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웅식 기자 (w00ngsik@skkuw.com)

자과캠 만남 - 임성숙(물리 80) 동문

임성숙(물리 80) 동문
사진 l 김나래 기자 maywing2008@skkuw.com

때로는 즐거운 수업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실험을 보여주는 마법사로,
때로는 생각하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철학자로 변하는
수석교사 임성숙(물리 80) 동문을 만났다.

과학자를 꿈꾸던 소녀, 과학 선생님이 되기까지
타인의 잣대에 자신의 행복 희생하지 않았으면

스스로 생각하는 수업에 매력을 느끼다


“어렸을 때는 호기심이 많고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임 동문의 이런 성향을 알아본 주변 사람들은 그가 당연히 과학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기대처럼 저도 제가 과학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과학자가 되고 싶은 그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과목은 물리였다. 하지만 당시의 물리 수업은 과학을 좋아하는 임 동문에게도 지루한 시간이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F=ma’ 같은 공식만 칠판에 적어주시고 계산만 시키셨어요. 그런 수업을 듣고 있으면 재미있는 과학을 어렵게 전달하는 선생님들에게 약간 실망했던 것 같아요.”

반면 국어 수업은 그에게 인상 깊은 시간으로 남았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이 아니었어요. 학생이 스스로 주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수업이었어요.” 임 동문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말해보는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제 발표를 들은 국어 선생님은 옳고 틀리다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수 있는 시간을 주셨어요. 그 과정에서 스스로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그의 마음속에는 스스로 생각하는과학 수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싹텄다. 과학 연구를 꿈꾸던 아이는 과학 교육의 문제를 마음속에 새기고 우리 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대학생활

“율전으로의 캠퍼스 이사는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어요.” 임 동문의 2학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우리 학교는 이공계열 학과를 율전으로 옮겼다. “당시에 자과캠 주변은 논밭이었어요. 자연과학대 건물은 완성되지도 않았었죠.” 또한 그는 캠퍼스 주변에 배회하는 건달들로 인해 캠퍼스 치안이 위험했다고 말했다. 임 동문은 어려운 상황에
도 시간을 함께 보낸 동기들과의 끈끈한 우정을 추억했다. “당시의 저희 과에 입학한 40명 중에 3명이 여자였어요. 그 정도 성비면 일반적으로는 공주 대접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학문을 같이하는 동료 느낌에 더 가까웠어요.”

그는 매일 동기들과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미나실에 동기들끼리 앉아서 토론했던 일이 스스로 발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임 동문에게 대학시절 동기는 어려운 시기를 같이 버텨낸 동반자였다. “당시에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매일 동아리방이나 도서관에서 잤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 동기들이 각자 맡은 바를 잘하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해요.” 그들의 우정은 비단 학교생활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때 같이 공부하던 친구 중에 교수가 된 친구들도 있어요. 그 친구들은 제가 지금 과학을 가르치고 실험을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임 동문의 학문적 관심은 이과 지식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평소 소설과 수필 같은 글을 쓰는 걸 좋아한 그는 행소문학회와 불교학생회에 가입했다. “행소문학회에서 동기들과 같이 소설과 수필을 쓰고 그 글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일이 재밌었어요. 그 당시에 수필을 써서 성대신문이나 여성 발간지인 정정헌에 몇 번 기고하기도 했어
요.” 시위가 많던 시절이라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행소문학회나 불교학생회에서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사회과학 서적을 돌려 읽었어요.
당시의 금지 서적을 동아리에서 돌려 읽었던 거죠. 하필 그 행소문학회 옆방이 시위를 감시하던 형사 방이어서 그 책을 읽었던 제 동기가 형사의 블랙리스트에 올랐어요. 저는 그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친구 따라 블랙리스트에 올랐죠.”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후 형사가 그를 쫓아다녔다. “그 당시에는 저를 쫓아다니던 남자가 형사인 줄 몰랐어요. 그때는 절 좋아해서 따라다니는 줄 알았어요.”

사람을 좋아하는 소녀, 교사가 되다

“처음에는 솔직히 교사가 되고 싶은 생각이 크지 않았어요. 심지어 성대에는 물리 교육학과가 없다 보니 교육자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없었어요.” 그러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던 임 동문의 성향은 자연스럽게 그를 교단으로 이끌었다. “앞에서 수업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1984년도 교직 시험을 보고 3년 뒤인 1987년에 수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는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해서 교직을 선택했지만 처음부터 이 직업에 대한 확신이 있지는 않았다고 고백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직에 대한 확신은 조금씩 스며들었다. “먼저 좋은 선생님이 되려면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해요.” 임 동문은 수원공고에서 처음으로 담임 직책을 맡았다. “처음 담임을 맡았던 반 아이들은 대부분 집이 어려웠어요. 공부에 대한 의지가 없이 헤매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는 당시를 제자들과 함께 꿈을 찾아가던 의미 있는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제자들과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부모와 자녀 같은 애틋한 느낌이 커요.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데 볼 때마다 가족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렇지만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임 동문은 배운 것과 가르쳐야 하는 내용의 괴리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지식을 알고 있는 것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어요. 예를 들어 확산이랑 증발이란 단어는 단순히 설명하면 5분이면 설명할 수 있지만 수업에서는 그 단어를 1시간 30분 동안 설명해야 해요.” 그는 처음에는 이런 간극을 메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물론 시간이 지난 지금은 1시간 30분 동안 한 개념을 설명할 수 있게 됐어요. 그렇지만 1시간 30분을 모두 지식을 전달하는 시간으로 채우지 않아요. 수업의 많은 시간은 학생들의 참여로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학생과 선생님 모두 즐거운 과학수업으로

임 동문은 즐거운 교육에 관해 얘기하며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정보가 너무 많아지고 정보를 얻기 쉬워졌어요.” 단순히 정보를 많이 알고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주제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주제에 어떻게 흥미를 느끼게 만드는지가 더 중요해졌어요. 실험을 하면 단순히 실험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제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실험의 원리와 필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임 동문은 과학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과 실생활을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임용 초창기에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시작한 과학 마술은 이후의 임 동문의 교육 방향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교과단원별로 과학 마술 자료전을 진행했는데 운 좋게도 그게 상을 받았어요. 덕분에 SBS 꾸러기 탐구 생활에 참여해 미디어의 관심을 받았어요.” 그는 방송에 이어 출판사까지 연락이 닿아 과학 관련 서적도 집필했다. 특히 임 동문이 제자들과 함께 만든 『과학 놀이터』는 다양한 실험을 쉽게 소개하고 있어 많은 학부모 독자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과학 마술의 성공은 임 동문에게 자신감을 줬다. 그는 처음에는 영재반을 맡았다. “영재반 수업은 30명 정도의 소수 인원만이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이라 아쉬움이 컸어요.” 임 동문은 과학의 즐거움을 더 많은 학생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많은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발명대회를 만들었다. “발명은 과학적인 원리와 지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실생활과 연관돼 있어요. 그 때문에 학생이 과학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재밌는 발명은 학생들의 활발한 참여를 유도했고 임 동문이 근무했던 대다수의 학교는 발명 우수학교로 선정됐다.

“학생들이 즐겁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즐거워지더라고요.” 임 동문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즐거운 수업의 동력이 곧 교사 본인의 즐거움에서 온다는 사실을 느꼈다. 동료 교사들은 그에게 어떻게 하면 즐겁게 수업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임 동문은 자신이 경험한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선생님들과 ‘신나는 과학 수업 연구회’를 조직했다. “‘신나는 과학 수업 연구회’에서는 여러 과학 선생님들이 모여서 본인이 1년 동안 했던 실험 중 가장 즐거웠던 실험 수업을 발표해요. 그 과정에서 선생님들끼리 더 즐거운 과학 실험을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어요.” 임 동문의 눈에는 여전히 즐거운 수업을 만들려는 열의가 불타고 있었다.

성균관 유생들 항상 즐거웠으면

임 동문은 후배를 위한 따뜻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본인이 무슨 일을 하고 싶고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많이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본
인이 행복한 일을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임 동문은 후배들이 항상 행복하고 즐겁기를 바랐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선택
지가 하나밖에 없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상황이 온다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사랑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요. 그런 태도를 가지기가 쉽지 않지만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임동문이 집필한 과학 서적들.
임동문이 집필한 과학 서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