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인영 (ciy0427@skkuw.com)

 


두 달 간의 수출규제, 모습 감춘 일본의 추가 제재
WTO 제소, 지소미아 파기… 한국 대응 좀 더 지켜봐야

지난 7월부터 이어진 일본의 수출규제와 이에 따른 불매 운동이 3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한·일 양국의 갈등은 맞대응으로 더욱더 깊어지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분석해보고 한국의 맞대응으로는 무엇이 실행됐고, 실행될 예정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수출규제,
반도체 관련 물품 3가지 규제

지난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한국에 반도체 관련 물품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출을 규제하는 품목은 △리지스트 △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세 가지로, 이 중 두 가지는 반도체 제조의 핵심 소재다. 이번 규제에는 이 소재와 관련된 제조 기술 이전과 제조 설비 수출도 포함된다. 이 세 가지 품목은 한국 수출에 포괄적 허가 대상이었으나 지난 달 4일부터 개별적으로 수출 허가 심사를 받아야 한다. 우대 대상에서 제외돼 수출 계약별로 최대 90일이 걸리는 일본 정부 당국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수출 절차가 까다로워졌다. 수출규제 품목 중 리지스트는 반도체 기판 제작에 쓰이는 재료로 일본이 세계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또한 에칭가스는 반도체 세정에 쓰이는 품목으로 일본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70%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9년에 사용된 리지스트의 91.9%가 일본산일 정도로 의존도가 높았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진행한 배경에 관해 우리나라에서는 이견이 갈리고 있다.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수출 관리제도는 국제적 신뢰 관계 토대에서 구축돼 있지만, 관계 부처에서 검토한 결과 일·한 간의 신뢰관계가 현저히 손상된 상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이번 수출규제의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일본은 이번 수출규제에 대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대법원의 배상 판결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에 관한 경제 보복이라고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유의상 식민과냉전연구회 이사는 지난 7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포럼에서 “수출규제는 일본의 화풀이이자 힘 과시다. 그렇기에 기존의 강제동원 관련 합의를 뒤집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이에 보복하기 위해 경제 보복을 선택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출규제와 강제징용 보복을 연관 짓기보다는 한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을 중점적으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강철구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 부분적으로는 수출규제의 원인으로 볼 수 있지만, 한국의 경제성장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더 크다”고 다른 시선을 제시했다.

두 번째 수출규제,
화이트리스트 제외와 커진 수출 불확실성

지난 달 2일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고 지난 달 7일에 이를 시행하는 수출무역 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화이트리스트란 일본이 수출 관리상 관련 절차 처리에서 우대를 받는 국가를 나열한 목록을 말한다. 일본은 수출품 중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품목을 규제하는 방법으로 리스트(list) 규제와 캐치올(catch all) 규제를 사용한다. 리스트 규제는 목록에 명시된 품목만 규제하는 방법이며 캐치올 규제는 모든 물품에 규제를 가하는 방법이다. 일본이 백색국가로 지정한 나라는 캐치올 규제를 받는 나라보다 더 수월하게 일본의 수출품을 수입할 수 있다. 한국은 지난 2일 백색국가 목록에서 제외되기 전까지 백색국가로 지정된 27개국 중 유일한 아시아 국가였다.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된 한국은 지난 달 28일부터 3년에 한 번만 받으면 되던 포괄적 수출 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된다. 또한 개별로 품목 허가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했다. 비규제 품목이라고 하더라도 무기 개발 등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별도의 수출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조치로 일본이 한국에 수출하는 전략물자 1,194개 품목이 영향을 받는다. 즉, 언제든지 리스트 규제에서 캐치올 규제로 변경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것을 계기로 수출 상대국 분류체계를 변경했다. 수출 상대국 분류체계를 그룹 A, B, C, D로 나누어 통칭하기로 했다. 기존 화이트리스트에 속하던 국가는 그룹 A가 되며 기존 화이트리스트와 동일한 혜택이 적용된다. 한국은 그룹 B에 속하게 되며 그룹 A의 혜택을 적용받지 못한다.

지난 달 7일,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범위와 내용을 구체화한 ‘수출무역관리령’과 ‘포괄허가취급요령’ 개정안을 공개했다. 개정안의 시행세칙이 변경되는 방향에 따라 수출규제가 더 까다로워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하지만 기존 수출규제 3개 품목 이외 나머지 물품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제재 없이 특별일반포괄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특별일반포괄허가는 일본 내 내부자율준수(ICP) 인증을 받은 일본 수출 기업이 신청할 수 있는 허가이며 유효 기간은 3년이다. 일반포괄허가가 신뢰도가 높은 백색국가에 주는 허가라면, 특별일반포괄허가는 신뢰도가 높은 기업에 주는 허가다. 이러한 변경이 한국의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수출 불확실성만 커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규제가 확대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안심할 수 있지만, 일본 정부가 언제든 특정 품목을 개별허가 대상에 넣어 수출규제를 강화할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8월에 삼성에 반도체 관련 물품인 리지스트 수출을 한 달 만에 허가하는 등 추가적인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맞대응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이에 지난 달 12일, 한국은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지우며 국가분류체계를 수정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12일 가 지역을 세분화하며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했다. 이전까지 한국은 전략물자 수출국을 가 지역에 속한 나라와 나 지역에 속한 나라로 나눴다. 가 지역에 속한 나라는 일본에서 지정한 백색국가와 동일한 혜택을 받는 나라이며 나 지역은 가 지역에 비교해 수출 절차가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편이다. 한국은 현재 가 지역을 ‘가의1’ 지역과 ‘가의2’ 지역으로 나누어 일본만 ‘가의2’ 지역에 분류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설명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가의2’ 지역은 개정 완료 후 나 지역에 대한 규제와 동일한 선상의 규제를 받게 된다. 개정 이전 ‘가의2’ 지역의 규제는 신청만 하면 유효 기간이 3년인 포괄허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이후로는 수출할 때마다 서류 5종을 제출하고 개별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기준이 더욱더 까다로워진다. 이 개별허가 심사 기간은 ‘가의1’ 지역은 5일이지만 ‘가의2’ 지역은 15일이다. 또한 일본의 수출규제와 동일하게 전략물자가 아니더라도 무기 사용이 우려된다면 캐치올 규제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경희사이버대학교 일본학과 오태헌 교수는 “제도 개선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일본의 특정 산업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오 교수는 “일본 전체 수입에서 한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상반기 기준으로 4.1%밖에 되지 않는다”며 “수입하는 품목 역시 수입국을 대체하기 용이하다”고 덧붙였다. 추가로 한국의 이번 조치가 예정된 입법 개정안보다 강도가 약하다는 지적에 오 교수는 “외교적 협상을 위한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조치”라고 말했다. 기존에 예정된 입법 개정안은 국가분류체계에 ‘다 지역’을 신설하는 것이었다. 현재까지는 국가분류체계 수정안이 대략적으로 나온 상황이다. 이에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대표 송기호) 송기호 변호사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은 단계라 우리나라의 이번 조치보다는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가 갖는 모순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할 때”라고 이번 조치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함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 이하 WTO) 제소 역시 고려하고 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WTO 제소 중 첫 번째 단계인 양자 협의 요청서를 검토 중이다. 이 요청서는 일본이 거부할 수 없다. 하지만 요청서를 보내고 일본과의 협의 없이 60일이 지난다면 WTO 분쟁 해결의 두 번째 단계인 위원회가 설치된다. 일반적으로 WTO에 제소한다면 장기전을 바라봐야 한다. 단기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없지만 송 변호사는 일본의 선택지를 좁힐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이번 제소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일본은 WTO에 제소된 이상 이를 고려해야만 한다. WTO를 신경 쓰게 된다면 현저하게 부당한 조치를 추가적으로 하기 어렵다”고 제소의 가치를 설명했다. 그는 WTO 제소에 일본이 위반했다고 언급될 가능성이 있는 조항으로 차별적 대우를 금지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이하 GATT)’ 제1조 제1항과 수출입 물품의 수량 제한을 금지한 GATT 제11조 제1항을 꼽았다. 송 변호사는 이번 수출 규제를 통해 일본이 자국의 국내법을 바꿨기 때문에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것이 일본의 재량일 뿐, WTO 규범 위반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 것이라 예측했다. WTO 제소를 통해 수출 규제가 위반이라는 주장이 증명된다고 해도 GATT 제21조 제(b)항에 따라 국가안보를 근거로 재반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송 변호사는 “일본이 지난 WTO 이사회에서 저해될 수 있는 국가안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며 “이번 WTO 제소에서 일본이 어느 사유를 들어 해당 주장을 이어나갈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는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GSOMIA, 이하 지소미아)도 파기하는 강수를 뒀다. 지소미아 파기는 우리나라가 가진 패 가운데 직접적으로 일본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평가받았다. 지소미아는 2016년 11월 체결된 협정으로 이를 통해 북한의 핵 등 자국의 안보와 관련된 기밀 군사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된 점에서 의미 있는 협정이다. 위 협정에는 북한의 핵·미사일과 관련한 2급 이하 군사비밀 공유를 위해 지켜야 할 보안원칙이 포함돼 있다.

연장에 찬반이 갈렸던 지소미아는 지난 달 22일 한국 정부가 연장을 거절하여 오는 11월 22일에 종료될 예정이다. 지난 달 22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NSC)에서는 “양국 간 민감한 군사 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체결한 협정을 지속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지소미아를 파기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러한 파기에 송 변호사는 “당장 지소미아 파기가 한·미·일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이라 진단하기에는 이르다”면서 섣부른 판단을 자제했다. 한편, 지소미아 파기 결정 이후 미국의 우려 섞인 반응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달 27일 지소미아 파기 재검토를 언급했다. 만일 재검토가 이뤄져 파기 결정을 철회한다고 해도 지소미아 협정문에는 파기 철회 절차가 규정돼있지 않아 혼란이 예상된다는 해석도 있다.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