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성대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간절하고 불안하고 답답할수록 조급해 하지 말고…
[2019 성대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간절하고 불안하고 답답할수록 조급해 하지 말고…
  • 성대신문
  • 승인 2019.06.25 22:34
  • 호수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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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성대문학상 시 부문에 165명이 517편 시를 투고하였다. 예년에 비해 놀라운 성황을 이루었다. 1인당 평균 3.6편의 작품을 투고한 셈으로 어떤 이는 52편의 작품을 투고하기도 하였다.

빛나는 시어들이 연출하는 파노라마는 환상적이면서 감동적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간절한 사연을 품고, 말하지 않으면 숨이 막히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뚫리고 정리되고 어떤 것은 해결되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내가 진짜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나의 불안과 공포, 우울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아간다. 글을 쓰면서 아집과 집착과 질곡에서 벗어나고 나를 해방시킬 수 있다. 글쓰기는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며 타자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이다.

살아간다는 건 그립고 외롭고 버겁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 글을 쓴다. 처음엔 나를 알아달라고 호소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다가 차츰 나와 세상의 다면성과 깊이를 발견하게 된다. 투고작 중에는 스스로 맞이한 사태에 압도되어 시적 언어로 추스르지 못한 상태에서 조급하게 발화한다. “목에 막혔던 말들”이 순간 쏟아져 나오면 형태도 없고 질서도 없고 맥락도 없다. 불안과 공포, 간절함과 분노가 크더라도 조급해하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

시는 하나의 형식이다. 시는 요리와 같다. 맛있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요리가 있다. 재료와 조미료, 불 조절 등 다양한 레시피가 요구된다. 시상, 주제, 시적 언어, 비유, 상상력, 화자, 리듬, 제목 등이 잘 고려되어야 한다. 맛있는 요리를 먹어 보는 것도 좋은 음식을 만드는 요건이 된다. 좋은 시를 꾸준히 읽는 습관은 좋은 시를 쓰는 방법이다.

『늙은 노』 시인의 『왜성』·『그 겨울의 수선화』, 『GALAXY MYTHOLOGY』 시인의 『스토리텔링』, 『같은 문장』 시인의 『블랙 큐브』·『A에게』 등도 좋았다. 함께 보내준 다른 시들도 골고루 수준을 보여줌으로써 시 쓰기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믿음을 주었다.

『늙은 노』, 생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과 이미지가 감동적이다. 삶을 싣고 거친 바다를 저어오느라 낡아버린 노를 포착했다. “다문 혓바닥”과 “귀가 없다”, “춤추다”는 이미지는 노의 욕망과 “좌초”를 동시에 표현하고 “노스탤지어”와 “꿈을 꾸”는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늙은 노는 이따금 탁자와 기둥이 되는 꿈을 꾸었다”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영영 닿을 수 없”을지라도 “거칠게 밀어내”는 노의 리듬감에 휩싸인다.

『GALAXY MYTHOLOGY』 ‘GALAXY’는 은하계이면서 삼성 GALAXY를 연상시키지만 또 엄마의 시계이기도 하다. 은하계와 신화라는 영원 속에 엄마의 구체적 시간을 개입시킨 사유가 믿음직스럽다. 23년 전 엄마의 시계, GALAXY 시계는 당시 결혼 예물 시계로 인기 있던 상품이었다. 광년 단위의 은하계·영원의 신화학과 대비되는 청춘 신부의 시간과 23년 된 엄마의 시간이 함께 대비된다. 이런 시간들 속에 엄마의 자식으로 시적 화자는 존재하며 “여전히 삶 속이라는 것”의 가치를 확인한다.

『같은 문장』은 시에 대한 시, 시 쓰기를 시로 쓴 시로 흥미롭다. “흔해 빠진 시 쓸모없고 아름답지도 않은 시 걷는 족족 밟히는 시 징그러운 시 바로 그 지점이 통쾌한 시” 등은 시를 많이 써본 자가 할 수 있는 말이다. 시 쓰기는 살아가는 것과 같다는 전언이 겹쳐 있다. 문장이나 인생은 건강검진과 X-ray에도 찍히지 않는다. 그러나 폐부 저 깊은 심연에 뭔가 있고 거기에서 거미처럼 언어라는 실을 뽑아 올리는 행위는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당선작이 되기에 충분했던 작품들이 많았다. 『말』, 『포도원』, 『부화』, 『호수』, 『불』, 『열여섯플라나리아언니사각의링』, 『아라크네의 최후』, 『장마』, 『고전』, 『할매가 뭐라고』, 『꿈의 파란 도수장, 그리고 고깃집』, 『라라랜드』 등은 끝까지 당선작의 반열에 남아 있었다. 언급하지 않은 많은 작품이 기억에 남아 있다. 모든 시는 저마다 의미가 있었다. 계속 쓰기를 당부한다.

정우택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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