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오랫동안 좋은 글을 쓰고자 했다. 사람과 삶, 세계의 여러 단면들 너머에 있는 무엇인가를 글로 옮겨 적고 싶었다. 심리학을 들춰보기도 하고, 철학에 천착하기도 했다. 그래서 좋은 글을 썼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확신하건대 나는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 그렇기에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서 퍽 놀랐다. 좋지 못한 글에 좋은 상을 주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여러 글 가운데 「늙은 노」가 수상작이라는 점이었다. 그 시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던 시기에 쓴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사람이 무엇이고, 삶과 세계가 무엇인지, 심지어 내 자신조차 무어라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 형편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그때는 더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좋은 글을 써보겠다고 바득바득 사유를 하고 자판을 눌러댔다. 그렇게 쓴 글들을 지금 읽어보면 꼭 살덩어리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윤곽과 정제되지 않은 탁한 색감으로 가득 차있는 것이다. 「늙은 노」는 그중 하나였다. 이후로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동안 부단히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떠나보냈다. 삶과 세계, 내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많은 글을 읽고, 보다 많은 글을 썼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었다. 글쓰기를 그림그리기에 비유컨대 나는 이제야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물들을 몇 개의 살덩어리 같은 그림들과 함께 제출했다. 수상작은 「늙은 노」였다.

 

마냥 기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자못 슬픈 일이다. 어쩌면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소감을 마음에서 우러나온 물의 빛깔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난 검정빛이라고 말해야겠다. 기쁨의 붉은빛이나 슬픔의 파란빛이 아니라 그 모든 빛깔이 한 데 뒤섞일 때 나타나는 먹물 같은 검정빛. 나는 이 검정빛을 하나의 점點이라 받아들이려 한다. 영점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 잘못된 방향으로 온 건 아닌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해볼 계기로 삼겠다.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선을 긋고, 그곳에서 다시 선을 긋기를 되풀이하다 보면 활자가 되고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리라 생각한다. 모든 점과 선이 모여서 언젠가는 좋은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희망한다.

   

훌륭한 선생님은 잘못을 한 학생에게 벌罰이 아니라 상賞을 줘서 잘못을 고치게 한다. 이 상은 맹목적인 칭찬이 아니라 다정한 꾸짖음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상을 벌로 받겠다. 감사하다. 다시 시작해보겠다.

민성원(심리 14)
민성원(심리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