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여름방학 끝 무렵, 20명 정도의 학우들과 볼음도로 농민학생연대활동을 다녀왔다. 농활을 간다고 말했을 때 부모님은 할머니나 도와드리라고 하셨고, 친구들은 돈 받고 일하는 것인지 아니면 봉사활동인지를 질문했다. 하지만 우리는 돈을 받고 가는 것도, 농촌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닌 농민 학생 ‘연대’ 활동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농촌과의 연대가 무엇인지 볼음도로 향하는 배를 타는 그 순간까지도 고민이 되었다. ‘농민들과는 어떻게 소통해야하며, 과연 그들도 우리와의 연대를 원할까?’

하지만 생명체가 공존하고 사방이 밭인 이곳에서 생태주의 세미나를 하고, 농약을 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농민과 대화하며 작업하고, 여성농민은 어떻게 이 섬에 와서 어떻게 살아오고 있는지를 들으며 농촌의 현실이 우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초국적 농기업으로 농민이 종자 선택부터 유통에 이르는 과정을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은 산업 구조 하에서 부품으로 전락하는 노동자인 우리의 현실과 다를 바 없었다. 여성농민이 농업 생산과 동시에 가사노동, 출산 양육과 같은 이중부담을 겪으면서도 생산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도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는 여성이 겪는 이중고, 능력이 저평가되는 현실과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보았을 때, 농촌이 놓인 현실과 우리가 놓인 현실은 동일한 것이었고, 우리는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농촌은 낙후된 곳, 동떨어진 곳이라는 인식은 이러한 문제를 은폐하고, 문제를 문제 그 자체로 남게 만든다. 하지만 그 현실을 동등한 위치에서 직접 마주했을 때, 우리는 거리감 보다는 공감,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연대는 어렵고 복잡한 개념이 아니었다. 너의 어려움이 나의 어려움과 어떤 관련이 있고, 우리가 공통적으로 어떤 현실에 놓여있는 지를 느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 ‘연대’라는 단어를 잊은 것일까.

‘혐오 시대’로 표현되는 오늘날, 우리가 놓인 동일한 현실에 공감하고 토론하기 보다는 어려움의 책임소재를 찾고, 비난의 화살을 공격하기 쉬운 약자에게 돌린다. 여성이 겪는 직장과 가정의 이중부담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여성에게 ‘맘충’이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왜 성장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일자리는 부족한지에 대해 질문하기보다는 이주민 노동자를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기고, ‘외노자’라며 조롱한다.

물론, 내가 먹고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에도 바쁜 현대인들에게 약자의 문제에 공감하고 연대하자는 말은 배부른 소리, 허상으로 들릴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나와 관련 없는 사회 최하층의 문제라며 무시하는 순간 나를 억압하는 구조는 더욱 공고해진다.

모래로 쌓아올린 성의 바닥부터 모래를 끌어내리다보면 결국 상층의 모래들도 무너지고 만다. 우리가 그 모래성의 어느 안정적인 위치에 있다고 여길지라도, 취약한 아래층이 무너지면 안정적인 탑은 붕괴한다. IMF시기 여성종사자 비율이 높은 일자리를 필두로 비정규직이 시작되고, 이제는 안정적 일자리로 여겨지던 직업도 불안정화에 시달리고 있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으로부터 전체에게 부담이 지워지는 이 시대에 나는 모래성의 취약한 하층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것, 연대할 것을 말하고 싶다.
 

유경민(통계 18)
유경민(통계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