즘’이 떠오른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한쪽을 악이라고 비판하고 고발하는 것에서 나아가 해결책을 제시한다. 2014년 미국의 텍사스대 연구팀은 약 75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와 일반 기사 중 무엇에 더 호감이 가는지 조사했다. 사람들은 해결책을 제시한 기사에 더 호감을 가졌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모토로 한 유럽의 신문들 역시 날이 갈수록 구독자 수가 늘고 있다.

 

비판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판에서 더 나아가 미래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건전한 논의들을 생산할 방법이 있음에도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내뱉는 말이다.   

 

『맹자』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화살 만드는 사람이라고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인자하지 못하랴. 그러나 화살 만드는 사람은 사람을 상하지 않게 될까 걱정하며 만들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사람을 상하게 될까 걱정하며 만드느니라.” 우리 언론은 너무 쉽게 화살을 만든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비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주어진 상황이 다를 뿐이다. 선하고 악한 사람이 그렇게 쉽게 나뉠 수 있을까. ‘솔루션 저널리즘’의 성공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큰 이유다. ‘어떻게 해야 갑옷을 만드는 일이 화살을 만드는 일보다 많을 수 있을지, 더 나은 공동체 문화를 만들 수 있을지’ 이제는 언론이 직접 고민해야 할 때다.

이상환 편집장
lsang602@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