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헤럴드 블룸은 영향에 대한 불안이 새로운 시작(詩作)의 근원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한 바 있다. 요컨대 강한 시인들은 선구자들에 대한 맹목을 자기 작품의 수정적인 통찰로 변모시키는 한에서만 그를 따랐다는 것이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진정한 경외와 사랑의 방법은 그/녀에서 시작한 우리가 다른 자기로 변화되어 그가 아닌 자기만의 문장을 쓰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올해 성대문학생에는 예년보다도 훨씬 많은 작품이 투고되었고, 글감이나 글쓰기 모든 측면에서 다양하고도 도전적인 작품들이 많아 당선작 선정에 애를 먹었다. 넋두리에 가까운 소품, 형식실험을 표방했지만 기세에 비해 결구력이 따라 주지 않는 작품, 신변잡기적인 삶의 단편을 단편적 아이디어와 말의 재미로만 봉합하는 작품, 장르소설의 익숙한 설정과 트릭에 그친 작품들을 선외로 하더라도, 적어도 10편 가까운 작품은 다른 해라면 수상작 대열에 들어설 법 했다. 조금더 엄격한 기준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대학문예라는 것이 자신을 버려가는 과정이기는 하지만, 역시 그 자신의 문장인가, 그러면서도 읽는 자와 이 세계와 깊이 연루된 작품인가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희미한 소음들의 힘>은 세련된 취향과 폭넓은 교양 세계, 문학에 대한 진지하고 오랜 고민이 묻어나는 신뢰를 주는 작품이었다. <나로민의 강>이나 <이상봉별기-금홍이 관점작>도 다루어지고 있는 그 장소 그 언어 그 기분을 느끼게 하는 좋은 글이었다. 하지만 세 작품 모두 읽은 것, 자신이 사랑하는 작가에 대한 영향력이 너무 압도적이라, 그 성취가 자신의 인장이라기보다는 독서의 깊이처럼 생각되어 고민 끝에 아쉽게 다음 글을 기다리기로 했다.

최우수작으로 선정한 <메히깐 사무라이>는 단숨에 읽히는 작품이다. 하드보일드에 가까운대로 문장이 담백하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도 있다. 무엇보다 투우의 박진감과 그 리듬을 탄 문장이 역사에 대한 자기만의 통찰과 함께 누벼져 있었다. <마녀 이야기>는 좀 긴 콩트에 가까운 소품이지만, 집필자클럽과 마녀클럽의 대립을 통해 문학장과 페미니즘, 혐오와 미러링에 얽힌 현재적 의제들로 점화되는 인화력을 내장하고 있었다. 문장들이 성기긴 했지만, 이 시간을 알레고리화하는 서사 능력을 사주고 싶었다. <블루 사이의 블루>는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사랑이라는 익숙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정서, 기억, 애정과 같은 마음의 움직임을 그려내는 방식이 탁월했다. 글쓰는 누구나 어떤 영향력 아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류라는 종으로 사는 우리는 가장 위대한 문장보다는 결코 남이 쓰지 못할 문장 쪽에 삶과 글의 의미를 걸어왔다. 세공이나 지구력으로 기준을 달리 삼았다면, 어쩌면 선정과 선외가 전혀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부디 용기를 갖고 계속 써나갔으면 좋겠다. 투고해주신 모든 분의 이번 글쓰기의 경험이 그것대로 보람과 의미로 가득 찬 문자들이었기를 기원한다.

황호덕 교수
국어국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