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채연 (cypark4306@skkuw.com)

이번 여름방학에는 신문사 수습 시절부터 함께 한 친구와 호주에 다녀왔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온 세상이 아름다웠는데, 다녀온 뒤 깨진 적금을 보며 허무함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여행을 아름답고 의미 있는 추억으로 간직해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펼쳐 올 여름 내가 다녀온 ‘여행의 이유’를 되돌아봤다.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김 작가는 집이 아니기 때문에 호텔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집은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띄는 의무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집에는 가족끼리 서로 주고받은 고통과 날 선 말들도 곳곳에 얼룩처럼 묻어있다. 반면 호텔에서는 청소부가 전날 누군가가 남긴 아픔과 생활의 흔적들을 독한 세제와 방향제로 말끔히 지워 준다.

최선을 다해 밀린 일도 해치워야 하고 갈등도 해결해야겠지만, 벅찰 때는 ‘호텔’이나 ‘여행’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다. 8시간을 꼬박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멜버른의 말끔한 호텔에서, 나는 일상에서 벌어진 모든 복잡한 일들과 누군가와의 갈등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멜버른의 호텔에는 나의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 대신, 새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와 호주방송만 나오는 텔레비전 그리고 여행 가이드북만이 놓여 있었다.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텔레비전에는 ‘짠내투어’, ‘뭉쳐야 뜬다’ 같은 여행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구글 아트 앤 컬처 앱에 들어가면 세계의 모든 미술관들을 360도로 가상 체험 할 수 있다. 넘쳐나는 관광객들 뒤에서 까치발을 들며 직접 가서 고생하는 것보다 더 선명하고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우리 인류는 계속해서 여행한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로 정의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이동해 왔고 그런 본능은 우리 몸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김 작가는 여행이 어디로든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인류가 현대에 남긴 문화일 것이라 추측한다. 피곤하고 돈도 많이 드는 데다 기술 발전으로 꼭 갈 필요가 없음에도, 인간은 여행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주 여행에서 가장 가슴이 벅찼던 순간이 있다. 바로 시드니에서 오페라 하우스를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을 때다. 여행 가이드북, 애플리케이션, 심지어 사진엽서에서도 선명한 화질로 본 건물이었지만, 직접 봤을 때는 책에서만 읽은 ‘아우라(Aura)’의 개념을 몸소 체험한 기분이 들었다. 멀리 있는 하얀색의 오페라 하우스를 보고 감격한 나머지, 친구와 나는 재빨리 그 순간의 생생함을 전하기 위해 한국에 있는 가족한테 영상통화를 걸기도 했다. 그때의 공기와 날씨 그림자 햇볕 그리고 멀리서 바라본 오페라 하우스는 언제나 함께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것 같다.

대학 입학 후부터 모아온 눈물겨운 적금통장이 날아가고, 여행하는 내내 온종일 걸어 다니느라 피곤할 것을 알면서도 왜 호모 비아토르는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박채연 부편집장cypark4306@skkuw.com
박채연 부편집장
cypark4306@skku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