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은리 기자 (sayyesri@skkuw.com)

유희강과 강세황의 '관서악부' 최초로 동시 공개
작품을 비롯해 유족들이 기증한 물품 전시
 

사진 l 이민형 기자 dlalsgud2014@

성균관대 박물관(관장 조환)은 현대 한국 서예를 대표하는 검여(劍如) 유희강(1911∼1976)의 유족으로부터 수 백점의 작품을 기증받아 ‘검무(劍舞) - Black Wave’라는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지난달 31일부터 개최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약 200년 간격으로 활동한 두 명필인 표암(豹菴) 강세황(1713∼1791)과 유희강이 남긴 서예 대작 ‘관서악부(關西樂府)’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선보인다. 유희강의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길이 34m짜리 작품과 관서악부 저자인 석북(石北) 신광수(1712∼1775) 후손이 소장한 6m 길이 강세황 글씨가 함께 공개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계기를 마련한다.

관서악부는 신광수가 지은 서사시로, 송강(松江)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짝을 이루는 한문 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는 신광수가 어릴 때부터 교류를 이어온 절친한 친구인 채제공(1720~1799)이 평안도관찰사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을 기원하며 지은 108수 연작이다. 신광수는 관서악부를 당시 최고의 명필로 불리던 친구 강세황에게 보내 글로 옮겨줄 것을 부탁했으나, 작품이 완성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강세황은 글씨를 완성한 후 말미에 그 내역을 기록해 아들에게 전했는데, 2015년 <TV쇼 진품명품>을 통해 그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현대 서예를 대표하는 인물인 유희강에게 관서악부는 인생의 변곡점을 이룬 작품이다. 그는 관서악부를 세 번이나 다시 쓰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마지막 작품은 생을 마감하기 전에 6개월간 매진해 작업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벗인 임창순에게 교정을 부탁한 사이에 숨을 거둬 발문을 쓰지 못했다.

성균관대 박물관 관계자는 “강세황의 관서악부는 신광수와 우정을 상징하는 작품이고, 유희강이 쓴 관서악부에는 임창순과 우정 이야기가 얽혔다”며 “당대 최고 예술가들이 공유한 우정과 예술정신을 나란히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강조했다. 강세황과 유희강이 쓴 관서악부는 박물관이 특별히 마련한 공간인 ‘관서악부실’에 마주하며 걸렸다.

유희강 유족은 △생전에 사용했던 벼루와 붓 △습작 600점 △작품 400점 등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유족들은 이 전시회로 인해 최근 관심에서 멀어진 서예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활성화되고, 나아가 서예가 주는 즐거움을 사람들이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유희강은 우리 학교의 전신인 명륜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에서 글씨를 익혔다. 1968년 뇌출혈이 발병해 오른쪽 반신 마비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쓰러진 지 10개월 만에 이를 극복하고 ‘좌수서(左手書)’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박물관은 유희강의 우수 대표작 ‘완당정게(阮堂靜偈)’ ‘무량청정(無量淸淨)’을 비롯해 오른손과 왼손으로 각각 쓴 마지막 서예 작품을 공개한다. 또한 육필원고와 서책, 드로잉을 함께 전시해 유희강의 깊은 예술세계를 다채롭게 보여줄 예정이다. 박물관은 ‘검무(劍舞) - Black Wave’ 전을 통해 관서악부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유희강의 작품과 대표작을 뽑아 9월 말까지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