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상 미소에 마음이 놓이는 이유
나한상 미소에 마음이 놓이는 이유
  • 박철현 기자
  • 승인 2019.06.25 21:58
  • 호수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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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l 박철현 기자 gratitude@skkuw.com
창령사 터 오백나한 전시 1부의 모습. 나한이 바위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사진 l 박철현 기자 gratitude@skkuw.com

현대인 돌아보게 하는 고려 나한상
불교미술 비롯한 불교문화, 문화콘텐츠 가치 내포해 

형형색색의 연등이 하늘에 부대낀 5월의 하루. 4세기 후반 한반도에 유입된 불교는 이 땅에서 유구한 문화를 꽃피웠다. 불교미술은 그 자체로 역사이자 종교의 산실이다. 옛날 누군가의 불심이 담긴 건축·공예·조각·회화는 오늘날 누군가에게 영감을 건네고 있다. 불교미술이 새롭게 잉태하고 있다.

불교미술은 시대와 호흡하고
석가가 열반에 오르자 예배자들은 부처의 발자국을 그려 놓거나 보리수와 같은 대상물에 상징성을 부여해 그를 기렸다. 이후 유럽의 헬레니즘 영향으로 1세기경 인도의 간다라·마투라 지방을 중심으로 부처의 모습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불탑과 종교의식을 위한 공예가 발달했다. 불교는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 땅에 뿌리내렸다. 그 과정에서 불교미술은 각 시대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변화했다. 불교도들이 직접 숭배했던 불상에서 그 차이가 더 잘 드러난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고구려, 백제, 당의 양식을 받아들였다. 교류를 통해 인도를 비롯한 이국 문화를 접했고 이 역시 불상에 녹였다. 통일신라 미술의 정점이라 꼽히는 석굴암의 불상은 국제적 관점에서 이상을 추구하고 신라 특유의 자연주의적 경향을 더했다. 신라 하대에는 지방호족세력이 성장해 지방 사찰에서 불상이 조각됐다. 각 지방의 불상은 사용한 재료부터 완성된 모습까지 개성이 넘친다. 고려 때 조각된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높이 18.12m를 자랑한다. 불상의 몸과 옷은 간단히 처리했지만, 머리에 씌운 관은 크고 화려하다. 이는 당시 왕이던 광종의 중앙집권 의도를 드러낸다. 조선에 이르러서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의 입지가 약해졌지만, 여전히 불상은 시대상을 반영했다. 경기도 화성시 용주사 대웅보전에는 가운데 석가불,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아미타불과 약사불로 이뤄진 삼세불상이 있다. 보통은 가운데 여래상과 양측에 보살상을 두지만, 용주사의 것은 셋 다 여래상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미타불은 자비로움과 극락세계를 상징하고 약사불은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고뇌를 없애 주는 부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백성을 다독여줄 부처가 필요했던 것이다.

조화를 꿈꾸는 현대 불교미술
시선을 현대로 옮기면 불교미술에 담긴 새 시대상이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는 무종교인이 가장 많고 여러 종교는 지배적인 우위 없이 공존하고 있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이재수 교수는 종교에 관심이 적은 시대여도 여전히 불교가 짊어진 역할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불교는 종교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보다, 인간성 상실 시대에서 많은 사람이 힘들어할 때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 과정에서 △공공성 △대중성 △불교의 종교성을 통해 하나의 문화로서 공익의 가치를 고루 지녀야 하며, 이에 따라 현대 불교미술은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가닥과 우리 시대에 맞춰 새롭게 발전해가는 가닥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시로 조계사 사천왕상을 소개했다.

종로구 한복판에 한국불교 포교 1번지라고 불리는 전통사찰 조계사는 서울의 빌딩 숲과 어우러져 있다. 사찰 출입구 앞에 사천왕상은 전통의 모습과 다르다. 보통 *소조를 사용해 만드는데 조계사의 사천왕상은 스테인리스를 층층이 얹어 제작됐다. 사천왕상 앞에서 고개를 숙여 기도하는 불자 신동좌(불명 청정행) 씨에게 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전통불상의 모습은 아니지만, 현대에 발맞춰 이뤄진 거라 자연스러운 거라 생각한다. 불자니까 따를 뿐”이라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무디게
최근 불교미술과 현대미술이 만나 현대 불교미술의 좋은 선례로 평가받는 전시가 있다. 오는 1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특별전이다. 강원도 영월군 창령사 터에서 발굴한 고려 불교 미술품 오백나한상과 현대미술을 접목해 전시를 꾸렸다. 지난해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첫선을 보이고 올해 서울전에서는 김승영 설치미술 작가와 협업했다.

  나한은 성인(聖人)의 최고 경지에 도달했지만 열반에 오르지 않고 속세에 머물러 중생을 구제하는 임무를 받은 부처의 제자다. 사람들은 나한을 친숙하게 여겨서 나한상의 모습을 그들과 닮게 표현했다. 보통의 불상과 다르게 다양한 모습과 표정이 특징이다. 구슬을 쥐고 가부좌를 튼 모습부터 나무 뒤에 숨어 엿보는 모습까지, 인자한 표정부터 찡그린 표정까지 다양하다. 전시 1부인 어두운 공간에 들어서면 벽돌 1만 장이 깔린 바닥 위에 은은한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오직 32구의 나한상이 좌대 위에서 독립적인 조명을 받으며 관람객 눈높이에 서 있다. 관람객은 나한상 사이를 자유롭게 지나다니며 한 구 한 구 그들의 모습과 표정을 골똘히 들여다볼 수 있다. 한 관람객은 “나한상을 보니 마음이 편해져 전시공간에서 한동안 계속 머물렀다”며 가슴에 손을 얹고 소감을 밝혔다. 김 작가는 “관람객이 숲에 들어가서 나무 하나하나를 지나다니면서 나한과 마주하는 시간, 나한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고 전시 의도를 설명했다.

전시 2부에는 약 700개의 스피커를 빌딩처럼 쌓았다. 김 작가는 빌딩 곳곳에 29구의 나한상을 배치했다. 스피커에서는 소란스럽고 빠른 도심의 소음과 말소리가 나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로 전시공간이 고요해진다. 김 작가는 “복잡하게 얽힌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잊고 지내온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 강연에서 강혜삼 학예연구사는 “나한은 성스러운 공간과 속세의 공간 그 경계를 넘나든다”며 “경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상태에서 자신을 돌아보면 행복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물로 대표되는 불교미술과, 설치미술로 대표되는 현대미술 사이의 경계를 없앴다며 전시의 의의를 밝혔다.

종교문화콘텐츠로의 가능성
불교미술을 비롯한 불교문화는 문화콘텐츠로의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이 교수는 문화콘텐츠의 △공유성 △다양성 △정체성 차원으로 불교문화콘텐츠가 다양한 문화콘텐츠 사이에서 설득력 있는 입지를 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지정문화재의 약 70%가 불교와 관련이 있다. 그는 “불교는 단순히 종교에 국한된 게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이루는 근간이라는 점에서 매력 있는 정체성을 지녔다”고 봤다. 불교는 인간의 근본적인 생로병사의 문제도 다루며 행복을 고민한다. 그런 고민 아래 각 문화권과 시대에 따라 하나의 원형이 다양하게 변주된다. 공감할 만한 주제를 여러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문화콘텐츠로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문화는 어느 특정한 집단이나 개인이 독점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는 문화·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게 손길을 건네는 불교의 사회적 역할과 닮았다”고 덧붙였다.

불교문화콘텐츠는 디지털 영역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정보통신혁명으로 인간은 가상 공간으로 활동영역을 확장하고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정보전달체계를 변화시켰다. 불자는 이에 맞는 불교를 고민하고 불교문화콘텐츠로 승화하는 것이 숙제다. 이 교수는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문화의 정체성을 표출하기 위해서는 불교를 소재로만 차용하는 것은 부족하다”며 “첨단과학이 제공하는 세련된 표현기술을 통해 불교문화원형이 지닌 인간 내면의 가치를 콘텐츠로 형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소조=점토와 같이 변형이 쉬운 재료를 사용하는 조형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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