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성대문학상 소설 부문 가작] 블루 사이, 블루
[2019 성대문학상 소설 부문 가작] 블루 사이, 블루
  • 성대신문
  • 승인 2019.06.25 23:35
  • 호수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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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근본적으로,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너무 쉽게 잊곤 해요. 그건 물질세계에서의 차이가 극단적인 단절의 형태로 표상되기 때문, 이라고 그는 말하겠죠.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백인과 흑인은 양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건 멜라닌 색소의 개수에 따른 결과일 뿐이죠. 있고 없음이 아니라 많고 적음, 극단적인 단절이 아니라 연속적인 정도의 차이.

 

그와는 달리,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나는 언제나 순간에 대해 걱정하곤 했죠. 그가 떠나는 순간, 내가 떠나야 하는 순간, 그와 내가 만났던 순간과 그것을 후회하는 순간의 나. 아직까지도 난 그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그 또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했지만, 그런 그가 그런 나를 위해 무언가 말해보고자 했다는 그런 사실 자체로, 나는 꽤나 큰 위로를 받았어요.

 

어쩌면 그는 그렇게 살고 싶었던 걸까요. 경계를 긋지도 않고, 경계를 하지도 않고. 그라데이션처럼 흐릿하게. 불행히도 눈을 옅게 뜰수록 선명히 보이는 것들이 있죠. 모자이크된 마를린 먼로나, 명암을 그려 넣은 미대생의 스케치북처럼.

 

중요한 것은 빛은 언제나 공정하다는 것이에요. 물론 그 자신은 공정하다거나 불공정하다거나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겠지만, 어쨌든 빛은 공정합니다. 빠르게 뛰는 이에게도 느리게 걷는 이에게도.

 

 

인간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아마 불가능한 일일 거예요. 그렇죠? 아니, 불가능하다기보단 사회학적으로, 정치학적으로, 인문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인간의 스펙트럼은 너무 다양하고 또 너무 달라서,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정의란 건 글쎄요, 다른 것들을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기 위해 내리는 것이잖아요. 그래도 나는 의사니까, 인간을 보면 DNA가 떠올라요. DNA, RNA, 센트럴 도그마, 미토콘드리아, 염색체, 게놈. 너무 외로웠던 최초의 단세포 생물과 자기복제. 변이, 변화, 적응, 진화. 왜일까요? 왜 단백질이었을까요? 삶은 계란은 다시 날계란이 될 수 없잖아요. 한 번 손상되면 원형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첫 해부학 실습 시간이었어요. 학부생이 카데바를 만날 수 있는 공식적인 첫 일정이죠. 우리는 카데바를 어떻게 다루어야하는지에 대한 학과장님의 엄중한 강의를 먼저 들었어요. 그게 오랜 전통이래요. 야만인과 문명인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시체를 다루는 태도죠. 카데바의 머리통을 쪼개고, 턱뼈를 부수고,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면서도 문명인으로 남아있고자 한 선배들의 의지였던 거예요. 이제는 필요 없는 것이 되어버렸지만, 관습과 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어요. 우리들의 반절은 딴청을 피우고, 반절의 반절은 집중하는 척하고, 나머지는 생과 사, 인간과 비인간, 물질과 정신을 가르는 그 경계에서 고양되었어요.

 

금붕어 해부 실습 시간에 딱 한 번, 살아있는 것을 해부해본 적이 있었죠. 먼저 수조에서 살아있는 금붕어를 꺼내서 머리를 작은 망치로 톡톡 쳐서 기절시켜요. 그건 배려라기보단 편의인데, 그게 문제였어요. 너무 어렸고, 너무 어설프게 친절했던, 너무 여린 손을 가졌던 그때의 나는 금붕어를 제대로 기절시키지 못했던 거죠. 소화기 적출을 끝내고 이제 심장을 해부할 차례였는데, 금붕어의 작은 박동이 쿵-. 얌전하던 금붕어는 금세 깨어나더니, 비명이라도 지르듯 펄떡펄떡 뛰었죠. 소장과 대장을 주렁주렁 매달고, 펄떡일 때마다 갈라진 틈 사이로 내장들이 흘러나오는 줄도 모르고. 다시 기절시키라는 선생님의 말에 망치를 쥐어들고 파들파들 떨며 금붕어의 머리를 다시 내려쳤는데, 이번엔 너무 세게 쳐서 문제였죠. 한때 그였던 것은 완전히 끝났고, 모든 것은 나의 몫으로 남겨졌어요. 고통은 언제나 살아내는 자들의 몫이었으니까.

 

 

그를 묘사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에요. 그에 대한 특징적인 기억들이 다발적으로 떠올라서 문제예요. 색감이 예쁘다고 이것저것 섞어서 쓰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검은색뿐이니, 그를 그리는 화가라면 분명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에요. 어떻게 그를 정의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를 묘사할 수 있을까요. 그의 언어에 대해서? 그의 행동에 대해서? 봉지를 약지와 새끼손가락으로 걸어 들던 그의 특이한 버릇에 대해서? 아, 그의 색깔이 좋겠군요. 그는 프러시안 블루의 피부색을 가졌었죠. 차갑고 어두운 짙은 심연의 색.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서 좋았어요.

 

그의 피부색을 보자마자 그것이 그의 일생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끼쳤을 거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황인종 비율이 80%에 이르는 이 곳에서 그는 0.00005%를 담당하고 있었죠. 그건 얼마나 외로운 일이었을까요. 그의 이름은 오스카 블루. 그건 배려라기 보단 편의였죠. 분류한다는 것은, 정의한다는 것은 굉장히 폭력적인 일이에요. 인간을 ‘말을 통해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존재’로 정의하면 농아들은 인간에서 배제되어 버리죠. 그래서 엄밀하고 엄중한 과정이 필요한 것이겠지만, 그렇게 신중하게 정의해도 언제나 예외는 발생하니까. 그의 이름은 곧 그의 분류이자 그의 정의였어요. 파란색 피부를 가진 20대 남성형 카데바.

 

재미있는 점은 오스카들끼리의 결속보다 블루들끼리의 결속이 훨씬 강했다는 거예요. 이상하지 않나요? 유전적 동일성이나, 사회문화적 동질성은 오스카들끼리 가까울 것이 명료한데, 그들을 갈랐던 건 단지 피부색이었죠. 그건 단지 색소세포의 차이었을 뿐일 텐데요. 뭉쳐있던 블루들을 보면, 얼룩말의 얼룩무늬에 대한 가설들이 떠올랐어요. 한때는 포식자에게 하나의 개체로 비추어지기 위함이라는 가설이 유력했어요. 어디까지가 하나의 개체인지 헷갈리게 해서 겁먹게 하기 위함이라는 거예요. 사실은 그냥 체체파리를 쫓아내려던 것뿐이었는데.

 

오스카들은 우리들에게 가장 기피되는 카데바였어요. 40대를 해부할 땐 마냥 죄송했고, 10대를 해부할 땐 마냥 불쌍했죠. 그런데 오스카들은 어쩔 줄 모르겠던 거예요. 그들은 우리와 너무 닮아있었거든요. 그들의 외모가 그들의 나이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어요. 케이스의 다양화를 위해 창조는 파괴적으로 진행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카들은 20대처럼 행동했어요. 아마도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대하고, 그들은 그것을 내면화한 것이겠죠.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토록 같은 것이 그토록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을까요.

 

 

상상 속의 해부실은 늘 어두웠어요. 공포영화에서만 보아왔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사실은 엄청나게 밝거든요. 하나하나 낱낱이 보아야 하니까요. 3000루멘의 조명등 20개가 우리 위를 뜨겁게 쬐고 있어서 해부를 하다 보면 땀이 날 지경이에요. 그러다가 문득 오싹한 기분이 들죠. 해부하면서 동시에 해부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하나하나 기억되고 기록되는, 숨을 수도 숨길 수도 없는, 낱낱이 관찰되는 관음의 지옥.

 

얼마나 많은 실습생들이 그의 배를 갈라보았을까요. 그는 몇 번이나 해부되고 조립되길 반복됐을까요. 그는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해부대 위에 누워있을 수 있었을까요. 가장 인간적인 일을 위해 가장 비인간적인 짓을 하는 인간들. 그는 우릴 환멸할까요, 증오할까요, 아니면 동정할까요. 우연히 마주쳤던 그의 눈동자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아 서운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해보려고 오랜 시간에 걸쳐 노력했어요. 서로에게 사랑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해부하던 그 순간을 곱씹으면서, 나는 희망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것을 느꼈어요. 그는 그의 심장을 움켜쥔 나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나의 손을 바라보던 그의 눈을 바라봤죠. 나는 그의 심장을 안아주었고, 그는 그의 심장을 안고 있는 나를 안아주었어요. 그렇게 우리는-.

 

그는 언어에 민감했어요. 말이 굉장히 느렸는데, 대부분은 정확한 어휘를 찾는 시간이었죠. 마지막까지도 그는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정의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운 사람이었거든요. 내가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대부분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가끔은 난처한 듯 알겠다고 했고, 아주 가끔은 벅차오르는 표정으로 날 안아주었어요. 그러니 행간에 떠도는 말들로 감히 우리의 관계와 우리가 서로에게 했던 행동들을 쉽게 정의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종종 내게 상처가 돼요. 정말로요.

 

 

첫 해부 실습이 끝나고 일주일 뒤 나는 의학적 의문이 가득한 학생으로 위장하여 해부실의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그리고 가짜 질문들 속에서 위장한 단 하나의 진심을 던졌죠.

 

“제가 해부했던 케이스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

 

해부학과 교수님은 조금 난감한 기색을 보이셨어요. 원칙적으로 카데바와 실습생의 개인적인 만남은 금지되어 있거든요. 지켜야 할 원칙과 호기심 가득한 실습생의 눈 사이에서 고민하시던 교수님은 자신의 감독하에 만나는 것으로 못내 허락해주셨어요.

 

짙은 파란색의 피부 사이에서 그의 하얀 눈은 유난히 반짝였어요. 그 눈을 뚫어져라 보면 나의 시선이 그의 망막과 시신경을 뚫고 들어가 그의 생각을 읽어낼 수만 있을 것 같았어요. 그의 척수와 뇌, 모세혈관과 말초신경, 시냅스 사이사이에 내가 스며들길 바랐어요.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잡을 뻔 했는데 기색을 눈치챈 그가 시선을 교수님으로 돌렸죠. 나는 그제야 급하게 준비한 어설픈 질문들을 그에게 던졌고요.

 

의식은 어디까지 있으셨나요? 메스껍진 않으셨어요? 기침은요? 소화는 잘되세요? 맥박을 재봐도 될까요? 만져봐도 돼요? 만져줄 수 있어요? 내가 심장을 쥐었을 때 어땠나요. 황홀했나요? 아팠나요? 아무렇지 않았나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프게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다시 한번 쥐어봐도 되나요. 다시 하고 싶어요? 다시 다시-

 

삐비비빅. 삐비비빅.

 

교수님이 허락해준 15분은 빠르게 흘렀고, 해야만 했던 질문과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뒤로 한 채 그의 방을 나왔어요.

 

 

환자를 진찰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환자의 상태가 가역적인지 비가역적인지 파악하는 것이죠. 가역적 환자를 치료할 때 그 목적은 질병의 완치지만, 비가역적 환자를 치료할 때의 목적은 질병의 악화를 막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의 결과가 현상유지라는 것은 많은 환자에게 절망이 되곤 해요. 난 그들의 선생님이자 개자식이고, 신이자 악마이며, 축복이자 저주가 돼요. 대개는 후자입니다만.

그들에게 저주 섞인 말들을 듣는다고 해서 그들이 원망스러워지거나,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하거나 하진 않아요. 나는 그저 한 번 진단을 내리고 나면 그만이지만, 그 진단을 받은 환자는 자신이 한번 진행되면 절대로 이전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병에 걸렸음을 직시하고, 삶을 살아내야 하니까요. 저한테 화풀이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은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어요. 그냥 어쩔 수 없었던 거겠죠.

 

나쁜 소식 전하기. 복통, 피로, 객혈, 기침과 나란히 하는 의대 정규 과정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의대생들이 제목에 한 번 피식하고, 쉬어가는 시간쯤으로 여기는데, 생각보다 중요한 과정임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요. 의사가 되고 나서 만나게 되는 환자들은 카데바가 아니라 정말로 살아 숨 쉬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인간들이니까요. 우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6살의 아이의 사망을 부모에게 선고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꽤나 매뉴얼화되어있어서 그다지 어렵진 않아요. 교재와 교수는 적절한 표정과 적절한 표현을 알려주니까,  외우면 그만일 뿐이죠.

 

 

그와의 관계의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왜 그여야만 했는지’에 대한 대답이겠죠. 현대에 이루어지는 대다수의 이성관계는 대체불가능성을 전제로 하니까요. 그런데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왜 그여야만 했는지, 아니면 정말 그여야만 했는지. 단순히 누군가가 필요했던 순간 그가 있었던 것뿐인지. 그의 짙은 파란색의 누멘 피부와, 맑은 눈과, 삐죽거리는 입술과, 느릿하고 묘하게 운율이 느껴졌던 말투, 동물들에게도 사랑받았던 그의 냄새, 내가 자국을 남기곤 했던 그의 목. 나는 그의 많은 면들을 사랑했지만, 그게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은 아니었죠. 그건 그를 무척 아프게 했던 것 같아요.

 

해부 실습 마지막 주에 나는 다시 한번 더 그를 찾아갔어요. 이번엔 저번처럼 그에게 빨려들진 않았어요. 장소와 시간이 담긴 쪽지를 교수님 몰래 건네주는 것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거든요. 쪽지를 주며 나는 온힘을 다해 그를 바라봤어요. 무리한 부탁인 거 알아요. 위험하고 힘든 일이고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죠. 가능하더라도 당신이 그러한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없고. 그래도 보고 싶어요. 그래도. 혹시나. 어쩌면.

 

약속된 시간과 공간에서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며 나는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만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거라고. 나는 바빠서, 그는 자유롭지 못해서 어차피 몇 번 몰래몰래 보다가 누군가 먼저 지쳐 떠나서, 누군가는 남겨져서 상처받을 거라고. 그래, 그 역경을 극복하고 극적으로 우리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다고 쳐. 그게 얼마나 오래 간다고. 그런 거지. 어느 날 일에 지쳐서 집에 왔는데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은 채 무심하게 잠든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싶어진다거나, 수면 온도가 달라서 나는 너무 춥고 그는 너무 덥다는 사소한 이유로 서로를 죽일 것처럼 싸운다거나. 사랑은 아주 무심히 서로를 잃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얼마 기다리다 안 오려나 보다 하고 돌아섰을 때 그 앞엔 영화처럼 그가 서 있었어요. 그 순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왜 사랑의 접속사인지 깨달았어요.

 

 

바이탈 올간.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면서도 아주 취약한 기관들입니다. 뇌, 콩팥, 간 등등. 쉽게 껐다 켜는 컴퓨터와는 달리, 우리의 뇌는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30초 후부터 손상이 시작되고, 5분 정도면 완전히 괴사해 버려요. 전원을 끄면 영원히 고장 나버리는 부품이라니. 그래서 그렇게 필사적인가 봐요. 살아가는 이상 인간의 심장은 멈추는 일은 없어요.

 

우리는 카데바 주거지 A동과 B동 사이의 작고 으슥한 틈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 이야기들이 전부 기억나진 않아요. 서로의 삶이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 서로가 느끼는 것이 얼마나 같은지에 대해서. 사랑하는 이들이 으레 하는 아주 시시하고 콜콜한 서로의 일상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들.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어딘지 모를 공허와 허무가 좋았던 것 같아요.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취향도 색채도 없던 그는 필사적인 구석이 없었죠. 그래서 그에게 사랑받고 싶었나 봐요. 그의 취향이 되고 그의 색채가 되고 싶었던 건가 봐요.

 

동물들은 그를 무척 좋아했어요. 떠돌이 개들은 오줌을 싸며 배를 까뒤집어 누웠고, 고양이들은 그의 종아리에 몸을 부벼댔죠. 그의 피부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꼬리치는 동물들에 둘러싸인 그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면, 그는 난처하다는 듯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어요. 그 사랑을 거절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사랑을 주는 동물은 단 하나 뿐이었어요. 나비라는 촌스러운 이름을 지어 주고는. 내가 보기엔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아서 언젠가 물었어요.

 

 

또 그 고양이만 쓰다듬어주네.

 

응. 좋아하는 고양이. 나비.

 

다른 예쁜 고양이도 많잖아?

 

그러나 나비. 제일 좋아.

 

흰 색이 좋은 거니?

 

나비. 좋아하는 고양이.

 

그러니까 왜 나비가 제일 좋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양이.

 

 

 

인간을 구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의대라는 공간은 굉장한 특수성을 가져요. 유사성을 따지자면 의외로 군대와 가장 비슷하죠. 생명이라는 가장 위대한 가치 앞에서 많은 비인간적인 행동들이 정당화되곤 해요. 예를 들면 간호사끼리는 임신순번제라는 게 있어서, 서열이 높은 순대로 임신의 기회가 주어져요. 의사도 그다지 다르지 않아서, 결혼과 임신은 사실상 졸업 직후와 레지던트 3년차에 이르러서야 가능하고요. 교수와 레지던트, 그리고 실습생들. 철저한 계급제도 아래에서 폭력과 인신공격이 오가기도 하는데, 어쩌면 저럴까 싶다가도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또 아니에요. 학부생 때 3일 밤을 꼬박 새우고는 하루를 몽땅 자버려서 학교를 못 간 적이 있는데, 교수님께 아주 혼쭐이 났죠. 그때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생명을 구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우리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비도덕적인 것이 된다. 나는 변명할 말을 찾지 못했어요.

 

 

내과 턴이 끝난 주였어요. 내가 많이 바빴던 탓에 오랫동안 그와 만나지 못했어요. 잠이 정말 간절한 만큼이나 그도 간절했고, 나는 잠깐이나마 그를 보기 위해 B동으로 갔어요.

 

역사 이후 인류의 평균수명은 의학의 발전과 함께 꾸준히 증가하여 왔지만, 최대수명의 변화는 미미했어요. 의학의 발전이 수명보다 덜 사는 인간들을 구하긴 했지만, 인간을 수명보다 더 살게 하지는 못했단 뜻이죠. 인간은 이론적으로 최상의 유전자로 최적의 상태를 유지해도 170년 이상 살지 못해요. 그 뒤로는 다발적인 유전적 붕괴가 일어나는데, 다시 말하면 텔로미어는 짧아져 세포는 분열을 멈추고, 내분비계는 손상되며,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정보는 변이된다는 말이에요. 결국 수명 연장의 꿈은 인류의 아주 오래된 질문에 부딪히게 돼요. 엔트로피는 가역적인가?

 

 

죄의 책임은, 소중한 것을 지키는 올바른 방법을 그에게 가르치지 못했던 나에게 있었던 걸까요, 나비의 내장을 발로 차 터트려버린 학과장에게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고작 길 가다 몇 번 쓰다듬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보다 소중했던 그에게 있었던 걸까요.

 

학과장의 배를 갈라 창자를 질겅질겅 물어뜯고 있던 걸 급히 말려봤지만, 되돌리기엔 이미 늦은 일이었죠. 다행인 것은 이 시간에 B동까지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과 해부실까지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뿐이었어요. 그를 끌고 가려하자 그는 손짓으로 죽은 나비를 가리켰어요. 난 죽음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시간이 없었고, 그는 늘어진 나비를 한 팔로 안고 왔어요.

 

그는 나비를 가리키며 해부대 위에 오르지 않으려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속이는 것만큼 상처가 되는 일은 없죠.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있어요.

 

잘 들어. 나비를 치료하려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려. 그치만 지금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어. 하지만 꼭 치료해줄게. 약속해. 이렇게 스캔해둘게.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올 거야. 그 사람들한테 못되게 굴면 안 돼. 다치게 해서도 안 돼. 그러면 그 사람들은 더 너를 무섭게 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곧 구하러 갈게. 그때까지 얌전히 있어야 해.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거야. 기다릴 수 있을 거야.

 

뉴스에서는 학과장이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해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살해 현장이 얼마나 참혹했는지에 대해 설명했죠. 학과장에게 치료받은 사람들은 티비에 나와 오열했지만, 그가 아끼던 고양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꿈을 꾸었어요. 그는 발가벗고 학과장의 질긴 창자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어요. 파랗고 아름답던 피부는 빨갛고 흉측하게 물들었고, 그는 피를 뒤집어 쓴 채 무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어요. 나는 조금 고민했어요. 그를 잊고 살 수 있을지, 그를 버린 것을 잊고 살 수 있을지, 그를 감당할 수 있을지.

 

 

단백질에 비해 누멘은 손상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웠어요. 생명 활동을 알고리즘으로 정의한다면 그것을 재현하기에 아주 적합한 물질이었죠. 의학계는 환호하면서도 한편으론 우려했어요. 미인을 짝사랑하는 숫총각처럼 자신이 쓸모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어요. 면역작용을 완화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거든요. 합성인간에 대한 연구는 사실상 종료되었는데, 몇몇 괴짜들은 연구의 방향을 바꾸어서 새로운 형태로 인간을 재현해냈죠.

 

그가 신을 믿는다고 하면 의아한 눈빛을 보내는 이들이 있었죠. 하지만 그는 그가 신과 양립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신은 인간보다도 나약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는 불경한 생각을 하며. 그의 믿음과는 달리 사람들의 신은 그의 존재로써 부정당했어요. 그걸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은 꽤나 많았어요.

 

 

 

 

 

 

 

그와 재회하며 나는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꼈어요. 그의 존재에 대한 책임을 느꼈고 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을 느꼈죠. 기분 좋은 구속감. 우리는 근교의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에서 새로 출발했어요.

 

나는 여전히 바빴지만 그는 자유의 몸이 되었죠. 피부색이 눈에 띄어서 나다닐 수는 없어도 그래도 그는 자유로웠어요. 나는 그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싶었어요. 처음엔 커피를 가르치려고 했어요. 커피의 신맛과 쓴맛을 어떻게 느껴야하는지, 무게감을 어떻게 느껴야하는지, 남미의 원두와 아프리카의 원두가 어떻게 다른지. 그가 뿜어놓은 커피를 닦으며 나는 조금 더 쉬운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소고기를 샀어요. 신나는 노래를 틀고 밑간을 같이했어요. 고기를 만지면서 감촉을 느껴보라고 권했죠. 단지 먹는 게 아니라 식사를 하는 거라고. 우리의 목표는 굶주림의 부재가 아닌 행복의 존재라고. 두 가지 규칙을 정했어요. 감각을 아주 천천히 느낄 것, 느껴지는 감각을 최대한 다채롭고 정확하게 표현할 것.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고기를 올리자 기분 좋은 소음이 났죠. 오래 익히지 않고 접시에 담았어요. 소스로는 낫토를, 채소로는 아스파라거스를 준비했어요. 그는 두툼한 고기를 집어 낫토를 올려 한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어요. 그리고 꿀꺽 삼키고는 맛을 표현했어요.

 

맛있다.

 

다행히도 그게 그가 말할 수 있는 전부는 아니었어요. 배우는 게 빠르고 호기심도 많아서 이것저것 자주 물어봤어요. 나는 내가 대답해줄 수 있는 것이면 열심히 대답해주었고, 나도 잘 모르는 것이면 책을 사주었어요. 머지않아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관심 있는 것과 지루한 것,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구별해 낼 줄 알게 되었어요. 그는 미술을 좋아했고, 흥미 있어 했고, 잘했어요.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감탄할 줄 알고, 고흐의 그림을 보며 눈물을 흘릴 줄 알았죠.

 

변기 커버를 올리고 내리는 것에 대한 아주 사소한 문제와 같은 것들로, 때때로 다투기는 했어도 대체로는 행복한 날들이었죠. 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고, 그는 한가로운 일상 속에서도 나태해지지 않았어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닿아갔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사랑의 주기는 7년이라고 해요. 한 인간과 인간이 만나 사랑을 나누고, 둘의 유전자를 반반씩 섞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를 만들고, 다시 그 존재가 세상을 홀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의 시간. 그 이후로 에로스는 종말해요.

 

고양이들에겐 신피질이 없어요. 덕분에, 라고 해야 할지, 그들에겐 현재만이 존재해요. 미래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과거에 대해 후회할 필요도 없어요. 단지 지금 이 순간 먹고 자고 사랑하고 섹스하고, 이 우주를 살아가는 아주 현명한 방식이죠. 영원을 사는 존재가 신피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기억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사실 뇌의 아주 구체적인 활동이에요. 기억은 시냅스에 저장되는데, 다시 말해서 시냅스의 변화가 곧 기억의 물리적 실체죠. 우리가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이 시냅스간의 연결은 강화되고 변화되어요. 반대로 떠올리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풍화되다가 완전히 손상되고 나면 기억을 잃게 되죠.

 

암은 노화하지 않는 세포가 무한히 증식하여 우리의 몸에 해를 입히는 질병을 말해요. 죽지 않는 세포들이 군집되고, 혹이 되었다가, 종양이 되었다가 결국 우릴 죽여 버리는 거예요. 죽음에 대해 배울 때면 그는 매번 나비와 학과장에 대해 생생히 떠올렸어요. 그날의 날씨, 그날의 공기, 그날의 냄새, 그날의 분위기와 나비가 죽던 순간, 학과장을 죽이던 순간. 손상되지 않은 기억 앞에서 학과장이 얼마나 죽어마땅한 인간이었는지에 대한 나의 의견은 위로가 되지 못했죠.

 

그는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어요. 아니면 이젠 대충 변명하기엔 나의 노화가 너무 많이 진행되었던 것일지도 모르죠. 기억을 잃지 않는 그는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공백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왔어요.

 

오전 진료를 마치고 집까지 걸어가는데, 일요일이었어요. 흰색의 따뜻한 태양 아래서 사람들은 행복한 듯 지저귀었죠. 시간여행자가 도착한다면 달력을 안 봐도 일요일인 것을 알 수 있을 만큼의 일요일. 담당했던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어 기분이 좋았어요. 환자에게 너무 이입하는 것을 늘 경계했지만, 그날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어요.

 

7년. 그의 마지막은 늘 에로스의 종말과 함께 찾아왔어요. 지우지 못하는, 그러나 감당할 수도 없는 기억들은 종양이 되어 그의 뇌를 좀먹어 들어갔고, 환각을 보며 기억과 꿈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작동을 완전히 멈췄어요. 기억을 제거하면 다시 움직일 수 있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요. 그의 기억이 곧 그인 것을.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던 지하실의 자물쇠는 손쉽게 풀려있었어요. 0415. 그의 생일. 학부생 때도 친구들은 늘 내게 너무 감상적이라며 충고했죠.

 

그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꽃피어있었어요. 그의 파란 피부는 빨갛게 물들었지만 흉측하진 않았어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절규. 나를 향한 세레나데이자 진혼곡, 연인의 초상. 아아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사람.

 

그는 모든 뇌를 정성을 다해 하나하나 찢어놓았어요. 그리고는 마침내 자신의 머리통도 으깨어 버렸죠. 그의 뇌가 담겼던 USB엔 나비의 시체뿐이었어요. 그의 죽음은 마침내 비가역적이었어요. 한때 그였던 것들은 완전히 끝났고, 모든 것은 나의 몫으로 남겨졌어요. 고통은 늘 살아내는 자의 몫이었으니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된 사실인데, 데이터 속 나비의 죽음은 치료되어있었어요. 난 그가 사랑했던 고양이를 기르며 말년의 외로움을 달랬어요. 그러다가 문득 어느 날 그가 왜 나비를 사랑했는지에 대해 깨달았죠.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그는 이미 죽어버렸는데.

 

그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흐려져 가요. 그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검은색만이 남아서 문제예요. 그의 거칠고 빨갛던 피부. 평화롭던 입꼬리, 너무 빨라서 알아듣기 힘들었던 그의 언어. 죽기 전에 그를 한번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야옹야옹

 

말했던가요?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에요. 나비.

새하얀 털이 아주 매력적이에요. 때 묻지 않은 순수의 색깔.

그는 많은 동물을 사랑했지만, 그를 사랑했던 것은 나비뿐이었죠.

 

 

야옹

 

말했던가요?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에요. 나비.

촌스러운 이름인거 나도 알아요.

천박하기 짝이 없는 무지의 색깔.

 

 

나비. 좋아하는 고양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양이.

 

옹-.

이범규(철학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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