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철현 기자 (gratitude@skkuw.com)

톡톡톡.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가 우산을 두드린다. 간혹 우산을 피한 빗방울이 나를 때리면 내 마음은 빗물 모양대로 움푹 팼다. 한 폭의 기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신경을 쏟고 나면 몸과 정신은 액체괴물이 된다. 미술시장을 취재하면서 기뻤던 일은 기뻤던 모양대로 자국이 남고, 힘들던 일은 힘들던 모양대로 자국이 남았다. 자국은 오래도록 남아 생각할 거리를 만든다.

[맨발의 박 기자] 중앙대 이 교수를 만나는 과정은 낭만적이었다. 그의 논문을 접하고 꼭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었다. 두 차례의 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자 학교 행정실에 전화했다. 별다른 도움을 얻지 못했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오후 5시였다. 고민할 여지 없이 곧바로 흑석으로 떠났다. 보물찾기하듯 찾은 교수의 사무실은 불이 켜져 있었다. 문을 두드렸지만 답이 없었다. 준비한 메모지를 꺼냈다. ‘안녕하세요. 성대신문 박철현 학생기자입니다...’ 반성문을 쓰는 중학생의 마음으로 글씨에 간절함이 묻어나길 바랐다. 문틈 사이에 끼워놓은 메모지와 명함을 등지고 긴 복도를 걸었다. 복도 끝에서 한 사람이 걸어온다. 그가 내게 말을 건다. “정00 교수님 찾아왔나요?” 내가 찾는 교수의 이름이 아니다. “아니요. 이00 교수님 찾아왔어요.” 불 꺼진 사무실이 더 많은 오후 7시, 낯선 학교의 적막한 복도에서 마주친 그 사람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어? 난데?”

[검열된 기사] 경매 회사의 문은 열려있었다. 그러나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인터뷰와 촬영 협조를 목적으로 사전연락을 취했던 홍보팀을 만났다. 현장에서 협조한 일들 외에도 세밀한 도움을 받았다. 배려 속에 기자로서 나의 역할은 내가 쓰는 기사의 목적을 되새기는 것과 거짓을 담지 않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었다. 기억보다는 메모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물고 늘어진 질문의 답변을 글에 녹였다. 마지막 문장을 두드릴 때 즈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홍보팀이었다. 그는 기사를 요구했다. ‘팩트체크’라는 단어가 수화기 너머로 연달아 들렸다. 학생기자의 메모장 속 꾹 담아 눌러 쓴 글씨가 쓸쓸해 보였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액체괴물은 그들이 말하는 대중화가 무엇인지 다시 질문했다. 내가 생각하는 본질적인 대중화는 미술시장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다. 중저가 작품거래가 늘어났다는 숫자상의 대중화가 아니다. 미술시장의 문을 열어놨지만 노심초사해 하는 그들의 모습이 모순돼 보였다. 경매 회사의 슬로건은 ‘미술품 경매가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일상의 축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이다. 누구나 경매장을 찾을 수 있어도, 검열은 필요한 작업이었나 보다.

 

박철현 기자gratitude@skku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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